민주당의 생존전략 “YS태풍 차단하라”
  • 부산·서명숙 기자 ()
  • 승인 1992.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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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남 교두보 확보 부심…고전 예상

 “말할 게 뭐 있노. 이번이 막판인데 김영삼 밀어주는기라. 그래야 여당 안에서 입장이 안 좋겠나.” “밀어준다꼬 되나. 지난번 노대통령 발표할 때 보니 안되지 싶던데. 총선 끝나고 물먹는 거 아니가.” “정치 한두해 해본 사람도 아닌데 가만히 있는 거 보면 조건부가 안 있었겠나. 문제는 얼마나 밀어주는가에 달려 있는기라.”

 지난 2월18일 저녁. 부산 동래의  한 횟집에 마주앉은 40대의 세 중년남자는 한동안 ‘김영삼에게 대권이 돌아갈 가능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다 마침내는 상황이 어떻든 김대표를 밀어주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민자당 관계자들은 이런 잠복성 ‘김영삼 바람’에 부채질만 잘한다면 이 지역에서의 여당 압승(부산 지역 16석 중 13석, 경남 23석 중 18석)은 문제없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부산·경남 지역은 통합야당인 민주당으로서도 포기할 수 없는 절대절명의 전략지역이다. 민주당으로서는 이 지역의 선거 결과가 한두 석의 의석을 얻거나 잃는 단순한 결과로 끝나지 않는다. 대통령선거라는 정권 교체를 향한 대회전을 앞두고 이들 지역에서 최소한 두 현역의원을 다시 당선시키고, 나아가 일정 정도의 지지를 표로 확인하는 것이야말로 민주당이 지역당의 한계를 벗어났음을 확인시켜주는 ‘의미있는 승리’이기 때문이다.

 과연 이 지역의 김영삼 변수는 어느 만큼의 크기인가. 이 거센 돌풍을 타넘고 전통적인 野都에 ‘야당성 복원’을 노리는 민주당은 과연 이 지역에서 살아남을 것인가.

 사실상 90년 2월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가 돌연 집권당의 대표최고위원으로 변신할 때만 해도 그 선택은 이 지역의 전통적인 야당 정서를 감안하면 다분히 모험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었다.

 그러나 광역의회선거 결과는 정반대였다. 이 지역 유권자들은 87년 대통령선거와 88년 4·26 총선 때 각각 야권지도자 김영삼에게 보냈던 56%와 54%의 지지에는 못미치지만 김대표가 이끄는 민자당에 47.5%의 지지를 보냄으로써 일순간에 야도에서 여도로 변한 것이다. 연초 여권 핵심부에서 벌어졌던 대통령후보 갈등 과정에서도 야당의 기대와는 다른 양상이 벌어졌다. 당초 민주당 관계자들은 김대표가 여권 권력구도에서 밀려나거나 후보 가시화가 불투명해지면 부산·경남 지역 유권자들 사이에서 김영삼 지지심리가 급격히 냉각될 것으로 예측했다. 1월10일 대통령 연두기자회견은 그 어느쪽도 아니었지만 일단 ‘가시화’에는 실패함으로써 야당측의 기대를 부풀게 했다.

反DJ 심리에 反TK 심리 가세
 그러나 연두기자회견의 충격이 어느 정도 가시고 총선체제로 급격히 이행되는 과정에서 부산 시민 사이에서는 오히려 ‘총선 결과에 따른 김영삼 입지론’이 서서히 형성되기 시작했다. 익명을 요구하는 부산지역의 한 대학교수는 “다른 지역 출신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점이겠지만 이 지역 유권자들은 김대표와 끈끈한 일체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TK에게 밀리면 밀리는 대로, 희망이 있으면 있는 대로 김대표를 밀어주는 정서가 확고하다”고 진단했다.

 일각에서는 이 지역의 김영삼 바람을 다른 요인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김대표에 대한 이 지역 주민의 애정과 지지도는 야당지도자 시절에 비해 떨어졌지만 그 대신 지역 발전에 대한 기대심리가 ‘김영삼 바람’의 추동력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부산지역의 경제는 사실상 빈사상태에 빠져 있다는 게 이 지역 주민의 공통된 인식이다. 대표적인 지역산업인 신발산업의 연쇄 도산 등으로 지난해부터 부산지역의 경제상황은 크게 악화되었고, ‘주택·용지·도로난’ 등 이 지역의 고질적인 ‘3난’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부산지역 어디에서든 한국 제2의 도시 부산의 형편없는 몰골에 대한 불만을 흔히 들을 수 있다.

