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에게 한국은 산타클로스”
  • 한종호 기자 ()
  • 승인 1992.04.0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재일 초대 불가리아 대사

 북방정책의 바람을 타고 90년 6월 한국과 수교를 맺은 불가리아는 남·북한 대사관이 모두 상주해 있는 드문 나라의 하나가 됐다. 이달 초 재외공관장회의 참석을 위해 일시귀국한 金左□ 초대 □불가리아대사(58)를 통해 한·불가리아 관계의 현주소를 알아본다.

수교 이후 한·불가리아 관계에는 어떤 진전이 있는가?
 올림픽 이후 불가리아에서는 ‘경제기적을 이룬 나라’ 한국의 붐이 일었다. 한국이라면 정말 무조건 좋아한다. 우리 자동차와 전자제품도 인기가 높다. 국제기구에서 우리 입장을 적극 지지하고 있고 대전엑스포에도 유럽에서는 맨 처음으로 참가신청을 냈다.

불가리아의 경제개혁 속도는 어떤가?
 현재 불가리아는 작은 상점 등은 사유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외국자본 유입이 늦어지고 또 기존의 특권층이 사회적 비난을 의식하여 돈을 움켜쥐고 있기 때문에 대규모 국영기업체의 민영화가 잘 안되고 있다. 아직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태지만 바로 지금이 투자의 적기라고 본다. 우리 정부에서 컬러텔레비전 합작공장에 5백만달러를 지원할 예정인데 이를 시발점으로 개인기업의 투자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불가리아에 대한 한국의 경제지원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불가리아는 한국을 ‘산타클로스’로 생각하고 있다. 매년 무상으로 10만~20만달러 정도의 원조를 하고 있는데 효과가 크다. 1차 무상지원은 경운기 등 농기구 중심으로 했는데 농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그 외에 설탕 라면 컴퓨터 등 불가리아가 꼭 필요로하는 것으로 품목선정에 신경을 많이 썼더니 반응이 참 좋다.

동구권 국가는 한국이 수교당시 약속을 지키지 않아 대한 감정이 좋지 않다는 지적도 있는데.
 불가리아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요즘엔 대사관으로 매일 10여통의 편지가 온다. ‘우리 아이가 앓고 있는데 치료비를 지원해달라’거나 ‘대학에 진학할 학비를 대달라’ ‘농사지을 말을 한 마리 사달라’등 여러 가지인데 모두 한국에 대한 감정이 아주 좋다. 따로 예산이 없어 도와주지는 못하고 생각다 못해 장학기금을 만들려고 지난 1월24일에 한-불가리아 친선자선의 밤 행사를 마련했다. 대통령 이하 각 기관장이 참석한 이 자리에서 무려 8만5천달러가 모금되어 매년 50여명이 장학금 혜택을 받게 됐다. 이 행사는 현지언론에 대서특필 됐고 대사관으로 감사편지가 쏟아져 들었다. 장학기금사업으로 몇백만달러 지원한 것 이상의 효과를 거둔 셈이다.

북한대사 金平一(金正一의 이복동생)과는 접촉할 기회가 있는가?
 리셉션 등에서 자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금강산 구경도 하고 이산가족도 만나야 하지 않겠냐”고 하면 “제주도가 좋다는데 한번 가보고 싶다”고 응수한다. “정상회담이 잘돼서 남북간에 획기적 변화가 왔으면 좋겠다”고 하자 김평일은 방북 인사석방을 들고나왔다. 가끔 의견차이가 있지만 큰 대립은 없다. 그런데 단독으로 만나는 것은 꺼리는 눈치다. 같이 밥먹으면서 세상이야기나 하자고 몇번 제안을 했는데 응하지 않았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입장이 아닌 모양이다. 김정일과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북한공관과는 교류가 없는가?
 외교관이면 북한에서는 대단히 자유로운 직업이지만 그들은 절대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는다. 우리가 동구와 외교관계를 맺을 무렵에는 뒤지고 있다는 생각에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요즘은 그냥 모임에 잘 나오고 원상태로 회복하려고 노력하는 눈치다.

우리 교민들의 생활은 어떤가?
 유학생이 4명, 상사원 가족이 몇 명 있다. 개인사업차 많이 드나들기는 하는데 아직은 탐색과정이라 정착한 사람은 별로 없다. 56년에는 북한유학생이 2백50여명 있었다고 한다. 그 가운데 4명이 62년에 망명하여 지금도 이곳에 살고 있다. 그 4명 중 이상종 이장직 두사람은 남한국적을 얻으려고 아직까지 무국적자로 남아 있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이들을 받아들일 것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현지 생활에 어려움은 없나?
 처음 7개월간은 호텔신세를 져야 했다. 공관원은 모두 5명인데 물자가 부족해 터키나 그리스, 독일에서 자동차를 이용해 쌀 등 식량과 사무용품을 사온다. 봄이나 여름에는 야채라도 있는데 겨울에는 지내기 힘들다. 교수시찰단이라도 한번 다녀가면 라면 고추장볶음 등 남은 음식을 두고 가기 때문에 가장 반가운 손님이다. 지금은 공관과 숙소를 다 구해 안정을 찾았지만 식료품과 생필품은 여전히 부족하다. 통신문제에도 어려움이 많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