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조 DJ, 범여권 ‘쥐락펴락’
  • 이명수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7.16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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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합 물줄기 ‘김대중 구상’대로 흘러…노대통령의 반격 주목돼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오랜 침묵을 깼다. 노무현 대통령이 6·10 항쟁 20주년 기념사에서 김 전 대통령이 강력히 밀어붙이는 민주당을 포함한 범여권 대통합을 “지역주의에 기대려는 것”이라며 “도로 민주당은 대의가 아니다”라고 맹비난한 지 꼭 한 달 만이다. DJ는 그날 이후 정치 문제에 함구해왔다. 그런 그가 연일 범여권 대선 주자들을 만나 “대통합 이외에는 길이 없다”라며 다시 장기판에 끼어들었다.
DJ는 지난 7월9일 동교동에서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을 만나 “대통합에 걸림돌이 되거나 실패하게 하는 지도자는 내년 총선에서도 실패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대통합에 기여하는 사람이 국민 지지를 받을 것”이라고도 했다. 10일에는 역시 집으로 찾아온 김두관 전 행자부장관에게 “정치는 민심을 받아들이는 게 최고인데 지금 민심은 대통합”이라고 했다. 범여권 대통합에 최후의 정치적 승부를 건 모습이다.
DJ 사전에 열린우리당은 없다
그런데 “대통합에 걸림돌이 되거나 실패하게 하는 지도자는 내년 총선에서도 실패할 것”이라는 말이 함축적이다. 노대통령을 향한 말로 들리기 때문이다. “내년 4월 총선에 출마할 가능성이 있다”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관심을 보이는 노대통령이다. 따라서 DJ의 이 말은 ‘내년 총선에서 살아남으려면 당신도 대통합에 가세하는 게 좋다’라는 충고는 아닐까.
지금 대통합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는 열린우리당의 존재라는 데 이론이 없다. 노대통령과 측근 일부를 제외하면 열린우리당 해체를 통한 범여권 대통합이 대세이다. 따라서 DJ의 대통합 재촉은 노대통령에게 열린우리당의 행로를 빨리 결정하라는 통첩으로 들린다. 한 달 만에 나온 DJ의 반격이다.
DJ의 대통합을 위한 압박은 두 갈래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하나는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고, 다른 하나는 중도통합민주당이다. 현재는 통합민주당에 가하는 압박이 매우 강하다. 열린우리당과 노대통령이라면 손사래 치는 통합민주당 박상천·김한길 공동대표에 대한 질책이다. 김 전 대통령으로서는 박상천·김한길 공동대표가 내년 총선에서의 독자 생존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의심하는 눈치이다. 마지못해 대통합 대열에 합류하면서도 열린우리당을 철저히 배제하려 하기 때문에 대통합이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지원 전 비서실장이 동분서주하는 것이나, 차남 김홍일 의원이 대통합 촉구 세력에 가세한 것은 DJ의 원격 조종에 의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최근 박광태 광주시장, 박준영 전남도지사와 이낙연·신중식 의원 등 통합민주당 내 대통합파가 따로 모인 것도 동교동 기류에 부합한다. 이들은 박상천·김한길 공동대표에게 ‘대통합에 나서라’고 최후 통첩했다. 신중식 의원 등은 “대통합에 안 나서면 탈당하겠다”라고 경고했다. 박상천·김한길 대표가 열린우리당 정세균 의장과 마주 앉아 대통합 원칙에 인식을 공유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DJ 등살에 밀린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열린우리당이나 탈당파, 통합민주당이 입에 올리는 대통합의 접점은 ‘인식 공유’에서 딱 멈추고 만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받아들이되 열린우리당 간판을 들고 오는 통합이나, 친노 골수들의 합류는 안 된다”라는 것이 박상천·김한길 두 사람의 마지노선이다. 열린우리당 탈당파 상당수도 같은 정서다. 이들을 나무라는 DJ의 모습은 일단 열린우리당과 조건 없이 손잡으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 사람도 빠짐없는 범여권 대통합’을 외치는 DJ의 구도에도 열린우리당 ‘간판’은 그저 희미하다. 또 열린우리당과 합당해서라도 통합하라는 말은 단 한번도 한 바 없다. 그저 ‘민주 세력 대통합’일 뿐이다. 열린우리당을 민주 세력 개개인의 집합체 정도로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바로 여기에 노대통령과 DJ의 대척점이 있는 것이 아닐까. DJ에게는 한나라당 집권만 막을 수 있다면 ‘도로 민주당’이냐, 아니냐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실리일 뿐이다. 그러나 노대통령의 ‘대의’는 다르다.
문제는 범여권 대통합의 물줄기가 DJ 구상대로 흘러가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아무리 등을 떠밀어도 “열린우리당과는 합방할 수 없다”라는 통합민주당 박상천·김한길 공동대표의 고집이 불통이다. 이들의 저항이 대통합에는 걸림돌이지만 열린우리당 해체를 급박하게 몰고 가는 측면이 있다. 열린우리당이 반발하지만 소속 의원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동요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친노 대선 주자들의 행보 엇갈려
‘DJ 페이스’는 열린우리당 내 친노 대선 주자들의 행보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이해찬 전 총리는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주도하는 대선 후보 6인 연석회의에 합류했다. 한명숙 전 총리·김혁규 의원이 뒤를 이었다. 손학규 전 지사와 정동영 전 의장이 동석하고, 여기에 김두관 전 장관도 가세했다. 그리고는 DJ에게 행보를 ‘신고’했다. DJ로서는 열린우리당을 지탱하는 몇 안 되는 친노파의 투항이 무척 반가웠을 만하다.
