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인터뷰 - 김홍열 (주)코오롱 노조위원장
  • 정락인 편집위원 ()
  • 승인 2007.04.30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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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상생이 뭔지 보여주겠다”

 
이대로 가면 회사도 죽고 노조도 죽는다.” 지난 4월13일 (주)코오롱 구미 공장. 코오롱그룹 이동찬 명예회장과 이웅열 회장 등 경영진이 참석한 가운데 코오롱 창립 50주년 기념 체육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김홍열 노조위원장(47)은 ‘항구적 무파업’을 선언했다. 회사와 조합원들에게는 ‘상생’을 외쳤다. “지난 15년은 노조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잃어버린 세월이었다”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의 대표적 강성 노조였던 코오롱 노조. 2004년에 64일간의 파업 기록을 세웠다. 지난해에는 강성 노조원들이 그룹 회장 자택을 습격하고 경영주를 모욕하는 강경 투쟁을 감행했다. 흑자 기업이던 코오롱은 잦은 파업으로 인해 만신창이가 되었다. 매년 적자에 허덕였다. 회사는 구조 조정을 단행했고, 5백9명이 회사를 떠났다.
지난해 새로운 노조가 결성되면서 회사와 노조는 상생을 모색했다. 이대로 가면 공멸한다는 위기감이 공감대를 형성했다. 민주노총을 탈퇴하면서 독자 노선을 표방했다. 지금 코오롱 구미 공장은 생기가 넘쳐난다.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올해 1분기에는 흑자를 냈다. 이대로 가면 연말에는 두둑한 성과급도 챙길 수 있다. 회사도 살고 노조가 사는 상생의 길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노사 간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노조와 회사 중 누가 약자라고 보는가?
회사가 약자이다. 노조가 파업을 강행하면 회사는 막대한 손실을 입는다. 회사의 손실은 곧 조합원의 손실이다. 대화와 타협 없이 무조건 파업을 강행하면 회사가 모든 요구 조건을 들어줄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파업은 경영 악화를 초래하고 구조 조정이 불가피해진다. 결국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파업이 노조의 최대 무기라는 생각은 잘못이다. 회사와 노조가 힘의 균형을 갖춰야 노사 관계가 평탄하다. 노조가 힘이 세지면 파업이 자주 일어나고, 회사가 힘이 세지면 구조 조정을 하려고 한다. 회사가 망하고 노조가 망하는 길이다. 열린 경영, 신뢰 경영이 서로 사는 길이다.
왜 항구적인 무파업을 선언하게 되었는가?
회사가 있어야 노조가 있다. 1980~1990년대 노사 대립은 회사가 투명하지 않아서 발생했다. 경영 실적을 숨기거나 종업원들에게 이익을 나눠주지 않았다. 노조는 권익을 찾기 위해 파업을 선택했다. 지금은 다르다. 종업원 누구든지 회사의 경영 상태를 훤히 볼 수 있다. 얼마의 이익이 났는지, 손해가 얼마인지를 알 수 있다. 그만큼 경영이 투명해졌다는 뜻이다.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노조는 변하지 않았다. 구시대적인 투쟁을 그대로 강행하고 있다. 오랜 노사 분규로 인해 알짜배기 흑자 회사인 코오롱이 적자투성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노조원은 대량 해고를 당해 일자리를 잃었다. 회사를 살리고 노조원들을 살리기 위해 무파업을 선언했다. 그동안 코오롱 노조는 민주노총의 정치 논리에 이용만 당해왔다. 
