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투사 노무현, ‘장 검’ 빼들었다
  • 오윤환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5.14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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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노·반노 세력 맹공→친노파 결집→대선·총선 개입→퇴임 후 영향력 행사 노려

 
"노무현 대통령은 승부사 아닌 검투사”라는 분석이 있다. 최진 고려대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이 <대통령 리더십 총론>에서 그같이 평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같은 승부사는 살길을 마련해놓고 싸우지만, 노대통령은 스스로 퇴로를 차단하고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검투사적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노대통령 자신의 회고도 이를 뒷받침한다. 학창 시절 부잣집 아이의 새 가방을 면도칼로 찢은 ‘골치 아픈’ 학생이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 무대가 정치판이고, 대상이 대권 주자들로 바뀌었을 뿐이다. 마음에 차지 않으면 그대로 놔두지 않겠다는 듯 거침이 없다. “된고비는 넘겼다” “입이 째질 것 같다”라는 말부터 예사롭지가 않다.
노대통령은 정동영-김근태 두 사람에게 “당신들”이라고 했다. ‘하대’라기보다 말싸움 도중에 나옴직한 말이다. 열린우리당 해체를 요구하는 두 사람에 대한 노대통령의 배신감이 감지된다. 물론 내막을 들여다보면, 두 사람에 대한 노대통령의 감정의 농도 차이가 다소 있는 듯싶기는 하다. 정 전 의장과는 한 번에 담을 쌓기가 아쉽다는 분위기인 반면, 김 전 의장과는 확실하게 절연한 것 같다.
노대통령이 김 전 의장에게 어떤 말을 했느냐를 되새겨볼 필요도 없이, 김 전 의장이 주저 없이 쏟아낸, 노대통령에 대한 비난 공격을 통해 두 사람 관계를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 김 전 의장은 노대통령의 ‘구태 정치’ 비난에 대해 “그거야말로 노무현식 분열 정치”라고 되받았다. “노무현을 찍은 수많은 가슴의 피눈물을 보고 중산층과 서민의 가슴에 박은 ‘대못’을 생각하라”고 몰아붙였다. 노대통령의 ‘열린우리당 사수’를 ‘이적 행위’로 ‘규정’하기까지 했다. 노대통령이 그를 향해 “깨끗하게 정치를 그만두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한 것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노대통령과 김 전 의장의 관계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 때부터 본격적으로 틀어지기 시작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김 전 의장은 ‘매국 협상’이라는 말로 노대통령을 비난하고는 단식에 들어갔다. 노대통령으로서는 열린우리당 창당 때도 우물쭈물하다 신당 합류 시기를 놓친 김 전 의장의 정치 스타일을 떠올렸음직하다. 당시 김 전 의장은 정동영·천정배·신기남 의원처럼 일도양단 식으로 민주당을 털고 나오지 못하고, 단식이라는 ‘세탁’을 통해 신당에 합류했다. 김 전 의장의 ‘꼼지락 정치’가 노대통령의 ‘검투사 정치’와 조화될 리 없을 것이다.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노대통령이 반대하자 “계급장 떼고 논쟁해보자”라고 달려든 사람도 김 전 의장이다.
총체적 이념 코드만 보면 노대통령과 김 전 의장은 동지적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평등주의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교육 정책에서 노대통령은 거의 아집이라고 해야 할 만큼 이른바 ‘3불(고교등급제·대학별 본고사·기여입학제 불가) 정책’에 한 치도 양보가 없다. 이 점에서는 김 전 의장도 마찬가지이다. 문제는 두 사람이 학벌로 상징되는 출신 성분에서 판이하다는 점이다.
노대통령과 정동영 전 의장은 4·25 재·보선 직후인 4월27일 청와대에서 만났다. 선거 결과에 대한 평가와 대선을 앞둔 열린우리당의 진로, 범여권 대통합, 남북정상회담 등 차분하고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또 그럴 수밖에 없는 현안들이 주제였지만 정 전 의장은 노대통령이 쏟아내는 ‘심한 말’만 듣고 나왔다는 후문이다.
정 전 의장은 4·25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한 이유를 ‘노대통령이 빠진 ‘무노(無盧) 선거’에서 찾았다. 노대통령이 뒤에 숨고, 실정이 감춰지니 선거 이슈가 사라지고, 반한나라당 전선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는 풀이다. ‘대통령이 빠져야 12월 대선도 희망이 있다. 그러니 국정에 전념하고 현실 정치는 잊으라’는 메시지다. 열린우리당에 대한 집착도 버리고 당을 해체해 반한나라당 세력들을 규합해야 한다는 요지이다.

