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균질’ 얼음땅 깊이 자연의 비밀을 캔다
  • 장순근 (한국해양연구소 극지연구센터 책임연구원) ()
  • 승인 1999.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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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기지 연구원들의 남극 체험 24시

세종기지는 88년2월17일에 준공된 서남극 사우스세틀랜드 제도 킹조지 섬에 있는 한국의 남극기지이다. 남아메리카 대륙의 끝에서 드레이크 해협을 건너 남쪽으로 내려가 손가락 같은 남극 반도의 왼쪽 위에 읬는 점들이 사우스세틀랜드 제도이다. 사우스세틀랜드제도는 1819년 남극에서 가장 먼저 발견되어 한때는 물개와 고래 사냥터가 되었다. 사우스세틀랜드제도를 구성한 섬 중에 가장 큰 킹조지 섬은 길이 72km, 너비 27km로 제주도보다 작은 섬이다. 섬의 95%는 1년 내내 얼음으로 덮여있고, 북쪽 해안은 암벽이나 빙벽이어서 사람이 가까이 가기 힘들다. 그러나 남쪽 해안은 땅이 드러나고 상륙할 수 있어 한국을 비롯해 아르헨티나 러시아 칠레 폴란드 브라질 중국 우루과이 여덟 나라의 상주 기지가 있다.

 현재 세종기지에서는 정호성 박사를 대장으로 한 한국 12차 남극과학연구단 월동 연구대 14명이 기지 주변의 자연 변화를관측해 기록하고 있다. 연구원들의 주요한 관측 내용은 기상 · 고층 대기 · 지자기 · 지진파 · 일반 해양 변화이다. 기지 유지반은 월동 대원들이 안전하게 생활 할 수 있도록 발전기와 전기 및 기계 시설과 통신 장비를 운전하고 중장비를 관리한다. 그밖에 의사와 조리사가 상주한다. 음식물은 한식 · 양식 · 중식 등 다양하게 해 먹지만, 신선한 야채와 과일이 부족해 간간이 칠레 공군기를 통해 공급 받는다. 남극에는 물 외에는 모든 것을 가지고 가야 한다.

 4월부터 낮이 짧아지기 시작하고 눈보라가 심하게 몰아치면 1-2m 앞이 보이지 않아 실내에 갇히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를 대비해 기지에는 헬스 기구 · 당구대 · 도서실 · 탁구대 · 비디오 및 노래방 · 실내 농구 시설 등을 갖추어 놓고 있다. 눈보라가 그치면 밝은 태양이 나타나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한다. 세종기지 앞바다는 3년에 한 번씩 두께 60cm정도로 언다. 그 때는 얼어붙은 바다위로 외국 기지나 다른 섬을 찾아갈 수도 있으며, 얼음 낚시를 할 수 있다.

빙원 위에서 길 잃고 헤매기도
 일반적으로 남극은 여섯 달이 낮이며 여섯 달이 밤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남극점의 경우이며, 세종기지는 남위 65°13′에 있어 하루 24시간이 낮이거나 밤인 날은 없다. 6월 하순 밤이 가장 길어 아침 10시에 해가 뜨고 오후2시에 져 아침과 저녁은 어두울 때 먹는다. 반면 12월 하순은 오후 11시에 어두워지고 새벽3시에 밝아져 오전 1시, 즉 한밤중에도 조명 장치 없이 신문을 볼 수 있다.

 기지 생활은 공동 생활이라는 점 외에는 일반 가정 생활과 같다. 정식 일과를 끝내면 휴식 시간인데 칠레 텔레비전을 시청하거나 목각을 하는 등 취향에 따라 여가 시간을 즐긴다. 최근에는 인터넷(http://sejong.kordi.re.kr)을 통해 세상 돌아가는 것도 즉시 알 수 있다. 기지에서 쓰는 시간은 한국 시간보다 12시간 늦다. 고국에서 오는 우편물은 칠레 공군기를 통해 전해지는데, 보통 한 달반 정도 걸린다. 전화는 칠레 산티아고 시내 번호(562-4410257)이다.

 월동 대원들은 간혹 주변의 외국 기지를 방문하며, 외국 기지 대원들도 세종기지를 방문한다. 남극은 사람이 그리운 곳이므로 언어와 문화와 종교가 달라도 서로 쉽게 친구가 된다. 날씨가 나빠지면 자고 오고, 외국의 문화가 신기하고 음식이 유난히 맛있게 느껴진다.

 남극은 아름답지만 위험한 곳이다. 7월 초 일렬종대를 이룬 채 얼어붙은 바다 위를 걸어가는 펭귄 무리와, 한겨울 눈보라가 지나간 다음의 기지 주변 풍경은 신비함과 아름다움의 극치이다. 반면 91년 2월초 여름철 대원을 바래다 주고 돌아오다 폭풍에 밀려 우루과이 기지로 피신했던 일과, 그해 8월 빙원에서 꼬박 하룻밤을 헤맸던 일은 남극생활이 얼마나 위험한지 일깨운다. 실제 93년 5월 킹조지 섬 남서쪽 넬슨 섬에서 월동하던 체코 사람 2명이 세종기지에서 돌아가다가 실종되었다. 카누가 전복해 생긴 비극이다.

 남극이 누구의 땅인가 하는 문제는 흥미로운 문제 가운데 하나이다. 영국이 1908년 처음으로 남극 영유권을 주장한 뒤 곧이어 일곱 나라가 영유권을 주장했다. 영유권을 주장하는근거는 발견, 탐험, 역사적 승계, 지리적 연결, 자국민 거주 등 여러 가지이다. 남극 반도 일대는 영국 · 칠레 · 아르헨티나의 영유권 주장이 중복되어 지명이 다르다. 예컨대 세종기지가 있는 킹조지 섬을 영국은 킹조지 섬, 칠레는 그에 해당하는 스페인어 ‘이슬라 레이 호르헤’라고 부르고, 아르헨티나는 ‘5월25일섬’으로 부른다. 하지만 정작 남극 발견과 탐험에 큰 공로가 있는 미국과 러시아는 영유권을 주장하지 않고 다른 나라의 주장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한편 남극조약은 남극을 새로이 연구했다고 해서 영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세종기지까지는 서울을 출발해 뉴욕과 칠레의 수도인 산티아고를 거쳐 남아메리카의 끝인 푼타아레나스까지 민간 여객기로 갈 수 있다. 여기에서 세종기지까지 약 1,200km는 민간 비행기나 정기 선편이 없어, 칠레 공군기나 연구선을 타고 가야 한다. 공군기를 타면 3시간, 연구선을 타면 3일이 걸린다. 칠레 공군기는 1년 전에 예약해야 하며, 연구 등 특별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비용을 많이 들여 남극 관광선을 이용하면 남극 반도 일대를 관광할 수 있다.

 현재 남극에 관심이 있어 남극조약에 가입한 국가는 마흔네 나라이다. 그 가운데 열여덟 나라가 상주 기지 34개를 운영하고 있다. 남극조약에 가입한 나라가 모두 같은 자격이 있는 것은아니고, 남극조약의 이사국 격인 남극조약 협의당사국이 남극을 관장한다. 남극조약 협의당사국은 한국을 포함해 27개국이다. 한국은 세종 기지를 건설하고, 그동안 수행했던 남극 연구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남극조약 협의당사국 자격을 획득했다.

 이제 한국은 세종기지에 만족하지 말고 남극 대륙에 제2기지를 짓고 쇄빙선을 건조해야 한다. 21세기 우주 시대를 맞이해 연구 내용도 확충해 고층 대기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얼음 자체와 빙원 아래 지형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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