코오롱은 민주노총의 대표적 강성 노조였다. ‘민주노총의 정치 논리에 이용당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구미공단의 시발점이 코오롱이다. 옛날에는 코오롱 작업복만 입고 나가도 시민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코오롱에 다닌다고 하면 앞뒤 안 따지고 사위 삼는다고 할 정도였다. 코오롱 노조가 창립된 후 1995년까지는 조용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시민들에게 지지를 받았다. 민주노총에 가입하고 나서 강성으로 변했다. 임금 인상을 위해서 파업을 강행했다. 회사는 경영이 어려워지자 대규모 구조 조정을 감행했다. 악순환이 계속됐다. 2004년도에 64일 동안 파업을 했다. 적자가 엄청났다. 섬유산업은 사흘만 파업해도 사업을 접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 당시 조합원들은 20일 정도만 파업하자고 했다. 그런데도 민주노총은 파업이 장기화되면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다. 사실상 파업을 부추겼다. 지금 국회의원이 된 민주노총 출신 인사 몇몇이 강성 노조를 주문했다. 1천5백명이 파업을 했는데 돌아온 것은 정리 해고뿐이었다. 지금은 8백명만 남았다. 더 이상 민주노총의 정치 이념 투쟁에 조합원들을 희생양으로 내몰 수 없었다. 지난해 12월 민주노총을 탈퇴했다.
민주노총을 탈퇴하면서 조합원들 사이에 갈등은 없었나. 아직도 민주노총의 강성 노선을 지지하는 조합원들이 있을 텐데.
물론 강성 노조를 지지하는 조합원들이 있다. 그 수는 아주 미미하다. 민주노총을 탈퇴하면서 투표를 했는데 조합원 7백99명 중 7백90명이 참가해 95.4%인 7백54명이 찬성했다. 반대한 사람은 35명이고 무효가 1표 나왔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민주노총의 의지대로 끌려가면 회사와 노조가 공멸한다는 위기 의식이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조합원들을 어떻게 설득했나?
조합원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났다. 현장을 찾아다니며 노동운동의 흐름을 설명했다. ‘더 이상 아픔을 겪지 말자’고 설득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회사와 노조가 공멸한다고 외쳤다. 세 끼 먹던 것을 두 끼만 먹자고 했다. 대신 열심히 일해서 이익이 나면 성과급으로 받자고 했다. 조합원 개개인들을 만나보니 지금까지 노조의 강성 투쟁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임금 인상보다는 고용 안정을 원했다. 지난해 노조위원장 선거에서 조합원들은 90.8%의 지지를 보냈다. 내가 생각하는 노동조합의 운영과 안정을 지지해줬다.
민주노총을 탈퇴한 후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민주노총 산하에서 다섯 번의 파업을 했다. 그동안 수백 명의 정리 해고자를 발생시켰다. 지금도 민주노총은 코오롱 노조의 탈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다툼도 있었다. 이제는 민주노총과는 상관이 없다. 코오롱만의 로고와 선언문, 강령을 새로 만들었다. 투쟁 일변도에서 상생과 화합으로 캐치프레이즈가 바뀌었다. 관할 관청에 독자적인 노조 설립 신고서도 냈다. 코오롱 노조는 앞으로 독자 노선을 갈 것이다. 민주노총 산하에 있을 때는 조합원들의 이념 교육·사상 교육·선동 교육에 치우쳐 있었다. 지금은 그런 것이 없다. 교양 강좌나 문화 강좌를 연다. 조합원들의 건전한 단합의 장이 있을 뿐이다. 올해 노조 예산이 3억2천만원 정도 되는데, 조합원 복리후생비를 먼저 챙긴다. 이전에는 대부분 조직 강화비를 우선해서 책정했다. 말이 조직 강화비이지 유흥비나 다름없었다. 민주노총에 내던 의무비도 조합원 자녀들의 학자금으로 돌렸다. 조합원이 많을 때는 1년에 5천만원, 인원이 적을 때는 3천만원가량 냈던 돈이다. 회사와 노조의 대화 채널도 상시로 바뀌었다. 예전에는 사측에 요구 사항이 있으면 노사 협의체를 거쳐야 했다. 지금은 어떤 요구 사항이든 합당하면 바로 들어준다. 회사와 노조가 서로의 문호를 개방하고 마음을 열었다.

 

양대 노총에는 들어가지 않겠다는 말인가?
