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센 기관 安家 -왜 멀쩡히 남겨둘까
  • 오민수 기자 ()
  • 승인 2006.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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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 기무사 검찰 경찰 서울시청 ‘대량’ 보유

 지금은 최고 권부 청와대의 안가가 헐리고, 그 자리에 시민 공원이 들어서는 시절이다. 지난 3월 초순 굴삭기가 궁정동.삼청동.청운동에 있는 안가 12채를 무너뜨렸다.자기가 지은 궁정동 안가에서 죽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5.6 공화국에서도 안가는 내내 밀실 정치의 산실이었다. 굴삭기의 굉음은 밀실 정치가 막을 내리고 문민 정부가 들어섰음을 웅변했다.

안가 최다 소유 경찰,대학가에 상황실 설치

 그런데 청와대의 안가가 헐리는 세상이 되었어도 안기부.기무사.검찰청.경찰청.서울시청의 안가들은 그대로 있다. 미국 뉴욕에서 간행된 <랜덤 하우스 사전>은 안가 (safe house)를 “평범한 외양 때문에 은신이나 도피 또는 은밀한 활동을 하기에 적합한, 안전하고 눈에 띄지 않는 건물”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고문하는 장소로 이용돼 국민의 지탄을 받아온 우리나라 수사기관의 안가는, 외양이 평범하지도 않을뿐더러 대부분 위치가 노출돼 안가로서 제 기능을 못한다.

 현재 안기부 안가의 위치나 규모는 남산과 동대문구 이문동에 있는 본부 건물 외에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검찰 안가는 삼청동 감사원 건물 맞은편에 있는 예 월남 대사관의 관저였다. 75년 월남이 패망한 뒤 외무부가 관리해오다 83년 법무부로 이관했다. 대지 1천10평에 건평 1백84평인 검찰 안가는 주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사들이 이용한다. 여기에서 장영자.이철의 사건,5공비리 사건,수서 사건 등 고위층 비리 사건이나 굵직한 시국 사건을 처리했다.

 검찰 안가 바로 옆에 있는 삼청동 우체국의 한 직원은 “거기는 우편물도 배달하지 않는다. 문패도 없고 주소도 모른다”라고 말한다. 그만큼 통제가 삼엄하다. 삼청동 검찰 안가에는 수사 검사와 사건 관련자 외에는 일절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고위층이 관련되거나 민감한 사건 등 보안을 철저히 지켜야 하는 사건을 수사할 때 삼청도 안가를 이용한다. 그렇다고 꼭 안가에서만 수사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호텔을 사용하기도 한다”라고 밝혔다. 여하튼 이 검찰 안가는 그동안 사건의 진실을 축소.은폐하는 장소로 활용돼 왔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베트남과 정식 수교한 지금 삼청동 검찰 안가는 5월게 베트남 정부로 넘길 것이라는 설이 있는데, 검찰이 다른 곳에 안가를 마련할지, 아예 안가를 없앨지 주의 깊게 지켜볼 일이다.

 가장 많은 안가를 소유한 수사기관은 경찰이다. 경찰 안가는 알려진 곳만 해도 남영동 대공분실(경찰청 대공수사단 대공3부), 종로구 옥인동에 있는 富國商社(서울시 경찰청 5계, 학원.종교 담당), 영등포구 신길동에 있는 신길산업(경찰청 특수수사 2대), 사직공원 근처에 있는 특수수사 1대. 동대문구 장안동에 있는 경동산업(서울시 경찰청 5계), 서강대 부근 노고산동에 있는 경찰청 소속 정보경찰관 사무실 등이다. 특히 노고산동에 정보경찰관 사무실 등이다. 특히 노고산동에 있는 안가는 국회.정당.언론기관.정보부처에 출입하는 정보과 형사들의 집결지인데, 대학가 주변인데도  위장이 철저해 아직 노출되지 않았다. 이밖에도 경찰은 각 대학 주변에 이른바 상황실 (CP)를 설치해 학생운동의 동향을 살펴왔다.

