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의 세계화는 ‘파울 볼’인가
  • 최민규 (SPORTS2.0 기자) ()
  • 승인 2006.12.04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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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종목 탈락 등 악재로 미래 불투명

 
11월30일 카타르 도하의 알 라얀 스포츠클럽 야구장에서는 아시아경기대회 야구 경기 한국-타이완전이 열렸다. 한국은 타이완과 접전 끝에 2-4로 졌다.
타이완과의 악연은 깊다. 타이완은 2003년 삿포로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에 연장 10회 4-5 역전패를 안기며 아테네올림픽 출전을 무산시켰다. 야구가 시범 종목이던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 3-4위전에서 타이완에 져 입상에 실패했고, 1991년 중국에서 열린 바르셀로나올림픽 예선에서는 마운드의 쌍두마차 정민태·구대성이 무너지며 6-7로 졌다.

타이완은 전통적인 동아시아의 야구 강국이다. 그러나 야구 팬들은 타이완을 라이벌로 잘 인식하지 않는다. 우선 올해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이전에는 타이완과 전력으로 맞부딪친 적이 거의 없었다. 1982년(한국 프로야구 출범)에서 1991년(타이완 프로야구 출범)까지 국제 대회에서 타이완에 참패에 가까운 전적을 냈지만, 이미 열기가 식어버린 아마추어 야구계의 사건일 뿐이었다. 야구는 세계화된 경기가 아니었다. 한국 야구에서 세계화의 의미는 ‘미국과 일본의 선진 야구와의 접촉’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메이저리그의 박찬호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이승엽에 한국 팬들이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체감지수와는 별개로 타이완은 한국의 라이벌이었다. 타이완뿐만이 아니다. 세계 야구에는 한국 못지않은 팀을 만들 나라들이 여럿 있다. WBC에서 한국은 예상을 뒤엎고 4위에 올랐다. 이변은 한국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아마추어 팀 쿠바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야구 불모지’라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메이저리그 팀을 국경 안에 갖고 있는 캐나다를 거의 이길 뻔했다. 유럽의 네덜란드는 메이저리거들이 출전한 파나마에 10-0 완봉승했다. 전해 네덜란드에서 열렸던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프로 2군과 아마추어 선수들이 주축이 된 한국이 WBC 멤버가 여럿 포함된 쿠바를 이긴 사례도 있다. 세계 야구의 수준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은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준을 떠나 세계 각 지역의 야구는 매우 불균질하다. 미국의 메이저리그는 그 자체로 수십억 달러짜리 사업이다. 네덜란드에는 프로야구 리그가 있지만 세미 프로에 가깝다. 오스트레일리아는 메이저리그의 전폭적 지원 아래 리그를 운영하고 있고, 중국 프로야구는 미국의 스포츠 매니지먼트 업체가 운영권을 갖고 있다. 반면 한국·일본·타이완은 독립적인 프로 리그를 운영하고 있다. 이승엽은 요미우리에서 수백억원의 연봉을 보장받았지만 쿠바의 강타자들은 월급 몇십 달러를 받을 뿐이다. 국제축구연맹(FIFA) 가입국들은 수준은 다르지만 비슷한 형태로 리그를 운영한다. 야구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한국 야구가 도전하는 ‘세계 무대’는 사실 허구인지도 모른다.

야구의 세계화에서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은 프로 선수들의 참가가 허용된 2000년 시드니올림픽과 올해 3월 1회 대회가 열린 WBC다. 그러나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야구는 정식 종목에서 제외되었다. WBC의 미래는 아직 불투명하며, 결국 ‘메이저리그의 세계화’로 귀결될지도 모른다. 과연 야구의 세계화는 한국 야구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올림픽이나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 아니면 또 다른 WBC 4강? 새로운 메이저리그 영웅의 탄생?

‘메이저리그의 세계화’만 있을 수도

그리스의 다큐멘터리 감독 발레리 콘타코스는 올해 제작한 <선수를 찾아라>(Who's on First)에서 ‘야구의 세계화’가 어떤 희극으로 끝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2004년 올림픽을 유치한 그리스 정부는 ‘전 종목에 대표팀을 내보낸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그리스에는 야구팀이 없었다. 1998년 야구협회가 급조되었고, ‘그리스 국가 대표 야구선수’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많게는 6년 동안 올림픽을 꿈꾸며 기량을 갈고 닦았다. 그러나 정작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은 미국 프로야구에서 뛴 경험이 있는 이민 3~4세들이었다. 올림픽이 끝난 뒤 그리스 유일의 야구장은 폐쇄되었다.

 
콘타코스는 희극을 그렸지만 비극도 있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도미니카공화국,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 각지에서 야구 아카데미와 야구 리그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자라난 유망주는 고작 몇천 달러 계약금만 받고 헐값에 메이저리그와 계약한다. 도미니카공화국에서 태어난 한국 롯데 자이언츠 팀 펠릭스 호세는 1984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로부터 계약금 4천 달러를 받았다.

9년 뒤인 1991년. 지금은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유격수로 성장한 미겔 테하다가 오클랜드로부터 받은 계약금은 2천 달러였다. 같은 기간 아마추어 드래프트로 입단한 미국 선수들의 계약금은 10배 가까이 폭등했다. 중남미의 ‘야구 브로커’들은 어린 소년들에게 스테로이드 복용을 강요하기도 한다. 올해 마이너리그에서 뛴 한 한국인 선수는 “최근 도핑 검사가 강화됐지만 중남미 선수들 가운데 일부는 여전히 약물을 복용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물론 그리스는 야구 후진국이다. 한국은 중남미의 빈국도 아니다. 그러나 야구의 세계화가 지닌 어두운 면은 한국에도 적용될 수 있다. 오래 전부터 한국에서 야구는 엘리트 스포츠로 제한되었다. 이제 동네 공터에서 야구를 하는 어린이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야구장 스탠드도 썰렁하다. 한국 야구의 뿌리는 점점 시들고 있다. 국가대표팀, 또는 드림팀이 다는 태극 마크에는 병역 혜택 이상의 의미가 없는 게 현실이다.
‘야구의 세계화’라는 말에서 많은 이들은 박찬호나 이승엽, WBC, 거액 연봉, 프로야구 중흥의 계기 등을 떠올린다. 그러나 세계의 야구는 복잡다단하게 이루어져 있다. WBC나 올림픽, 아시아경기대회는 그 한 부분일 뿐이다.

의정부시에서 중·고교생 야구 클럽을 지도하고 있는 조용빈씨(30)은 미국 유학 시절 전 메이저리그 스타 칼 립켄 주니어가 운영한 야구팀에서 지도자 자격증을 땄다. 프로야구 선수를 꿈꾸지 않는 어린이들을 위한 야구팀이다. 그는 “야구를 보는 데는 여러 틀이 있습니다. 엘리트 스포츠적인 관점은 그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야구의 위기를 말하면서 거론되는 대안들은 결국 ‘미래의 엘리트 야구 자원 수급을 위한 장 마련’ 이상이 아닙니다”라며 아쉬워한다. ‘모두를 위한 야구’를 꿈꾸는 그는 ‘어린이, 청소년들이 놀이로 할 수 있는 야구단 운영’을 꿈꾸고 있다. 그가 세계의 야구에서 얻어온 꿈이다.

‘세계 속의 한국 야구’는 ‘한국 야구’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은 야구를 즐기는 법을 잊어버렸다. ‘프로야구보다 더 화려한 볼거리’만이 야구의 세계화에서 얻어야 할 대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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