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빅브라더 얼굴 내미는가
  • 민경배 (경희사이버대학교 NGO학과 교수) ()
  • 승인 2006.08.21 21:3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부, 형사사법통합정보체계 구축 추진 인권 침해·시스템 구성 방식 싸고 논란
 
정부가 전자 정부 로드맵 사업 중 하나로 추진하고 있는 형사사법통합정보체계(이하 형사통합망) 구축을 앞두고 논란이 예상된다. 형사통합망이란 검찰·법원·법무부·경찰 등 주요 형사 사법 관련 기관을 비롯하여 특별사법경찰권을 갖고 있는 중앙 행정부처와 자치 단체의 모든 형사 관련 정보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구축하는 사업을 말한다.

이것이 구축되면 경찰의 사건 정보에서부터 법원 재판 내용, 교도소의 형 집행 기록까지 일련의 형사 사법 과정을 하나의 전산 시스템으로 처리하게 된다. 이를 위해 지난 2004년 12월 ‘형사사법통합체계추진단’이 설립되었으며, 2005년 10월 대통령 국정과제회의 보고를 거쳐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갔다. 현재 경찰 분야 시스템은 완료 단계에 와 있으며, 올해 연말까지 검찰·법원의 시스템을 대상으로 2차 사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인권 단체에서는 또 하나의 ‘빅 브라더’가 탄생할 수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형사통합망은 지난해 시민 단체들이 주관한 <2005 빅 브라더상>에서 ‘가장 끔찍한 프로젝트상’ 후보에 오른 ‘형사사법정보화 촉진 시행계획’의 열 개 세부 프로젝트 중 하나로 진작부터 사생활 침해 가능성이 지적되던 사업이었다. 국민의 인권과 직결된 중요한 사업인데도 지금까지 데이터베이스(DB)에 어떤 정보가 입력되며, 입력된 정보가 어떻게 관리되는지 등에 대한 구체적 내용이 전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수천억 원에 이르는 국민 혈세가 들어가는 대형 사업을 추진하면서, 그 흔한 공청회 한번 열리지 않은 채 시스템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민감한 개인 정보의 수집, 관리와 관련한 이 사업이 아직까지 어떤 법률적 근거조차 마련되지 않은 채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검찰, 통합 DB 구축키로…법원·경찰은 “시스템 연계가 바람직”

형사통합망 운영 기관들 사이에서도 시스템 구성 방식을 두고 의견 차를 보이고 있다. 이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검찰은 관련 기관의 모든 시스템을 표준화한 통합 DB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경찰과 법원은 ‘시스템 통합’이 아닌 ‘시스템 연계’를 주장하고 있다. 즉 각 기관에서 기존에 구축해놓은 개별 시스템을 독자적으로 운영하면서 이를 형사통합망으로 연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이다. 일단 법원은 ‘형사사법통합체계추진단’과 협의해 시스템 연계 방식으로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 간에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다. 일선 경찰 관계자 사이에서는 시스템 통합 방식을 채택할 경우 이미 구축해놓은 ‘범죄정보관리시스템(CIMS)’과 중복되기 때문에 비용 낭비와 업무의 비효율성을 초래할 것이라는 소리가 들린다.

시민 단체들도 인권 보호의 측면에서 볼 때 시스템 통합 방식이 시스템 연계 방식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말한다. 민감한 개인 정보는 통합적으로 집적될수록 인권 침해 위험성도 그만큼 커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개인 정보가 개별 시스템으로 분산되어 있는 연계 방식이 통합 방식보다는 차라리 덜 위험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시스템 통합 방식에서는 형사 사법 정보의 관리 주체가 어느 기관인지 모호하여 국민 인권과 관련한 민감한 개인 정보를 취급하는 과정에서 자칫 책임 소재가 허술해질 수 있다는 문제도 생긴다.

반면 시스템 연계 방식으로 운영된다면 각 기관에서 생산한 정보를 관리할 책임은 해당 기관에 부여되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을 때에도 책임 소재가 명확해진다. 지난 2004년 이 사업 계획을 검토했던 한국전산원도 ‘형사 사법 정보는 아주 민감한 개인 신상 정보가 다수로, 이를 통합 DB 형태로 구축하는 것은 보안상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다.

형사통합망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 비견될 만한 빅 브라더이다. NEIS는 학생이라는 한정된 계층을 대상으로 인권 침해의 강도가 상대적으로 약한 성적과 생활 기록 정보를 담고 있다. 하지만 형사통합망은 전국민이 잠재적 대상자가 될 수 있으며, 개인에게 가장 치명적일 수 있는 정보가 올라가게 된다. 영국의 CJIT, 미국의 JNET와 CICJIS 등 우리보다 앞서 형사 사법 정보 시스템을 구축한 여러 선진국들이 통합이 아닌 연계 방식을 채택한 것도 이러한 문제점을 염두에 둔 결정이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