 경찰 안가는 부국상사.신길산업이란 이름에서 보듯 주로 기업체로 위장하는데 주민드릉ㄴ 그곳을 안기부 분실로 알고 있다. “저거 안기부 아닌가. 아주 무서운 곳이지. 가끔씩 자가용만 왔다갔다 하는데 우리는 얼씬도 못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가 없지.” 종로구 옥인동 부국상사 주변에 사는 한 노인(70)은 주위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법 동네사정을 상세히 꿰는 토박이나 부동산 소개업자만이 ‘경찰 소유일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3월22일 오후 12시10분 종로구 옥인동 부국상상 앞.차량번호 ‘서울 X루 2552’ 승합차가 건물 앞에 이르자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열렸다. 머리를 짧게 깎은 20대 초반 청년들이 잠시 문밖으로 나왔다. 기자가 건물의 쓰임새를 묻자 그들은 “보면 모르냐,여기는 회사다. 우리는 여기서 일하는 노가다일뿐이다. 빨리 가는 게 좋을 거다”라고 짧게 끊어 대답한 뒤 문 안으로 사라졌다. 그들은 굳게 닫힌 철문 안쪽에서 기자의 행동에 계속 신경을 쓰는 눈치였다.이런 사정은 다른 안가에서도 마찬가지다.

 경찰 안가는 대공 수사와 정보 수집 그리고 특수 수사 용도로 쓰인다. 검찰 안가와 마찬가지로 경찰 안가도 통제가 엄격하면 관련 수사관만이 출입할 수 있다. 바로 대공 수사와 특수 수사용 안가에서 고문이 행해진다. 박종철군과 김근태씨를 고문한 남영동 대공분실은 이미 언론에 그 내부가 알려졌다. 남영동 대공분실에는 물고문에 J쓰이는 ‘칠성판’과 욕조가 있고, 전기고문 장치도 있었다.

 기무사가 운영하는 안가로 이름을 떨친 곳은 서빙고 분실. 그동안 수많은 재야 인사와 정치인이 이곳에서 가혹 행위를 당했다. 민주당 김상현 의원은 72년 유신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10일간, 79년에는 YWCA 위장결혼 사건으로 1주일간 이곳에서 고문과 협박을 당했다. “jQjs한 것 아닙니까. 일단 옷을 벗긴 뒤 고문을 합니다. 거꾸로 매달기는 기본이고 통닭구이에 비녀꽂기 등을 합디다.” 기무사 서빙고 분실은90년 윤석양 이병의 민간인 사찰자료 폭로 사건으로 여론의 지탄을 받자 폐쇄했다. 당시 정보기관 출신인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일개 이병이 그렇게 엄청난 자료를 빼낼 수 있다는 점이 바로 정보기관에서 안가가 어떤 지위를 누리는지 잘 보여주는 예”라고 말했다. 현재 기무사는 송파구 장지동과 가락동에 안가를 설치해 놓고 주요 대공사건을 수사한다. 장지동 안가는 89년 8월 국민대생 김정환씨 프락치 강요 사건으로 외부에 알려졌다.

 최근에는 서울시도 5공화국 때부터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86동 604호와 양천구 목동4단지 아파트 16동 1201호, 중구 묵정동 11-2 충무아파트 105호 등 세곳에 안가를 운영해 왔음이 밝혀졌다. 서울시 안가에서는 주로 시장이 주재하는 각종 대책회의나 밀실 작업을 해왔다.

 80년 12월말 당시 이영섭 대법원장은 전두환 대통령이 주최하는 궁정동 망년회에 참석했다가 대통령이 대법원에 대해 불쾌한 감정을 표현하자 “가슴이 철렁했다”고 한 월간지에서 밝힌 바 있다. 궁정도 안가에 안내될 때 이대법원장은 정문이 아니라 셔터가 바쯤 내려진 차고 문으로 허리를 구부리고 들어가야 했다. 망년회장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심리적으로 상당히 위축돼 있었다. 대법원장이 그 정도라면, 안가에 불려간 공무원이나 일반인의 심리 상태가 얼마나 불안할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비록 청와대 안가는 사라졌지만 곳곳에 존재하는 각 부처 안가는 아직도 국민의 정신을 짓누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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