 
노무현은 정동영을 붙잡으려 했다?


 
노대통령의 반응을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정 전 의장이 열린우리당을 떠나면 당에 복당할 수 있다”라고 했던 노대통령에게 대놓고 “당을 없애라”고 했으니, 그 분위기가 어떠했겠는가. 노대통령은 정 전 의장이 청와대를 떠나자마자 청와대 브리핑에 올릴 글을 막힘없이 써 내려갔다는 것이 참모들의 전언이다. 김근태·정동영 두 사람을 ‘꼭’ 집어 “구태 정치를 펼친다”라며 “나가려면 조용히 당을 나가라. 당신들이 창당 선언문을 낭독했던 사람들이 맞느냐?”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다만 노대통령은 이 글을 즉각 청와대 브리핑에 올리지는 않은 것으로 취재 결과 밝혀졌다.
오히려 정 전 의장에게 사람을 보내 정 전 의장을 붙잡으려 했지만 청와대 회동 내용이 MBC에 보도되자마자 결국 노대통령의 분노가 다시 폭발하고 말았던 것.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탈당파들이 살모사 정치를 하고 있다”라고 비판한 것은 노대통령이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한 말을 대신한 것으로 여겨진다. ‘어미를 죽게 하고 세상으로 나오는 살모사’라는 말이다. 노대통령의 고민은 아직 정동영 카드를 버리기 아깝다고 보는 데 있을지 모른다.
 