 이런 불만은 상당수 부산 시민들 사이에서 대통령을 두 차례나 배출하며 급격히 발전한 대구·경북 지역에 대한 극심한 반TK 심리로, 다른 한쪽으로는 ‘김영삼 대통령=부산·경남 지역 발전’이라는 기대심리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택시기사 박진홍씨는 “부산이 엄연히 서울 다음가는 도시인데도 이렇게 발전을 못한 건 너무 오랫동안 야당만 했기 때문인기라요. 한번 대통령이 나와야 부산이 제대로 발전하는데 그러자면 이번 총선도 여당으로 딱 밀어줘야지요”라며 부산과 대구시의 예산을 비교해가며 열을 올렸다. 하일민 교수(부산대·철학)도 부산지역 발전이라는 기대심리가 김영삼 바람의 진원이라고 진단한다. 그는 “흔히 호남지역 불균형에 대해 말하지만 정작 부산·경남 지역이야말로 권력과 경제혜택으로부터 사각지대였다. 이번 총선은 이 지역 대통령을 배출해 경제혜택을 누려야겠다는 김영삼 지지심리에 철저히 좌우될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지만 역대 정권의 파행적인 지역개발과 야권의 대안 부재가 이런 시민정서를 낳게 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민자당의 부산 전략도 이런 유권자들의 정서를 겨냥하고 있다. 즉 “대통령후보로 김대표를 밀기 위해선 부산·경남의 여권 후보를 집중 당선시켜달라”는 물밑 공세와 함께 집중적인 개발정책 공세를 편다는 것이다. 민자당 부산시지부의 한 관계자는 “이달 말경 선거대책본부로 체제를 정비하고 나면 김대표 이후 민자당의 부산지역 발전상을 집중 홍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부산시 출마 후보들은 △서낙동강 개발을 통한 신부산 건설 △국제공항 건설 △합천댐·남강댐의 부산 상수도원 개발 △지하철3·4호선 조기 완공△수산청 부산 이전 등의 공약을 공동공약으로 내걸어 이 지역 유권자들의 ‘발전기대심리’를 한껏 부풀리고 있다.

‘정면돌파’ ‘우회’ 양론 속 각개약진
 이렇듯 이 지역의 집권당 불만심리가 현 집권여당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에 대한 이반으로 표출되지 않고 도리어 기대심리로 증폭되는 현상은 통합야당인 민주당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민주당은 부산·영남 선거전략의 최대 변수인 김대표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를 놓고 고민에 휩싸여 있다. 전통적인 반김대중 심리 때문에 통합야당에 대해 정서적인 일체감을 갖지 못하는 이른바 ‘흡수통합 시각’도 민주당의 이중적 부담이다.

 김영삼 태풍에 대처하는 민주당 선거전략은 ‘정면돌파론’과 ‘우회론’으로 엇갈린 채 선거를 눈앞에 둔 지금까지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이다. “어차피 중반전 이후 선거양상은 김영삼 분위기에 좌우되므로 차라리 처음부터 김영삼 정서에 정면 대응하는 게 낫다”는 ‘정면돌파론’은 3당야합의 부당성과 함께 여권의 권력구조상 김대표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과, 되더라도 특정지역의 이익을 충족시키는 식의 개발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유권자들에게 야권통합의 대의와 함께 정면으로 설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영삼 변수를 정면으로 맞받아 “절대 안돼, 되면 뭘해” 식의 돌파를 해야 한다는 전략이다.

 반면 ‘우회론’은 김대표를 정면 공격했던 지난 광역선거에서의 참패 경험에 미루어 김대표에 대한 정면 공격을 피해 선거를 치르자는 입장이다. 민정계의 여권 후보와 맞붙을 경우엔 떨어뜨리는 것이 오히려 김대표를 도와주는 것임을 내세우고, 민주계 후보와 맞붙을 경우에는 “대통령선거에선 김대표를 지지하더라도 총선에서는 나를…” 식으로 대선과 총선의 분리를 호소한다는 전략이다. 이 지역 특성상 김대표와의 정면대결을 피하고 김대중 대표는 적극적으로 숨기는 게 유리하다는 현실에 근거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허삼수 위원장과 입장이 바뀐 채 뜨거운 재대결을 벌이게 될 민주당 노무현(부산 동구) 의원은 “김영삼 바람은 냄새나는 쉰 바람일 뿐이다. 정치명분으로는 옳고 그른 것만이 있을 뿐 전략전술은 그 다음이다”라고 일축하며 “일부러 김대표를 공격하진 않겠지만 유권자들의 지역감정, 대권 대망론 등 잘못된 정치정서를 설득하는 과정을 통해 김대표 문제를 정면돌파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은 주로 방어적인 측면에서의 김영삼 대응책 외에도 대권문제가 이 지역 선거의 쟁점으로 고착되지 않도록 통일·민족 문제 등 상위 단위의 정책과 주택 물가 교통 등 하위 단위의 정책을 내걸고 ‘김대표 2년 동안의 부산지역 경제 失政’을 집중 공략한다는 전략을 강구하고 있다. 민주당은 부산지역 거물 무소속과 경남 일부에서 강세를 보이는 국민당 후보에 의한 여권표 분산으로 일부 지역의 ‘어부지리’도 기대하고 있다.

 선거의 의외성은 언제, 어느 선거에서나 존재한다. 그러나 이 지역의 반DJ 정서와 반TK 정서로 인해 민주당은 그 어느 지역보다도 힘든 싸움을 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신 힘든 전장에서 성과를 올린다면 이 지역 민주당 당선자들은 야권 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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