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반 만에 3백만명 죽었다.
  • 김 당 기자 ()
  • 승인 1998.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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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북한식량난민 472명이 증언한 식량난 실태보고서’단독 입수 · 공개

 적어도 3백만명이 죽었다. 아프가니스탄이나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지난 2년 반 동안 한반도 북쪽에서 일어난 일이다.

 어디 그뿐이랴. 올해에는 또다시 3백만명이 죽을 것으로 추정된다. 역시 한반도 북쪽의 일이다.

 그 남쪽에서는 올해 최대로 어림잡아 실업자가 3백만명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른바 국제통화기금(IMF)구제 금융 사태 때문이다. 그러나 남쪽은 허리띠를 졸라매면 되지만 북쪽은 외부의 지원이 없으면 절망적인 상황이다.

 북한은 3월2일 큰물피해대책위원회가 발표한 담화문을 통해 3월중순에는 식량 재고량이 바닥나게 될 것이라며, 올해 식량 사정이 어렵다고 국제 사회에 호소했다. 북한이 밝힌 1월1일 현재 식량 재고량은 16만7천t이다. 북한은‘이 식량 재고량으로 이미 1월에 하루 1인당 평균3백g씩, 2월에는 2백g씩 공급했으며, 3월에 백g씩 공급한다고 해도 3월 중순에는 재고량이 바닥나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례적인 절박한 호소였다.

 국제사회는 이‘구조신호’에 신속히 응답했다. 세계식량계획(WFP)은 같은날 발표한 성명에서‘북한의 식량 위기가 중대 국면에 처했다’고 밝혔다. 세계식량계획은, 북한 정부가 식량이 곧 바닥 날 것이라고 위급한 신호를 보낸 사실은 식량 위기가 중대 국면에 처해있다는 우리의 평가를 확인해 주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세계 식량 기구가 호소한 대북식량지원(올해65만t 목표)에 국제 사회가 신속하고 너그럽게 호응해 달라고 촉구했다.

 한국 정부와 시민 사회는 어떻게 호응할 것인가. 정부는 내 코가 석자이므로 애써 모른 체 할 것인가. 시민 사회는 어차피 한 번에 해결될 일도 아닌데 작년에 할 만큼 했으므로 올해는 걸러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 고민에 대한 답변으로, <시사저널>은 단독 입수한‘식량 난민 4백72명이 증언한 북한 식량난 실태 보고서’를 요약해 공개한다. 두려움과 눈물로 쓴 이 보고서는 외부세계가 아직 접근하지 못한 북한의 기근 과정에 대해 가장 포괄적이면서도, 삭제되지 않은 그림을 제공한다. <편집자>

 지난 2년 반 동안(95년 8월~98년1월31일)사망한 북한 주민은 적어도 3백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같은 사망자 수는 우리민족 서로 돕기 불교운동본부(집행위원장 법륜스님, 63쪽 인터뷰참조)가 탈북 식량난민 5백50여명(유효표본은 4백72명)을 직접 면점 인터뷰해 그 가족과 인민반(마을)의 사망률을 파악아고 이를 전국 규모로 확대해 집계한 사망률에 근거해 추산한 것이다. 또 현재 살아있는 사람 가운데서도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이거나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이 36%인 것으로 보아, 식량과 의약품 대량지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올해에도 최소 3백만명 이상이 사망할 것으로 추정된다.

평균사망률29%…   올해 최소 3백만명 사망 추정
 1,2차에 걸쳐 조사한 4백72명의 가족 2천5백83명중에서 사망자는 7백44명으로 95년8월 대홍수 이후 98년 1월31일까지의 사망률(총 가족수에 대한 지난 2년 반 동안의 총 사망자수 비율)은 29%이다. 또 이들이 살고 있는 북한 전역 2백31개 인민반의 사망률 또한 29%로 나타났다.

 이 같은 사망률과 월별 사망자 수의 급격한 증가 현황 그리고 인터뷰 대상자의 증언 등을 종합하면 지난 2년 여 동안의 사망자는 최소 3백만명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추계는 94년도 유엔의 북한 인구통계(2천43만명)와 비교해 보아도 맞아 떨어진다. 불교운동본부에 따르면, 유엔이 내놓은 북한 인구 통계를 기준으로 자체 집계한 시도별 사망률에 가중치를 부여햇을 경우 사망자 수는 5백44만명이다.(이번 조사에서 사망률이 드러나지 않은 남포 및 개성직할시의 경우 평양특별시의 사망률9%보다 1%포인트 높은 10%를 적용해 가산했다). 이를 역산하면 사망률ㅇ,S 26.6%이다.