물론 정 전 의장이 빠지면 열린우리당의 한 축이 무너지는 것은 분명하다. 정 전 의장은 2004년 총선 당시 당의장이었기 때문에 상당수가 그의 손을 거쳐 공천을 받았고, 다수가 금배지를 달았다. ‘당정 분리’를 주장한 노대통령이지만 의외로 정 전 의장의 공천권 행사를 용인했다. 특히 전국구 후보 공천은 정 전 의장이 거의 전권을 행사했다. 그래서 그가 탈당하면 10명 이상, 전국구까지 합하면 그 이상이 동행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더구나 ‘정동영 없는’ 오픈 프라이머리(완전 국민경선제)는 모양새가 구겨진다. 후보군 가운데 이해찬·한명숙·유시민·김혁규 씨 등이 모두 경선에 나선다 해도 정 전 의장이 가세해야만 흥행이 된다고 여기는 분위기이다. 무엇보다 유장관이 경선에 무조건 나간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를 보좌관으로 썼던 이 전 총리가 난처하고 불편해진다. 만약 이 전 총리가 낙마한다면 한명숙-유시민-김혁규만 붙게 된다. 여기에 정 전 의장까지 빠지는 그림으로는 맥 빠질 수밖에 없다. 정 전 의장이 ‘계륵’임은 분명하지만 내치기 곤란한 배경들이다.
정 전 의장에게 ‘후보’를 달아주려고만 하면 문제가 없지만 노대통령과 권력 핵심부는 정 전 의장이 본선에 출마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고 보는 분위기이다. 호남 출신에 수도권에서도 취약한 ‘정동영 카드’로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 때문이다. 자력으로 후보가 된다면 모르지만 그를 뒤에서 밀어줄 분위기는 아니다. 결국 정 전 의장 처지에서는 후보 경선에서 ‘치어 리더’ 역할을 맡으라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으로서 ‘페이스 메이커’가 될 공산이 큰 상황을 수용하기란 쉽지 않다. 그가 노대통령과 회동하고 ‘경선 불참’을 예고하면서 “청와대에 나를 음해하는 세력이 있다”라고 말한 것은 불리한 경선 구도에 대한 불만으로 해석할 수 있다.
마침내 지난 5월8일, 정 전 의장은 노대통령에게 등을 돌렸다. 노대통령의 열린우리당 사수를 “독선과 오만에 기초한, 권력을 가진 자가 휘두르는 공포 정치의 변종”이라고 공격한 것이다. 열린우리당을 분파 지향적인 ‘닫힌 우리당’이라고도 했다. 노대통령의 열린우리당과의 완전 결별 선언이다.
노대통령의 대선 승리 포인트는 명료하다. 지금 거론되는 범여권 후보들의 지지율이 보잘것없음을 잘 안다. 다 합해보아야 10%도 안 된다.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학규 전 지사에게 모두 밀리고 있지만 이해찬·한명숙·유시민·김혁규 씨 등을 활용해 필승 구도를 만들겠다고 구상할 수 있다.
물론 이들이 당장 뜰 것으로 보는 것 같지는 않다. 선거는 상대방이 있는 게임. 노대통령은 이미 지지율 합계 60%가 넘는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을 “시대 정신에 맞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여기에 노대통령의 공격 포인트가 있다. 노대통령의 비축 무기가 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최근 여야 대선 주자들을 “한심하다”라고 개탄하면서 “남의 돈을 빼앗아 깔고 앉으면 되느냐”라는 뜻의 말을 했다. “돌려줘야 한다”고도 했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노대통령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정수장학회’를 빼앗고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최근까지 이를 소유해온 것을 비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노대통령 발언의 깊은 곳에는 ‘돈’과 ‘재산’이 존재한다. 이 전 시장 역시 돈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공시지가 변동으로 그의 재산이 수백억원으로 불어났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의원의 형제가 운영한다는 울산의 자동차 부품회사 수익이 이 전 시장 계좌로 흘러들어간다는 미확인 소문이 들리기 시작한 것도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노대통령의 원칙론에서 보면 두 사람은 이미 도덕적으로 치명적인 결함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올해는 사회적 양극화가 더 심해졌다. 중산층의 몰락도 유난하다. 하위권 월급쟁이와 상위권 월급쟁이의 월급 봉투 차이가 여덟 배까지 벌어졌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게다가 아파트 값 폭등으로 못 가진 사람뿐만 아니라 성실히 사는 사람들까지 힘들게 되었다. 이들에게 부동산과 불로소득은 거의 저주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것은 당연히 ‘노무현 경제’의 실패를 뜻한다.

 

‘서민의 분노’ 활용하는 ‘노무현 정치’


그러나 ‘노무현 정치’는 그것을 인정하기보다 역으로 재집권의 토양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짙다. 숫자에서 압도적인 서민들의 가진 자들에 대한 적대감과 증오심을 열린우리당 재지지로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현재 지지율에서 앞서간다지만, 4·25 재·보선에서 드러났듯이 국민에게 한나라당은 부패 정당의 이미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잘사는 기득권 세력에 대한 서민들의 끓는 분노에 불만 잘 지피면 의외로 선거가 쉽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정권을 꼭 다시 잡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안희정씨의 말은 진심일지도 모른다. 노대통령도 “후보가 아니라 정당이 중요하다”라고 직접 강조했다. 열린우리당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노대통령이 대통령 선거도 선거이지만 내년 국회의원 총선을 염두에 두고 열린우리당의 ‘어깨’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돈다. 
인력 풀도 충분하다. ‘노대통령 사람들’ 2백여 명이 벌써 뭉쳤다. 노무현 정권에서 장관(급)이나 청와대 비서관, 공기업 임원 등을 지낸 사람들을 중심으로 ‘참여정부 평가포럼’이 출범한 것이다.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병준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이백만 대통령 홍보특보, 정찬용 전 청와대 인사수석, 조기숙 전 홍보수석, 서주석 전 외교안보수석,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 윤광웅 전 국방부장관, 김두관 전 행자부장관, 이창동 전 문화부장관, 지은희 전 여성부장관, 김만수 전 청와대 대변인, 안희정씨, 이기명씨, 명계남씨, 노혜경 전 노사모 대표 등이 멤버이다. 4월27일 발족식에서 나온 “4년 반 동안 참았다. 이제는 할 말 하겠다”라는 친노 인사들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이들 면면은 내년 총선 출마자 예비 명단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당장 지역에 투입해도 될 만큼 일정한 기반들도 갖고 있다. 열린우리당에서 정동영-김근태 두 사람이 빠져나가 노무현식 ‘순혈주의’를 되찾게 되면 당장 열린우리당에 접목될 조직이다. 2002년 12월 노무현을 당선시킨 ‘노사모’를 연상하면 된다. ‘비노(非盧)파’만 탈당해준다면 현재 여건은 5년 전에 비해 훨씬 좋다. 전의가 불타오르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대선 후보 구도도 간결해졌다. 고건 전 총리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미끄러졌고, 열린우리당을 뛰쳐나갔거나, 뛰쳐나갈 세력들이 손잡아보아야 그럴듯한 후보를 내세우기는 어렵다는 판단이다. 정동영·손학규·김근태·천정배·문국현 5인 중 누가 나와도 경량급 이상 대우받기는 힘들다. 설령 탈당파가 민주당 등과 손잡고 후보 단일화에 성공한다 해도 노대통령이 만든 후보가 잘나가면 “다시 합치자”라며 읍소할지도 모른다. 대선은 말할 것도 없고, 내년 총선에 살아남으려면 후보 단일화와 범여권 결속은 피할 수 없다. 물론 노대통령이 이들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정치를 그만둬야 할 당신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노대통령에게 또 다른 원칙 파괴이기 때문이다.