그렇다. 어디든지 노총에 소속이 되면 의무비를 내야 한다. 또 노총의 정치적 이념과 성향에 따라 이용만 당할 것이 뻔하다. 우리는 우리만의 노사 문화를 만들겠다. 우리 일터를 만들겠다는 뜻이다. 우리가 땀 흘려서 경쟁력 있는 회사를 만들고 회사는 이익을 조합원들에게 돌려주는 게 이상적인 노사 문화다. 일본 도요타를 보라. 적자가 나면 임금을 반납하고 이익이 나면 나누어준다. 우리가 꿈꾸는 노사 공존의 모델이다.
항구적 무파업을 선언한 후 언론으로부터 집중 주목을 받았다. 여론은 좋은 편이지만 ‘어용 노조’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많은 곳에서 지지와 격려를 보내주었다. 노사 문제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벤치마킹하겠다고 찾아오는 노조도 있다. 회사의 노무 관계자들도 많이 찾아오고 있다. 반면 욕도 많이 얻어먹었다. 변절했다는 말도 들었다. 나는 ‘어용 노조’라는 말은 인정하지 못한다. ‘변절’이란 말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회사와 가깝다고 어용 노조라고 하는 것인가. 아니면 민주노총을 탈퇴하고 독자 노선을 걷는다고 변절했다고 하는가. 이는 코오롱 노조 전체를 모욕하는 말이다. 회사와 조합원들을 살리자는 게 어용이고 변절이란 말인가. 나는 노선이 변한 적이 없다. 지금까지 다섯 번의 대의원과 운영위원, 교섭위원을 맡았다. 코오롱 노조를 주도적으로 만든 것도 나다. 강성 노조일 때도 회사와 대화 및 타협을 주장했다. 공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욕도 많이 먹고 손가락질도 받았다. 지금은 조합원들에게 인정받고 있다.
노조위원장에 당선된 후 ‘상생’을 외쳤다. 진정한 상생은 무엇인가?
시대가 변한 만큼 노조의 투쟁 방향도 바뀌어야 한다. 현실에 안주하면 도태된다. 노조도 변해야 산다. 지금은 ‘우는 아이 젖 주는 시대’가 아니다. 회사와 공존하고 상생해야 한다. 지금까지 코오롱 노조는 상생이 아닌 ‘너 죽고 나 죽자’식의 투쟁을 해왔다. 회사와 노조가 상생하는 길은 서로의 신뢰와 믿음이다. 얼마 전 경영주들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회사가 어렵고 힘든 것을 안다. 지금까지 회사가 50년을 끌어왔지만, 앞으로 50년은 노조가 끌어가겠다. 당신들도 뛰어라. 우리도 뛰겠다’라고 말했다.
그동안의 파업 때문에 거래처나 협력업체들의 피해도 컸을 텐데 회복하기 위한 해법은 있나?
오랜 파업으로 인해 코오롱은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경영 손실만이 아니다. 지역 주민들과 거래처들로부터 신뢰를 잃었다. 이를 만회하는 게 급선무이다. 코오롱은 구미의 주춧돌이다. 향토 기업으로 30년 동안 사랑을 받아오다가 10년 동안 모두 잃어버렸다. 지난해 새로운 노조가 결성된 후 구미역과 간선도로 등 시민들의 왕래가 많은 곳에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노사가 하나 되어 시민이 사랑하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내용이다. 출퇴근 차량 20대에도 스티커를 붙이고 플래카드를 설치했다. 노조의 파업 때문에 피해를 본 주민들에게는 직접 찾아가 사과했다. 거래처 100곳의 사장들에게는 ‘파업으로 인해 불편을 끼쳐서 죄송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잘못된 노사 관계 때문에 피해를 주어 죄송하다고 했다. 노사 문화를 개선할 테니 믿어달라고 사정을 했다. 지금도 거래처를 찾아다닌다. 담당 영업부장과 생산부장을 찾아가서 믿음을 주고 있다. 협력업체들에게는 많이 미안하다. 올해 초 현대자동차 파업 때 코오롱도 적잖은 피해를 입었다. 카시트나 에어백을 납품하는 데 차질이 생겼다. 그때 깨달았다. 코오롱 노조가 파업을 할 때 협력업체들이 얼마나 큰 손실을 입어야 했는가를. 앞으로 신뢰받는 기업 코오롱, 신뢰받는 노조가 되겠다. 지역 주민으로부터 사랑받는 기업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해고자들 일부가 복직을 요구하며 시위하고 있다. 구제가 불가능한가?
