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無知의 섬’ 일본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2.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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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연구 ‘발아기’…전공학자 태부족에 연구소도 ‘유명무실’

 서울 광화문의 한 헌책방에는 일본인 단골이 하나 있었다. 그 일본인은 한국에 올 때마다 책방에 들러,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철 지난 주간지와 만화들을 한 보따리씩 사가곤 했다. 책방주인은 “단골손님이 된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휴지들’이 한국 연구자료로 쓰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기분이 언짢았다”고 털어놓았다. 한 중견작가는 한국의 샘터를 평생 연구하는 일본인을 알고 있다면서 “그 일본노인은 한국을 몇바퀴나 누벼 우리들보다 우리나라 지리에 더 밝다”고 했다. 그는 “그 노인을 볼 때마다 어떤 섬뜩함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일본 연구는 곧 한국 연구”
 서울거리에 ‘21세기 시계’가 나붙고, 국민 소득 1만달러 시대로 달려가자는 청사진이 뿌려지고 있다. 정신대문제로 온나라가 떠들썩했고, 연초부터 신문과 방송들은 일본 관련 특집물을 잇따라 내놓았다. 일본을 다룬 신간들도 서점 진열대에 즐비하다. 또 어김없이 3·1절이 돌아오고 있지만, 선거바람에 휩쓸려, 언제나 그랬듯이 ‘그때를 잊지 말자’고 한번 외치고만 지나칠 것이다. 책방주인과 작가가 들려준 일본인과 같은 한국인은 과연 있는 것일까.

 한국은 일본을 모르고 있다. 얼마만큼 모르고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이다. 일본이 한국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또한 모른다. 무턱대고 일본을 깔보거나, 아니면 일본을 무비판적으로 따라가는 입장들이 있는가 하면, 일본을 “알아야 한다” “배워야 한다”에서 “이겨야 한다”는 시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목소리가 뒤섞여 있다. 반일과 친일, 지일과 극일의 복잡한 구도는 지향점을 찾지 못한 채 서로 엇갈리면서 일본에 대한 창문에 커튼을 드리우고 있다.

 “일본에 대한 연구는 곧 우리에 대한 연구이다.” 일본 동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화여대 金龍瑞 교수(행정학)는 일본연구의 중요성을 이같이 말한다. 김교수는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이끌어온 패러다임이 이젠 우리의 발전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면서 “반일 감정으로는 일본을 결코 알 수 없다”고 지적한다. 서울대 동아문화연구소 일본연구실장 金容德 교수(동양사학)는 “일본은 우리의 반면교사”라면서 일본연구의 당위성을 강조한다(68쪽 인터뷰 참조).

 일본을 알아야만 하는 이유들은 이외에도 많다 국내에서 유일한 일본 관련 대중매체 《일본평론》(반연간지)의 발행·편집인 韓相一씨(국민대 법정대 교수)는 일본의 21세기 구상과 연결지으면서 “일본연구가 시급하다”고 말한다. 한국은 90년대에 들어서서야 21세기를 논의하고 있지만 일본은 이미 80년대부터 국력을 내부보다는 외부로 발산시키는 방안을 논의해왔다는 것이다. 걸프전과 소련의 붕괴, 유럽대통합으로 드러나는 세계재편성 과정에서 경제대국 일본은 어느새 군사·정치대국으로 진입하고 있다.

 “일본의 국가진로 문제는 일본 내부에서 대논쟁을 일으키고 있다”는 한상일 교수는 “국제기류가 일본 보수주의자에게 유리하게 움직인다면 그들은 다시 대외팽창 노선으로 선회, 제국주의 역사를 재현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전망한다. 명치유신 이래 패망과 부흥을 거듭한 일본 에너지의 정체를 밝히는 것도 큰 의미가 있지만, 일본의 국가진로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경계경보’인 것이다.

 60~70년대 국내의 일본연구를 주도했던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의 김용규 간사는 “국가간의 선린관계도 결국은 힘의 균형”이라면서 “우리의 경제 문화 정치가 다시 일본에 귀속되는 상황에서 방위비를 계속 증강하고 있는 일본은 경제흑자의 수요를 창출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이를 주시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이라고 분석한다.

 일본연구의 당위성은 이처럼 반성과 위기의식에 발을 딛고 있다. 여기에, 밝혀지지 않았거나 왜곡돼 있는 고대 한·일관계사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연구들이 있고 보면, 한·일관계는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숙명적’으로 맞물려 있는 것이다.

 일본을 알아야 한다는 요구가 드높아져 있지만 정작 국내의 일본연구 수준은 한마디로 ‘발아기’이다. 대학교에 일어일문학과가 본격적으로 개설된 것이 80년대 이후부터였고, 대학교 부설 일본문제연구소는 일문과와 더불어 생겨났다.

 ‘한일21세기위원회’가 지난해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국내 대학 가운데 일문(일어)과는 43개가 있으며 재적 총수는 1만4백81명이다(89년 현재). 반면 영문과 90, 독문과는 61, 불문과는 58, 중문과는 52개소가 개설돼 있다. 한편 11개 대학원에 일문(일어)과가 설치돼 있고 92년 현재 박사과정이 개설된 대학원은 한국외국어대 한양대 중앙대 등 3곳에 불과하다.

 61년에 한국외국어대에 처음으로 일어과가 생겨났고 그해에 부산대에 국내 최초의 한일문화연구소가 문을 열었다. 하지만 국립 서울대와 연세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등 일문과가 없는 대학이 더 많다. 현재 15곳에 달하는 대학연구소들은 일본연구에 대한 인식 부재, 전문 연구인력 부족과 예산부족 등으로 인해 명패만 달아놓고 있는 형편이다(일본문제 연구소 도표 참조).