주민 절반이 행방불명자 또는 사망자
 또 식량 사정이 비교적 나은 군인 1백50만명, 당원 1백50만명, 농민6백만명 등 총 9백만명 중에서 사망자가 단 1명도 없다고 가정하고 이를 제외한 1천1백43만명(일반주민)에 대해 앞서의 사망률 26.6%를 적용해도 사망자 수는 3백4만명이나 된다. 따라서 3백만명이라는 사망자 추산은 최소값이라는 것이다.

 인터뷰 대상자의 증언은 이 같은 추산을 뒷받침한다. 한 노동당원은“당원 교육ㅇㄹ 할 때‘지난 고난의 행군 동안 우리는 인적 손실이 2백난~2백5만명 정도 였고, 탈출자가 20만명 정도였다’는 보고가 있었다”라고 진술했다. 다른 증언자는 지난 2년간 2백80만명이 사망했다고 진술했으면, 또 다른 증언자는 현재 북한 인구가 1천9백만명 정도라고 진술했다. 또 북한 당국이 공민증을 재발급하려고 조사하니 주민 중 절반이 행불자나 사망자로 나타나 공민증 재발급 문제가 매우 어렵게 되었다는 증언도 있었다.

 세대 별로 보면 60대 이상 노인층의 사망률(74%)이 가장 높고 그 다음은 0~6세 유아층(45%)이다. 특히 유아 사망률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또 사망원인을 보면 굶어 죽는 사람과 병들어 죽는 사람에 이어 맞아 죽는 사람이 급격히 늘고 있다. 증언자들에 따르면, 지난해만 해도 북한 당국이 범죄자를 처벌했지만, 생활이 곤궁하고 사유재산 개념이 생기면서 주민들이 절도범을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대려 죽이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역별로는 자강도와 함흥에서 집단 사망자가 많았다.

 전염병도 많은 사망자를 발생시키고 있다. 이 역시 굶주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심한 영양 부족으로 면역체계가 망가졌기 때문에 질병 발생을 막을 능력이 떨어진 결과인 것이다.

 영양실조 상태인 데다 약품이 없는 상태에서 전염병은 온 마을을 통째로 휩쓸어 대량 사망 사태를 일으키고 있다. 대량 사망을 야기하는 전염병은 주로 수인성 전염병인 콜레라, 열병인 장티푸스 · 파라티푸스 등인데, 특히 잔해에는 파라티푸스 사망자가 많았던 것을 나타났다.

전염병에 속수무책…  의약품 지원 시급
 집단 삼아자의 경우 시체를 1명씩 묻지 못하고 수십 명씩 한꺼번에 얕게 파묻었기 때문에 올 봄에 얼음이 녹으면 다시 전염병이 창궐할 위험이 크다. 또 전기가 끊기고 수돗물 공급이 안 되어 함흥 같은 대도시에서는 물이 없어“물!물!”하면서 죽어가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질병의 대부분은 부적적한 식수나 오염된 물에 기인하고 있다.

 옷이 없고 물이 없어 빨래를 못하니 이가 많아서 옷을 뒤집어 입고 다니는 경우도 허다하다. 특히 탈북자나 부랑자를 수용하는 927수용소(이른바 꽃제비 보호소)에는 이 · 벼룩 · 빈대 · 옴이 창궐해 수용인들이 죽겠다고 아우성치고 있지만 이를 퇴치할 약품이 없다. 따라서 순수한 아사자보다 영양결핍이 겹친 질병 사망자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의약품 공급이 긴요하며, 특히 올 봄에는 전염병 예방약과 치료약 등이 시급하다.

 난민과 인터뷰한 자료에 따르면, 인구의 이동이 북동부 대도시로부터 음식을 찾을 수 잇는 시골 지역과 친척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중국으로 진행되고 있다. 조사 대상의 대부분은 도시 지역 출신이며, 시골출신은 드물다. 난민의 4%는 농부이다.

 기근이 더 심해지고 굶주림을 해결할 길이 없기 때문에 인구이동은 전반적으로 대규모로 이루어진다. 몸이 쇠약해진 상태에서 추운 겨울에 도보로 이동하는 사람들의 사망률도 높다.

