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체절명의 승부수 김영삼 개혁 6개월내 결판난다
  • 김재일 정치부 차장 ()
  • 승인 2006.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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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지도자에게는 새로운 임무가 부여된다. ‘신한국 창조’를 기치로 내걸고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 그는 ‘개혁’이란 사명을 스스로 짐지며 새 정부를 출범시켰다. 그가 무엇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는 국민의 최대 관심사이다. 개혁 없이는 나라가 좌초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김영삼 대통령 시대가 열린 것이다. 개혁의 내용은 무엇일까, 개혁은 과연 성공할까.

 김대통령은 개혁과 관련해 측근들에게 “걱정하지 말라”면서 자신감을 보였다고 알려진다. 청와대 정책수석비서관에 전병민씨를 내정했다 취소하는 실수가 있었고, 황인성 새 국무총리는 참신한 인물이 아니라는 중평인데도 측근들은 김대통령의 변화와 개혁에 대한 의지는 확고하다고 말한다. 한 측근은 김대통령이 개혁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사안에 대한 연구를 끝냈다고 전한다. 김대통령은 제도를 개혁하기에 앞서 ‘신생아실에서 화장터까지 봉투를 줘야 대접받는’ 총체적 부패 구조를 혁파하기 위해 메스를 댈 것으로 보인다. 한 검찰 관계자는 새 정부 출범 이후 터뜨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한 준비에 눈코 뜰 새없이 바쁘다고 전한다. 이미 많은 자료가 축적돼 있다고 한다. 곧 개혁 분위기를 잡기 위해 사정의 매서운 칼날이 번뜩일 것 같다.

 김대통령은 우선 ‘끗발’있는 기관부터 손을 댈 것이라고 한다. 한 소식통은 검찰 안기부 감사원 등 사정기관이 정화 대상이라고 말한다. 개혁의 대상인 기관들이 예전의 모습으로 개혁을 주도하면 바라는 성과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기능 중복이라는 논란을 불러일으킨 부정방지위원회는 자료조사권을 가지고 공직자 재산 공개를 추진하며, 부정 방지 방안을 마련하리라 예상된다.

 

한국적 ‘경제 페레스트로이카’필요

 3월에는 3당 합당으로 비대해진 민자당에 대한 감축을 단행한다. 민자당 당무개선협의회에 참여하고 있는 한 의원에 따르면, 시도 사무처장과 정부 파견 2급 공무원을 포함해 80여명에 달하는 국장급 당료 중 40명 정도를 정리하고, 중앙당에서 급료가 나가는 각 지구당 직원 4명을 포함한 유급 당료 1천4백명 중 45% 정도를 줄일 예정이다. 또한 중앙당 23개 실국을 15개로 통폐합하고 8개 시도지부를 5개로 줄인다. 사무 부총장 3명과 연수원 부원장 5명은 각각 1명으로, 정책조정실장 3명과 민원ㆍ운영실장도 정책조정실장 1명으로 축소조정한다.