1989년에 5백9명을 정리 해고하면서 명예 퇴직 신청을 받았다. 4백60명 정도가 20개월분의 퇴직금을 받고 회사를 떠났다. 회사는 이들을 버리지 않았다. 전원 준사원으로 구제해서 현재 일을 하게 하고 있다. 연봉 3천만원 이상은 받는다. 그때 명예 퇴직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정리 해고가 되었다. 49명이다. 지금 복직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회사는 퇴직금을 지급하고 준사원으로 구제하려고 했다. 그런데도 해고를 거부하고 회장 자택을 습격하는 등의 불법 투쟁을 하고 있다. 내가 대화를 하려고 해도 대화에 응하지 않는다. 회사와 가깝다는 이유에서다. 지금은 피하고 있다. 대화에 나서지 않는 한 해법은 없다.
‘귀족 노조’라는 말이 있다. 코오롱 노조가 회사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오해를 할 수도 있겠지만 특혜는 없다. 오히려 예전만 못하다(웃음). 위원장의 한 달 판공비가 100만원이다. 1989년도에 2백40만원이었는데 절반 이하로 줄었다. 조합원들을 만나면 그래도 위원장인데 밥도 사고 차도 사야 한다. 지난해 3월부터 1년이 넘게 월급을 한 푼도 가져가지 못했다. 집사람에게 미안하다. 집사람은 코오롱에서 하청 일을 하면서 생계를 떠맡고 있다. 남들은 노조위원장이 특별한 벼슬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전혀 혜택을 받고 있지 못하다. 위원장이 되고 나서 개인적으로 사장이나 공장장과 밥 한 끼 먹지 않았다. 주말이나 공휴일에도 출근해서 조합원들을 만난다. 위원장이 먼저 솔선수범해야 조합원들이 따른다. 위원장은 조합원들의 머슴이 되어야 한다.
노조위원장이 된 후 노동조합의 군살 빼기를 했다고 들었다. 어떻게 구조 조정을 했는가?
모두 다 허리띠를 졸라매는데 노조가 뒷짐만 지고 있을 수는 없었다. 노조 사무실 상근자 9명을 5명으로 줄였다. 상무집행위원회 부장단을 32명에서 12명으로 대폭 줄였다. 회의 시간도 줄였다. 현장에서 빠져나오는 인원이 많으면 옆에 있는 동료가 힘들기 마련이다. 위원장 선거 때 도와준 사람들이 노조 사무실 자리를 원했을 텐데 처음에는 불만이 많았다. 지금은 모두 이해하고 협조한다. 고마울 따름이다.
무파업을 선언하고 임금을 동결하자 회사에서는 고용 안정과 성과급을 약속했다. 무파업의 효과인가?
노조 파업과 노사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회사는 적자에 허덕였다. 2003년에 8백70억원, 2004년에 1천5백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2백60억원의 적자가 났다. 노사가 함께 사는 길을 모색하면서 올해 1분기에는 흑자로 돌아섰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걸 보여주었다. 노조는 무파업을 선언하면서 스스로 임금도 동결했다. 회사에서는 고용 보장을 약속했다. 고용 보장 협정서까지 체결했다. 또 이익이 나면 세전 이익의 23%를 성과급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이제는 제품의 품질을 향상시키고 부채를 줄이는 것이 급선무다. 그래야 회사가 더 많은 이익을 내고 조합원들에게도 많은 혜택이 돌아갈 것이다. 연말이 되면 상생의 길이 검증받을 것이다. 올해는 조합원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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