쩍쩍 갈라진 ‘물 정책’…예고된 가뭄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5.0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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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자원 관리 ‘법·행정기구’ 분산돼 종합대책 불가능…‘물은 경제재’ 인식 필요



 불볕 더위와 혹독한 가뭄이 계속된 지난여름의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시작된 겨울 가뭄이 ‘장기전’에 돌입했다. 남도를 거북이 등처럼 갈라지게 한 가뭄이 서서히 북상하면서 전국은 물 비상 체제에 들어갔다. 기상 예보 관계자나 정부 당국에서는 장마가 시작되는 6월까지 겨울 가뭄이 계속될 것으로 내다본다.

 이번 겨울 가뭄을 세계적인 기상 이변과 연결짓는 전문가는 그리 많지 않다. 이동규 교수(서울대·대기과학)는 “세계 기상 이변과 한국의 겨울 가뭄은 관련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겨울 가뭄은, 겨울철에만 한정한다면 가뭄이 아니다. 오히려 올 겨울 강수량은 예년보다 많다.

 대구의 경우 예년 1월의 평균 강우량인 20.5mm보다 많은 24.1mm가 내렸고, 광주도 예년의 38.6mm보다 많은 42.3mm의 강우량을 보였다. 지난해 가을에도 적지 않은 비가 내렸다. 이번 가뭄은, 엘리뇨 현상에 의한 지난 여름철 기상 이변의 긴 그림자인 것이다.

 

“수리학계가 건의한 대책을 정부가 묵살”

 기상청 관계자는 “지난여름 기상 이변으로 가을과 겨울의 용수난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 가을과 겨울에는 농업용수가 필요 없기 때문에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을 뿐이다. 여름에 저수지를 채우지 않고 겨울을 맞게 되면 공업용수와 생활용수가 부족해 큰 곤란을 겪을 것이라고 여러 차례 밝혔다. 언론에 보도 자료를 돌리고 각 기관에 공문을 보내 대비책을 세우라고 촉구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번 겨울 가뭄은 천재가 아닌 인재라고 지적하는 견해가 많다.

 수리학계에 따르면, 각 대학 토목공학과 교수들과 학회가 예비 저수지를 세우고 지하 수맥 지도를 만드는 한편, 인공 강우나 바닷물 정화 시설을 개발해야 한다는 등 가뭄 대책을 수시로 건의했지만 묵살되었다. 수리하계는 하천과 댐에만 의지하는 정부의 물 관리 정책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해 왔다.

 그러나 당국의 생각은 다르다. 농림수산부 가뭄특별상활실의 한 관계자는 “물이 부족해 금년 농사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예견할 수 있었다. 지난 연말 가뭄 대책 비용으로 2천7백억원을 미리 풀었고, 저수·절수·용수개발 등 가뭄 극복 3대 운동을 펼쳐 왔다.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다는 것은 비판을 위한 비판이다”라고 말했다.

 ‘가뭄 극복 작전’에 돌입한 정부 각 부처 상황실에 따르면, 현재 공업용수 부족으로 조업을 중단한 사업장은 없다. 문제는 올 봄이다. 가뭄이 계속될 때 영·호남 지역의 식수 부족과 수질 오염이 염려되고, 공업용수를 많이 쓰는 제조업체들이 타격을 받는다. 통상산업부는 “가뭄이 한 달 이상 지속되면 포항·울산 지역을 시작으로 조업 중단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큰 공단 지역에서 기계가 멈추는 사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건설교통부 수자원개발과 측은 “건설교통부가 관리하는 광역 상수도와 광역 공단의 용수 시설 용량은 천만t으로 6월말까지 견딜 수 있다. 하지만 소규모 지방 공단에서는 조업 중단이 일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포항의 경우는 특수하다. 현재 포항 지역의 가뭄은 2백년에 한 번 나타날 정도(2백년 빈도)의 극심한 가뭄이다. 당국에서는 형산강·안계댐의 물과 농업용으로 관정한 지하수를 끌어 긴급 대처하고 있지만, 2월말까지 비가 오지 않으면 중소업체는 조업 중단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은 공업용수보다 농업용수 쪽에서 느끼는 불안감이 크다. 가뭄으로 모내기를 하지 못하는 사태가 일어나면, 국민의 감정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곡창 지대인 영·호남 지역에서 모내기를 못하게 되면 이것은 농업이나 농민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으로 심각한 상황이다.” 농림수산부 가뭄특별상황실 허유만 실장의 말이다.

 농업용수 부족 사태가 빚어진 것은 지나해 여름 강우량이 절대 모자랐기 때문이다. 지난해 영·호남 지역에는 예년 강수량의 50~60%밖에 비가 내리지 않았다. 6백~7백mm나 비가 부족했던 것이다. 전국의 저수지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전국 1백 36개 시·군 가운데 68개 시·군 저수지의 저수율은 50% 아래로 떨어졌다. 전북 지역에서는 28%까지 떨어졌고, 경남 마산 등 5개 시·군의 저수율은 10% 미만이다.

