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개혁 총대 누가 멜까
  • 박재권 기자 ()
  • 승인 1999.11.2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10주년 되던 날, 또 하나의 ‘아성’이 워싱턴에서 무너졌다. 13년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로 재임해 온 미셸 캉드쉬 총재(66)가 임기를 2년이나 남겨둔 시점에서 느닷없이 사임 의사를 밝힌 것이다.

지난 11월 9일 그는 3백 명 가까운 국제통화기금 간부들 앞에서 ‘밝히고 싶지 않은 개인적 사유들’ 때문에 사임한다고 밝혔다. 그 사유가 무엇인지를 두고 구구한 억측이 나돌기도 했다.

하지만 최대 관심사는 역시 차기 총재로 누가 선출되느냐는 것이었다. 전통적으로 세계은행(IBRD) 총재는 미국 몫, 국제통화기금 총재는 유럽 몫으로 되어 왔다. 이를 입증하듯, 국제통화기금 총재는 유럽에서도 가장 영향력이 센 프랑스의 전유물이었다. 캉드쉬 총재 이전에도 프랑스인이 맡았고, 70년대 5년을 제외하면 63년부터 내내 프랑스인이 총재를 맡았다. 그 때문에 ‘이번만은 안 된다’는 인식이 유럽 국가들 사이에 팽배하다.

“프랑스가 장기 집권... 이번엔 독일 차례”
그 덕분에 가장 유력한 후보로 떠오른 인물이 독일 재무차관 카이오 코흐-베저(55)이다. 독일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 다닐 때 인턴으로 세계은행에 들어갔다. 6개 국어를 구사할 정도로 어학에 탁월한 소질을 보인 그는 70년대 말 로버트 맥나마라 세계은행 총재를 보필하기도 했다. 96~99년에는 세계은행 사무총장을 맡음으로써, 독일인으로서는 최고위 국제기구 책임자가 되었다. 지난 5월 독일 재무차관에 임명된 후로는 줄 국제금융 · 통화 문제를 담당하고 있다.

분데스방크 위르겐 스타르크 부총재는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프랑스인이 오랫동안 했으니, 이제는 독일인 차례다”라고 말했다. 독일 정부도 그를 측면 지원하고 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 국가들도 그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다고 한다. 만약 그가 국제통화기금 총재에 선출된다면, 이것은 독일의 국제적 위사이 그만큼 높아졌음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 될 것이다.

캉드쉬 후임자 선출은 올해 안에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독일 정부 관리들은 오는 12월 10일 헬싱키에서 개최될 유럽연합 지도자 회의에서 결정되지 않겠느냐고 전망한다. 유럽 국가들 내부에서 후보가 결정되면, 국제통화기금은 24인 집행이사회를 열고 공식으로 선출 절차를 밟을 것이다. 1백82개 회원국을 대표하는 국제통화기금 총재가 사실상 유럽과 미국의 역학 관계에서 결정되는 셈이다.

코흐-베저 이외에도 여러 인사들이 차기 총재 감으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실제로 캉드쉬 뒤를 이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장 클로드 트리셰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는 8년 임기인 차기 유럽 중앙은행 총재로 내정되었고, 고든 브라운 영국 재무장관은 자신이 총재로 선출될 가능성이 없다고 일축했다. 또 다른 독일인 후보 호르스트 쾰러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총재는 현재의 직책을 맡은 지 1년밖에 안되어 옮기기 어렵고 머빈킹 영국 중앙은행 부총재는 잘 모르겠다고 얼버무렸다. 그밖에 국제결제은행(BIS) 총재 앤드류 크로켓, 이탈리아 재무장관 마리오 드라기가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누가 선출되든, 분명한 것은 국제통화기금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그 중에서도 다음 세 가지를 시급한 개혁 과제로 꼽는다. 첫째, 국제통화기금의 역할을 정확히 규정하고, 둘째, 미국 재무부와의 관계를 다시 설정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입김을 배제해야만, 러시아에는 조건 없이 1백70억 달러를 지원하면서도 인도네시아는 수하르토 퇴진이라는 단서를 달았던 차별적인 태도를 시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계은행과 업무가 중첩되지 않도록 조정하고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제통화기금을 한층 책임 있고 투명한 국제기구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