 이런 방향으로 당을 축소하면 월30억원에 이르는 중앙당 지출액이 절반 정도로 줄어든다. 지난날 당의 경비는 대통령이 지급하는 것이 통례였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국고 부담금을 올리더라도 청와대의 지원 없이 당이 가동되도록 하라”고 말해 당 축소에 대해 강한 의지를 보였다고 한다. 당의 개혁은 인원감축과 재배치를 통해 업무 효율을 높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김대통령의 취임을 전후해 개혁이란 말은 많이 나왔으나 정작 제시된 내용은 별로 없다. 민자당 입장은 대통령의 의지를 뒷받침하겠다는 정도가 고작이고, 당의 정책도 “농지의 자율 처분권을 대폭 확대한다”는 등 옛말을 연장한 데 지나지 않는다. 각론이 마련돼 있지 않은 것이다. 민자당 강남갑 지구당위원장인 황병태 전 의원은 부정부패 척결과 개혁에 관한 내용은 경제 활성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황병태씨는 나라의 사활이 경제에 걸려 있으므로 경제 관련 제도와 관행을 선진국형으로 바꾸는 ‘한국적 페레스트로이카’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박관용 대통령비서실장은 개혁 추진을 관장하는 총사령관이다. “대통령의 가장 충실한 심부름꾼”이란 말로 자기의 역할을 규정한대로 그는 대통령을 대신해 개혁 작업을 주도하게 된다. 그는 각 부처와 각종 개혁위원회 입장을 조정한다. 관측통들은 개혁 임무를 맡은 비서실장이 기득권 세력, 특히 관료사회로부터 매도의 대상이 되리라고 말한다. 한 여당 의원은 “박실장은 비서실장을 끝으로 정치를 끝낸다는 마음으로 직무에 임해야 한다. 차세대 지도자를 꿈꾼다든지 다른 정치적 야심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앞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생각해 인심을 얻으려 하면 개혁은 물거품이 된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청와대 비서실이 모든 힘을 쥐고 개혁을 주도할 때 권0위주의적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염려하기도 한다. 이들은 청와대가 ‘일하는 청와대’가 아니라 예전처럼 ‘권부’로 군림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충성도 높은 소수가 밀실에서 행하는 배타적 의사 결정과 독단을 경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대통령부터 기득권 포기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부패 구조와 관련해 정부의 규제를 대폭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들은 만연한 부정부패 현상이 관청의 힘과 비례한다고 본다. 예컨대 토지관계법이 87개에 달해 집 한채를 지으려면 40여개소의 관청과 기관을 돌아다녀야 한다. 그러므로 관청의 인허가 사항을 신고제로 바꿔 공무원의 재량권과 민간인 접촉 횟수를 줄이는 것이 부정부패 사슬의 고기를 끊는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정부는 더 이상 민간을 앞에서 끄는 존재가 아니라 뒤에서 미는 존재가 돼야 한다. 이제는 그런 여건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는 정부의 간섭과 직접규제를 줄이라는 뜻이다. 금융제도 개혁을 예로 들면, 중앙 은행이 독립해야 하고 금융기관에 대한 정부 인사권을 축소해야 하는데, 이는 곧 대통령이 자기의 권한을 포기하는 것을 말한다. 대통령 자신이 기득권을 포기할 의지가 확고할 때에만 개혁은 실현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권력 안보에 활용돼온 안기부에 대해서도 그 편제와 기능을 ‘획기적이고도 과감하게’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앙정보부 차장보와 보안사령관을 역임한 강창성 민주당 의원은 안기부 개혁 방향을 이렇게 설명한다. 안기부는 대공 문제를 제외한 모든 국내 문제를 검찰과 경찰에 넘겨야 한다. 정치사찰이나 전화도청 등 국민생활을 침해하는 활동을 중지하고 통상과 국제 정세, 기술개발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일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인원을 대폭 줄일 뿐 아니라 전체 요원을 무역ㆍ기계 등 각 전문분야 석사이상 학력 소지자로 교체해 외무부ㆍ상공부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또 예산과 기밀 사항은 국회가 심의하도록 하고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민의 알 권리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미국처럼 정보부의 편제와 기능을 공개해 국민의 지지와 도움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개혁은 제와 틀을 수정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기존의 틀과 제도 안에서 운영ㆍ관리 방식을 바꾸는 개선과는 구별된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새로운 국제환경에 적응하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개혁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은다. 과거 3ㆍ5ㆍ6공 등 군부 정권은 미약한 정통성을 보완하기 위해 부패 척결과 개혁을 내걸고 출범했다. 그러나 김영삼 정권은 자타가 공인하는 문민정권으로 정통성을 확보했을 뿐 아니라 김대통령 자신이 대중적 지지 기반을 가지고 있다. 비교적 부담없이 개혁을 추진할 수 있다. 한 관측통은 “현재 우리사회는 개혁 말고는 어떤 대안도 필요치 않다”고 잘라 말하고, 새 정부가 ‘개혁은 창조적 파괴’라는 시각을 가지고 개혁을 추진해 달라고 주문했다. 김영삼 정부가 추진할 개혁의 걸림돌은 무엇인가, 좌절할 가능성은 없는가. 전문가들은 기득권 세력에 업혀 집권에 성공한 김대통령이 그 세력에 의해 포박당할 가능성도 있음을 지적한다. 외국의 예를 보아도 대개의 경우 개혁은 실패했다. 옛 소련의 고르바초프는 사회 저변 세력의 지지 없이 소수의 권력 엘리트만으로 개혁을 추진하다 중도하차했다. 베네수엘라의 경우 시장경제체제로 과감하게 전환했으나, 급격한 체제 전환 때문에 경제위기가 가속화 했을 뿐 이날 민주화도 불발로 그쳤다. 개혁 실패의 예로는 특히 아르헨티나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알폰신 정권은 정치제도 정상화와 경제위기 치유라는 과제를 안고 출발했다. 그가 있는 급진당이 국회에서 다수 의석을 얻어 개혁은 성공할 듯 했다. 게다가 선거에서 패배한 패론주의자들이 분열돼 알폰신은 자기의 개혁이 성공하리라 확신했다. 그러나 실해했다. 중도좌파 세력과의 갈등을 극복하지 못한 탓이다.