 농림수산부측은 “최악의 상황을 전제하고 가뭄과 싸우고 있다”라고 밝혔다. 최악의 상황이란 6월까지 비가 오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지나 30~40년 동안의 통계에 따르면, 1~5월 사이의 평균 강우량은 3백~4백mm. 많은 물이 필요한 것은 모내기 때가 아니라 모내기 직후이다. 농림수산부의 ‘마지막 카드’는 비가 오지 않을 경우 영·호남 지역의 모내기를 7월 15일까지 미루는 것이다.

 농림수산부는 5월 딸까지 평년만큼 비가 오지 않을 경우 밭작물에는 큰 영향이 없으나, 쌀은 생산 목표에서 15.6%가 줄어든 2천8백60만섬이 생산될 것으로 예상한다. 영·호남 지역의 수리불안전답과, 저수율이 낮은 저수지와 연결돼 있는 수리안전답 17만3천ha의 모내기는 큰 지장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저수 시설 확보 시급

 지난해 농림수산부는 관정 2천2백88 곳에서 지하수를 끌어올릴 예정이다. 지하 수맥 조사가 전체의 6%밖에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농림수산부측은 “지표수 이용이 불가능한 논의 경우 7만 정보(전체의 50%)에 대하여 수맥 조사를 마쳤다. 우루과이라운드에 대비해 앞으로는 밭농사 지역의 수맥도 조사할 계획이다. 6%는 전체 밭농사 지역을 포함할 때 나오는 수치이다”라고 말했다.

 평생 물을 연구해온 수리학계의 원로 최영박 수원대 총장은, 물에 대한 인식과 정책에 일대 전환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번 가뭄이 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발생한 인재라고 규정하는 그는, 저수 시설 확보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최총장에 따르면,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가뭄에 대한 대책이 많았지만 80년대 이후 기존 시설의 보수·유지를 소홀히 했다. 20여 년 전에 파놓았던 관정 대부분을 대체해야 할 지경이라는 것이다. 또한 다목적 댐 건설 등 커다란 사업은 잘 벌이면서도 전국 8백80여 개에 이르는 농업용수 저수지를 유지·보수하는 일에는 형식적이었다는 것이다.

 최총장은, 수자원 개발과 관리의 일원화도 중요하지만 강우와 지표수만이라도 제대로 관리하면 물 부족 현상을 크게 개선할 수 있다고 본다. 한국의 연평균 강우량은 1천2백70mm로 적지 않은 양이지만, 이 가운데 겨우 19%만 이용될 뿐이다. 다목적 댐과 큰 규모의 저수 시설을 갖추기는 갈수록 어려워진다. 수몰 보상비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충주댐의 경우 공사비와 맞먹는 수몰 보상비가 들었다.

 

홍수 대책과 가뭄 대책은 하나다

 지하수 개발은 비용도 막대할뿐더러(천m 굴착하는데 1억원이 든다), 개발에 성공한다 해도 물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물은 언제 어디서나 마음대로 끌어다 쓸 수 있는 자유재가 아니다. “물은 경제재라는 인식이 보편화되어야 한다”고 최총장은 말한다.

 최영박 총장은 “물을 관리하는 법과 행정기구가 여러 곳으로 분사되어 있어서 서로 협의하고 일관적인 대책을 마련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물에 관한 법도 수자원개발법·상하수도법·하천법 등으로 나뉘어 종합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또한 수량은 건설교통부, 수질은 환경부가 관할하게 되어 있다. 하나의 하천을 관리하는 기구도 여럿이다. 하천을 관리하는 소관 부처가 각기 다를 뿐 아니라 지역적으로도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수원·수질·수량이 일관적으로 관리도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방자치 시대가 본격 개막되는 올 여름, 곳곳에서 물싸움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중앙 정부의 관리 기능이 다원화해 있고, 여기에다 지방 정부의 지역 이기주의가 결합될 것이므로 그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1년 가까이 지속된 가뭄이 끝나는 올 여름에는 평년보다 훨씬 많은 비가 내릴 것 같다. 강인식 교수(서울대·대기과학)는 지난해 10~12월 태평양 동부 적도 해역의 해수 온도가 평년보다 1~2℃가 높았던 점, 그리고 미국 기후분석센터가 이번 봄까지 날짜변경선(동경 180도)의 동쪽에서 남미 해안에 이르는 동태평양상의 해면 온도 상승이 유지될 것으로 예측한 점을 유념하면서 “이것이 엘니뇨라면 한국에도 간접으로 영향이 내릴 것이다”라고 전망한 바 있다.

 가뭄과 홍수는 반복된다. 가뭄을 이겨내기 위한 긴 싸움은 곧 홍수에 대한 대책으로 바뀌어야 한다. 가뭄이 발생하면 가뭄에만, 홍수가 나면 홍수에만 대비하는 즉흥성과 무계획성, 그리고 지나고 나면 깨끗이 잊어버리는 한국 사회의 집단 망각증이 재해의 가장 큰 적인지도 모른다.

李文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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