유시민 의원의 진로는 아직 뚜렷하지 않다. 그를 배척하는 당 밖의 기운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심지어 유의원 때문에 대통합이 물 건너갈지도 모른다는 분위기이다. 그가 통합의 배에 올라타면 ‘뛰어내리겠다’는 세력이 적지 않다. 그런데도 유의원은 대통합에 합류할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고 한다. ‘대선 출마를 염두에 둔 그가 ‘마이너 리그에서 뛸 수는 없지 않으냐’는 것이다.
외형적으로는 여전히 열린우리당 친노 세력의 저항이 거세다. 이해찬 전 총리가 열린우리당 해체 요구를 ‘방자하고 거만한 주장’이라고 비난했다.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도 “당 해체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라고 일축했다. 두 번 다시 해체를 요구하면 박상천·김한길 대표를 만날 이유가 없다는 뉘앙스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구심력은 많이 떨어졌다. 정세균 의장은 “대통합에 도움이 된다면 탈당 문제는 의원 개개인의 판단에 맡겨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당원은 탈당할 자유가 있다”라고도 했다. 한마디로 ‘대통합’만 내세운다면 열린우리당 ‘붕괴’까지도 수용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노대통령이 대통합과 관련해 최후 양보선으로 제시한 ‘질서 있는 통합’과도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따돌리기는 정치권 밖에서도 나타난다. 이른바 ‘미래창조연대’라는 제3의 정치 결사체를 추진하는 최열 대표는 열린우리당의 합류를 거부했다. “열린우리당은 국민들로부터 심판받은 정당이 아니냐”라는 것이다. 그는 “이런 당과 합당하는 것은 국민 정서와도 맞지 않는다”라고 쐐기를 박았다.
노대통령은 기분이 저하되면 침묵하는 경향이 있다. 재·보선에서 참패할 때마다 그랬다. 며칠 지나서야 “민심의 흐름으로 받아들인다”라고 했던 노대통령이다. 노대통령은 대통합과 관련한 불리한 여건을 누구보다 정확히 꿰뚫고 있을 것이다.
노대통령은 이미 “열린우리당 대선 후보를 지지한다”라고 천명했다. 물러설 리 만무하다. 청와대는 6월 초 “민주당 중심으로 대선 후보가 나와야 한다”라고 한 DJ를 향해 불쾌한 기색을 전했다. 표면적으로는 김 전 대통령도 “열린우리당을 뺀 대통합”을 입에 올린 사실이 없다. 만에 하나 열린우리당 간판을 내리는 사태가 와도 ‘명예로운’ 형태가 되어야 한다. 그게 바로 노대통령이 말한 ‘질서 있는 통합’이다. ‘지역주의’이자 ‘도로 민주당’인 중도통합민주당은 그대로 존재하는데 열린우리당만 해체되는 대통합은 결코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DJ와 노무현, 대통합 묘수 찾아낼 것”
노대통령이 승부수를 던질 가능성도 있다. 지금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에 이은 원내 제2당이다. 소속 의원만 70명이 넘는다. 통합민주당은 30여 석이고, 제3 지대에 머무르는 탈당파는 40명 선이다. 열린우리당을 사수하고, 자체 대선 후보를 내세울 수 있다면 열린우리당 중심의 범여권 대통합도 가능하다고 본다. ‘탈 노무현’ 움직임을 보이던 이해찬 전 총리가 열린우리당 해체를 ‘방자하고 거만한 요구’라고 비난하며 제자리를 찾은 듯한 모습을 보인 것도 무언가 시사한다. 이해찬·한명숙·김혁규 의원 등이 빠진 김근태 전 의장의 대선 후보 연석회의는 팥소 없는 찐빵과 다름없다.
노대통령에게는 전국 조직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참여정부평가포럼과 노사모가 있다. 여차하면 정치 조직화가 가능하다. 열린우리당 사수와 수혈을 위한 예비 조직이다. 노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사수하면서 친위대를 접목시키고 독자적으로 대선을 치르며 내년 총선에서 승부를 건다면 범여권의 울타리에 있는 여타 세력들이 오히려 흔들릴지 모른다. 이 또한 열린우리당과 노대통령으로 인한 범여권 지지 기반의 분산이나 붕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노대통령은 여전히 ‘파괴’의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노대통령의 반격이 주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을 통해 다음 정권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퇴임 후 중앙정부와 권력을 견제하는 정치 세력의 존재가 절실해지는 것은 전직 대통령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경남 김해로 낙향하겠다는 노대통령은 어떤 전직 대통령들보다 현실 정치에 적극적이다. “시민사회 운동에 나서겠다”라고 다짐도 한 터이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까지 대통합의 틀 안에 구겨넣어 반 한나라당, 친 DJ 세력화를 바라고 있다. 동교동 측근들이 차기 정부를 ‘제3기 국민의 정부’라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 노대통령은 3년 전 민주당을 깨고 나왔듯, 3김 특히 DJ의 구각을 타파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럼에도 DJ와 노대통령이 막판 범여권 대통합의 묘수를 만들어낼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이 두 사람이 누구보다도 한나라당 집권을 ‘대재앙’으로 받아들인다는 점 때문이다. 집안 싸움에 혈안에 되어 있는 한나라당과 DJ, 노대통령의 번뜩이는 눈빛은 공동의 적을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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