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 의원 끌어모아 몸 불리는 자민당
  • 도쿄. 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1997.08.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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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 의원 손속 귀대, 단독 과반수 육박 … 당내 주도권 싸움 불씨



자민당이 얼마전 5년 만에 직원 채용 시험을 실시했다. 각 대학에 모집 요강을 보내고 인터넷에 홍보한 결과 예상을 뛰어넘어 2백여 명이 응모했다. 그러자 자민당 관계자들은 야당으로 전락한 후 직원 수를 줄이기 위해 명예 퇴직자를 강제 모집했던 때를 생각하면 금석지감이 든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자민당이 이처럼 5년 만에 직원 채용을 재개했다는 것은 한마디로 당세(黨勢)가 급격히 커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한 예로 중의원 원내교섭단체 ‘21세기’의 리더 아라이 쇼케이 의원이 지난 8월 1일 자민당 복귀를 선언했다. 아라이 의원은 귀화한 재일 동포 출신으로, 4년 전 자민당 장기 집권이 무너지자 개혁 정치를 표방한 신진당으로 이적한 전력을 갖고 있다.

아라이 의원이 자민당에 복귀함으로써 자민당의 중의원 의석 수는 2백49석으로 불어났다. 무소속인 이토 소이치로 중의원 의장을 합치면 단독 과반수에서 의석이 1개 부족하나 2백 50석에 육박한 셈이다.

자민당은 작년 10월에 치른 중의원 총선거에서 2백 39석을 얻는 데 그쳤다. 단독 과반수에 1개 차로 육박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는, 자민당을 박차고 신진당 문을 두드렸던 이른바 ‘이적 구미’들이 하나둘 원대 복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신진당을 탈당해 자민당으로 복귀한 아이치 가즈오 전 방위청 장관이 좋은 예이다. 아이치 의원과 같이 총선거 후 신진당에서 자민당으로 당적을 옮긴 사람은 현제 5명에 이른다.

앞서의 아라이 의원처럼 총선거 전 신진당을 탈당한 옛 자민당 의원들도 줄을 이어 친정집 문을 두드리고 있다. 후나다 하지메·가키자와 코지 의원이 이들의 대표 격이다. ‘이적 구미’들이 친정에 복귀하면서 털어놓는 복귀의 변은 한결같다. 신진당 오자와 당수의 독선적인 당 운영으로 개혁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4년 전 정치 개혁을 외치며 자민당을 뛰쳐나갔던 행위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올 9월 연립유지파 · 보보연합파 2차 격돌
일본의 정치 평론가들은 ‘이적 구미’들의 자민당 복귀 러시는 선거구 사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다. 야당 의원 신분으로는 선거구민의 민원을 제때 해결해 줄 수 없기 때문에 여당인 자민당으로 다시 말을 갈아타는 것이라는 얘기이다.

자민당 안방 살림꾼인 가토 고이치 간사장은 자민당 의석수 증가를 ‘자력 회복’이라는 말로 자화자찬한다. 그의 당면 목표는 자민당 총재 선거가 실시되는 9월 말까지 기필코 단독으로 과반수 의석을 돌파하는 것이다.

촌선거 후 신진당을 탈당한 의원이 23명에 이르고, 무소속으로 남아 있는 의원도 13명이나 되어 가토 간사장의 목표 달성은 이제 시간 문제일 뿐이다. 정치 평론가들은 이 추세로 가다가는 자민당이 각 상임위원장을 독식할 수 있는 ‘안정 다수’(2백65석)나, 모든 위원회에서 야당 수를 능가할 수 있는 ‘절대 안정 다수’(2백 80석)를 확보하게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선거를 거치지 않는 과반수 돌파에는 거센 비판이 따르게 마련이다. 유권자 동의 없이 의석 수를 늘려 가다가는 또다시 자민당 정치에 대한 불신감이 팽배해질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그럼에도 가토 집행부가 과반수 돌파에 혈안이 되어 있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과반수 돌파 실적을 바탕으로 삼아 당내 주도권을 장악해 보겠다는 속셈인 것이다. 자민당은 현재 가토 간사장·야마자키 다쿠 정조회장을 중심으로 한 ‘3당 연립정권 유지파’와, 가지야마 세이로쿠 관방장관·가메이 시즈카 건설장관을 중심으로 한 ‘보보(保保)연합파’가 당내 주도권을 놓고 치열히 각축하고 있다.