 지난해만 해도 무조건 국경을 넘은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 북한 경비병에게 돈을 주고 넘는 사람이 많아졌다. 예전에는 양식 · 담배 · 술 등을 먹이고 오고 갔는데, 지금은 현금으로 1인당 조선돈 5천원 또는 만원과 공민증이나 가족을 잡혀 놓고 중국에 가서 친척에게 얻어서 가져다주기로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나 탈북자가 많은 해관(海關)이나 마을 근처 초소에는 경비병이 2명에서 5명으로 늘었고, 초소간격도 50m정도로 좁아지는 등 국경 경비가 삼엄해졌다.

 중국 장백현 같은데는 건너편의 혜산 등지에서 난민이 많이 넘어오는데, 숨을 인가가 거의 없는 외진 곳이라 탈북 즉시 잡혀가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지난 설 직전에는 1월25일에 53명, 26일에 41명이나 잡혀서 돌려보내졌다.

 중국에서 잡히면 변경수비대에 수용되어 돈을 빼앗기고, 2~3일후 북한으로 넘겨진 다음에는 현금과 짐을 빼앗기고 927수용소에 수용된다. 927수용소에는 5백명 정도가 수용되어 있는데 한방에 50명씩 들어가기 때문에 앉을 자리가 없어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한다. 밤에는 도망가지 못하도록 문을 잠그기 때문에 설사라도 하면 창살을 잡고 창문 밖으로 변을 본다는 것이 수용 경험이 있는 탈북자들의 증언이다.

북동부 지역도시, 식량 공급 안돼
 인터뷰 조사에 따르면, 배급 중단 시기는94년(30%)과 95년(32%)에 집중되어 있다. 대홍수 이전부터 이미 배급이 중단된 지역 또한 많다. 증언자들은, 장마당에는 식량이 늘어나고 가격이 내리고 있는데도 배급은 이루어지지 않고, 주민들은 식량을 살 돈이 없어 굶어 죽고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식량 절대 부족과 배급상의 모순 그리고 장사를 목적으로 한 식량 수입이 늘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딘다.

 배급중단은 사람들이 생존하기 위한 방법들에 대한 자세한 자료를 제공한다. 탈북자들이 증언한 생존 방법은 벼뿌리 · 소나무껍질 · 조개 등을 먹거나(45%) 나무 · 산나물 · 옷장사를 하고(42%)가구 집기를 팔아서(36%)연명하는 것이다. 더러는 친척으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도둑질을 하거나 구걸하는 사람도 많다.

 조사보고서는 북한 내에서 생산된 것이건 외부의 구호 노력에 의한 것이건 충분한 식량이 북동부 지역의 여러 도시에 공급되고 있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다. 국제식량기구 같은 국제 원조 기관들도 농번기가 오기 전에 이미 북한 전 지역의 식량 재고가 바닥나고 있다는 사실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따라서 이 조사 보고서는 국제 사회가 다음과 같은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우선 한국 정부를 포함해 식량을 제공하는 각국 정부는 즉시 유엔 식량 원조에 그들이 참여하는 곡물량을 늘려야 하며, 가능한한 빨리 지원 식량을 선적해야 한다.

 둘째, 더 많은 식량이 북동부 및 남동부 도시 지역에 제공되어야 하고 더 많은 국제기구 요원들이 아무런 제약 없이 위험한 상황에 놓인 북한 주민들에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최악의 위험에 처해있고, 최고의 치사율을 보이는 두 집단인 어린이와 노인에게 식량이 전달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유엔 산하기구, 특히 유엔아동구호기금(UNICEF)이나 국제적십자사 그리고 민간단체들은 전염병을 방지하기 위한 프로그램, 즉 상하수도 기능 정상화, 방역이나 면역 활동 개발에 더 많은 관심을 보여야 할 것이다.

 넷째, 유엔은 중국 정부와 협력하여 즉시 중국 국경을 따라 증가하고 있는 북한 난민들의 발생 원인과 위기 실태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만일 북동부 지역의 도시에 더 많은 식량이 넘어간다면 북한 난민이 중국에 유입되는 수가 감소할 것이다. 북한 주민이 국경을 넘는 것은 다만 북한 내에서 식량을 구하지 못하는데 그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미국은 북한에 대한 제재조처를 즉시 해제해야한다. 북한의 치명적인 기근은 이런 제재가 우선적으로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인다는 증거들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이 민간인들에 대한 이런 잔인한 전쟁을 없애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다는 것은 과거의 일이다.

 마지막으로 만일 북한 정부가 대대적인 농업 개혁과 유사한 개혁을 시행하지 않는다면 이 같은 비극은 해마다 되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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