 개혁은 어렵고도 위험한 일다. 그래서 정략가 마키아벨리는 “통치기반이 확실할 때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이 권력을 행사하고 관리해본 경험이 없음을 들어 개혁의 앞날에 대해 미심쩍어 하는 사람도 꽤 있다. 실제로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김영삼 정부가 위기를 만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에대해 전문가들은 개혁이 절체절명의 과제인 만큼 야당도 김정권의 개혁을 밀어 주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핵폭탄 투하’식 개혁 추진 예상

 

 박찬욱 교수(서울대ㆍ정치학)는 기득권세력, 즉 민자당과 궤를 같이하는 국가 조직ㆍ관료ㆍ재벌ㆍ군부가 개혁에 가장 큰 장애물이 되리라고 지적한다. 개혁은 기존 세력 분포의 변혁을 뜻하므로 기득권층으로서는 수구적 자세를 견지할 것이다. 재무부는 중아 은행의 독립을 반대하고, 내무부는 지방자치단체장선거에 심한 거부 반응을 보인다. 교육부는 대학의 자율권 학대를 반길 리 없다. 전문가들은 개혁을 시작한 지 4~5년 뒤에야 개혁지지 세력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김대통령의 개혁 의지가 확고하다면 그는 인기없는 대통령이 될 수 밖에 없다.

 많은 사람이 부닥친 과제에 정면대결하는 김대통령의 과단성에 기대를 건다. 한 측근은 그의 성향으로 보아 가장 민감한 문제의 중심에 핵폭탄을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과감하게 개혁을 추진하리라고 예상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개혁의 상징성이 강한’ 금융실명제를 95년까지 끌지 않고 어느날 갑자기 집행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김대통령이 개혁을 추진하다 멈추면 갈등이 확대 재생산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개혁이 실패하면 학생과 혁신 세력이 다시 등장할 뿐만 아니라 기득권층도 정부에 등을 돌린다. 전국민으로부터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김대통령은 선거 기간에 ‘안정 속의 개혁’이라는 다소 애매한 구호를 내걸었다. 그러나 지금은 안정과 개혁중 개혁을 먼저 선택해야 할 시점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개혁이라는 수단을 통해 안정이란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말이다.

 혁명과 달리 개혁은 대부분 위에서부터 행해지며 집권자의 의지에 따라 향방을 달리한다. 전문가들은 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한 첫째 조건으로 최고통치자의 의지를 꼽는다. 뇌물 수수를 묵인하지 않고 며느리를 처형한 장개석 같은 집권자의 결연한 의지가 개혁의 필수조건이라는 뜻이다.  이와 함께 중요한 것은 개혁의 시기이다. 개혁은 새로운 정부나 지도자가 등장하는 시기에만 가능하다. 권력은 집권과 동시에 보수화하고 부패하기 쉬운 속성를 지녔기 때문이다. 정권이 현실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생기기 전, 집권 6개월 이내에 하지 않으면 개혁은 어렵다. 따라서 대부분의 관측통은 김영삼 정권의 개혁 성공과 안정기반 구축은 취임후 6개월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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