전자인 연립정권 유지파는 현재 연립 여당인 자민당·사회민주당·신당 사키가케를 주축으로 하여 정국을 운영해 가자는 것이 목표이다. 자민당 의속 수에 사회민주당(15)과 사키가케(2) 의석을 합하면 안정 다수 의석인 2백65석을 무난히 넘게 된다는 것이 이들의 논거이다.

이들은 또 참의원 운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자민당은 현재 참의원에서도 단독 과반수를 1석 밑돌고 있다. 따라서 사회 민주당 협조 없이는 참의원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들 주장이다.

이제 비해 후자인 ‘봅연합파’는 같은 보수 정당인 신진당과의 연대를 중시한다. 그들은 색깔이 다른 사회민주당과 연립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예컨대 하시모토 정권의 최대 과제인 행정 개혁을 추진하는 데 노조 뒷받침을 받고 있는 사회민주당이 기구 축소를 환영할 리 없고 올 가을로 다가온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에도 반대 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같은 보수 색깔인 신진당과 손을 잡아 이같은 중대 현안을 뛰어넘자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오키나와 주둔군 용지법 개정을 둘러싸고 지난 5월 격돌한 연립유지파와 보보연합파의 1차 대결은 일단 보보연합파 승리로 끝났다. 하시모토 총리가 법안 통과를 중시하여 신진당과 제휴를 주장한 보보연합파 손을 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의 참패로 연립유지파의 당내 위상이 무너진 것은 아니다. 하시모토 총리는 본래 보보연합파에 가까운 오붙이 파벌 출신이다. 신진당 오자와 당수와도 옛 다나카·다케시타 파에서 한솥밥을 먹고 자란 사이이다.

그러나 지금 하시모토 총리가 언제까지나 보보연합파에 매달려 있을 형편은 아니다. 자민당 총재 선거가 9월로 임박했기 때문이다. 재선을 위해서는 그가 보보연합파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주위의 충고이다.

이렇게 보면 9월 총재 선거와 이에 따른 당직 개편이 연립유지파와 보보연합파가 격돌하는 2차 대결이다. 현재 분위기로 보아 하시모토 총재와 가토 간사장은 재선과 유임이 확실해 보인다. 연립유지파의 가토 간사장이 유임된다면 보보연합파의 가지야마 관방장관도 유임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보보연합파의 가메이 건설장관이 가토 간사장 유임에 적극 반대하고 있어 아직은 유동적인 요소가 많다. 자민당의 역대 간사장 중 세 번 역임한 사람이 아직 없다는 것이 표면적인 반대 이유이나 실은 연립유지파인 가토 간사장을 밀어내기 위한 책략이다.

보수 우경화 부활 움직임 눈여겨 보아야
가토 간사장이 이같은 보보연합파의 공세를 차단하기 위해 적극 추진하고 있는 것이 바로 앞서 말한 단독 과반수 돌파이다. 만약 가토 간사장의 목표대로 9월 총재 선거를 전후해 자민당이 단독 과반수를 돌파한다면 자민당 내에서는 가토 간사장을 중심으로 한 연립유지파의 위상이 많이 올라갈 것이다. 이에 따라 자민 사민 사키가케 3당 연립 정권의 연계가 한층 강화 될 것이며, 가토 간사장이 ‘포스트 하시모토’ 경쟁에서 가장 유력한 주자로 떠오르게 된다는 것이 일본 정치 평론가들의 분석이다.

반면 자민당의 단독 과반수 돌파는 보보연합파의 신진당 몰락을 재촉할 수도 있다. 우선 자민당 단독으로 과반수를 돌파하게 되면 보보연합파가 주장하는 신진당과의 정책 제휴가 무의미해진다. 신진당은 상대적 위상 저하로 이탈자가 대량 발생해 당 자체가 공중 분해될 위험성마저 안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신진당은 총선 이후 오자와 당수의 독선적인 당 운영에 비판적이던 히타 오소카와 전 총리 등 23명이 당을 떠난 상태이다.

한편 자민당의 단독 과반수 돌파는 ‘자민당 보수 우경화 정치 부활’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으로 보아서도 강 건너 불은 아니다. 예컨대 독도 영유권 문제나 어업 협정 개정 문제에서 단독 과반수를 발판으로 자민당 정권이 더욱 강경한 자세로 전환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또 가토 간사장이 어업협정 폐기에 완고한 입장을 보이고 있고, 이케다 외무장관이 어업협정 개정 시한을 9월로 못박고 있는 것도 자민당의 단독 과반수 돌파와 결코 무관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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