 
DJ와의 마찰도 서슴지 않는 까닭


노대통령의 넘치는 자신감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마찰도 서슴지 않는다. DJ 아들 김홍업씨가 전남 신안-무안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자 “특정 지역에서 특정 후보가 당선된 것에 불과하다”라고 폄하했다. 전라도에서 DJ 아들이 당선된 것이 범여권 통합과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힐난이다. 김홍업씨와 민주당, 그리고 열린우리당 일부가 김홍업씨를 지원하면서 내세운 “범여권 통합을 위하여”라는 ‘구호’는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일침을 가한 것이다. DJ가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는 뻔하다.
노대통령과 DJ는 대선 전략과 정당 구도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편차가 크다. 노대통령은 열린우리당 사수와 영남권 세력화의 의지가 강한 반면, DJ는 서부 벨트 복원과 중도 통합을 통해 양당 구도가 안착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른바 반한나라당 포위 구도이다. 1997년 자신의 승리도 이 구도가 뒷받침했다. 말하자면 노대통령은 ‘원칙론’, DJ는 ‘현실론’인 셈이다. 두 사람의 정치 노선은 이처럼 근접하기 힘들다. 특히 상인적 성향의 DJ와 검투사적 기질의 노대통령과는 애초부터 정치적 혈액형이 다르다.
노대통령은 마음에 둔 ‘맞춤 후보’가 있는 듯한 데 비해 DJ는 선거 막바지까지 저울질할 것이다. ‘누가 햇볕정책을 계승할 것인가?’ 자신의 임기 중 벌어진 부정 부패와 관련해 ‘누가 나의 안전을 보장할 것인가?’ 아직 공소 시효가 남아 있다. DJ는 당을 따지지 않고 승리가 확실한 후보와 빅딜하려고 할 것이다.
물론 노대통령 구상대로 모든 것이 잘 굴러가리라고 예단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노대통령은 검투사와 다름없는 자세로 ‘전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가령 노대통령 세력이 대선에서 패한다 하더라도 그로서는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강력한 야당’을 한다고 해서 안 될 것도 없다. 자신의 정치적 유산인 열린우리당은 보존한 채, 그리고 ‘노무현 스쿨’ 출신들이 장악한 야당을 ‘우군’ 삼아 정치 참여 욕구를 풀 수도 있다. 게다가 대통령 재임 중 강력한 야당으로부터 탄핵도 당하고 부동산 정책 등을 거둬들일 수밖에 없었던 ‘과거’에 대해 ‘복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정치인 노무현의 전방위 전쟁은 끝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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