 “일문학과와 일본연구소는 지난 10년간의 기초단계를 지나 현재 과도기에 있다”고 동국대 일본학연구소장 愼根縡 교수(일문학)는 말했다. 동국대 일본학연구소는 재력있는 재일교포가 재단설립을 지원, 다른 대학 연구소에 비해 단단한 편이지만, 다른 대학의 연구소는 담당 교수 1인만 ‘지정’돼 있을 뿐이다. 따라서 연구실적을 기대하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70년대 한 외국 학자로부터 “고려대보다 더 크다”는 소리를 들었던, 국제적인 연구소인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에도 현재 일본연구실장만 있을 뿐 상근연구자가 없다.

 대학 부설연구소의 부실함은 일본관계 전문가의 부재에서 비롯한다. 해방 직후의 시대 상황 속에서 일본에 대한 논의는 불가능했다. 일본은 “타도해야 할 대상”이었다. 건국 이후 이승만 대통령 시절은 철저한 반일의식이 지배했다. 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70년대 들어서서야 학문적 논의의 필요성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한상일 교수는 “20년이 넘는 공백기가 국내에서의 일본연구를 가로막았다”고 지적한다. 반면 일본은 에도시대부터 꾸준히 한국연구를 확대시켜왔다.

 89년 중앙대 尹正錫 교수(정치외교학)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한국의 일본관계 전문가는 총 2백43명이었다. 그러나 일어일문학 전공자가 1백10명으로 절반에 가까웠고 정치학이 55명, 경제학이 20명, 역사고고학 16명, 사회교육학 13명 순이었다. 또한 이들 가운데 박사학위 소지자는 1백23명이었지만 일본 관련 논문으로 학위를 딴 사람은 32명에 지나지 않았다. 지난 2년간 일본전공자는 늘어났을테지만 숫적으로도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일본 연구해도 전공을 못 살린다
 일본에서 일본을 연구했다 하더라도 귀국하고 나면 그 전공을 살릴 수가 없는 것 또한 문제이다. 최근 들어 커리큘럼이 개설되고는 있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일본연구자들은 대학에서 주전공을 가르칠 수가 없는 것이다. “일본전문가를 요구하면서도 우리 사회는 일본전문가가 일할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았고, 일본 관계 연구주제도 자유롭지 못했다”고 아세아문제연구소 김용규 간사는 지적한다.

 일본연구자 내부에도 장애요소가 있다. 하버드대학원에서 일본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소장학자 李淑鐘씨(연세대 강사·사회학)는 “일본의 긍정적인 측면을 적극적으로 발표할 수 없으며, 일본의 장점을 표현할 때도 조심해야 한다”며 일본학 만이 갖고 있는 특수성이 있다고 말한다. 일본을 연구하는 미국학자들은 일본문화에 스스럼없이 빠져든다. 중국인도 한국학자에 비해 자유롭다. 한국의 일본학 연구자들은 “일본에 빠지면 안된다고 스스로 채찍질을 해야 한다”고 한 학자는 어려움을 토로한다.

 한국의 일본연구가 인정을 받으려면 “일본학자들이 한국의 일본학 관계 논문을 필독하지 않으면 안되는 단계”가 되어야 한다. 동국대 金思燁 교수(일문학)의 《한역 만엽집》을 제외하면 일본학계를 놀라게 한 학문적 성과는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김용서 교수는 “일부 뛰어난 성과도 있지만 국내의 일본정치학 연구 수준은 일본 중류급 학자의 수준”이라고 지적한다.

 일본학은 전반적으로 인문분야가 사회과학보다 활발하다. 인문분야에서는 일본 고전문학과 일본사에서 두드러지는 실적들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커리큘럼 개설 단계”라고 관련 학자들은 평가한다. 일본에 관한 일본 혹은 미국 등지의 연구를 소개하는 차원인 것이다. 한·일고대사는 70년대 중반 이후 식민사관과 거리를 둔 재야·향토사학자들이 지속적인 연구를 펼치고 있다. 실증주의를 내세운 ‘식민사학’은 한·일고대사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하나되는 한국사》를 펴낸 바 있는 高濬煥 교수(경기대 법학)는 “한·일 고대관계사가 정립되지 않는 한 바람직한 한·일관계는 요원할 것”이라고 말한다.

연구비 지원 등 제도적 활성화 시급
 뒤돌아보면 국내의 일본연구는 열악한 형편이지만, 일본연구는 이제 한 단계 올라설 전망이다. “그간 정치학이 일본연구를 주도했으나 사회학 인류학 등 분야에서 소장학자들이 배출되고 있다”고 이숙종씨는 말한다. 최근에 발간되고 있는 金學鉉 교수(일본 모모야마학원대학)의 일본 전통연희시리즈(열화당)에서 보여지듯 일본에 대한 학술연구가 다양해지고 있으며, 일본에 대한 학문적 관심도 점차 높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서울대경제연구소(소장 정의준 경제학과 교수)의 ‘일본경제연구’ 프로젝트는 3년의 연구기간, 총 38명에 달하는 연구팀, 연간 8천만원의 연구비 규모 등에서 일본연구의 좋은 전례를 남기고 있다. 학계에서는 “연구비 지원이 일본연구 활성화의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이 연구소는 그간 《고도성장기의 일본경제》(89년) 《일본경제의 근대화》(90년)를 선보였고 곧 《일본의 산업기술과 한일간의 기술협력》을 내놓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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