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위기’ 뚫는 3인3색 마이웨이
  • 이명수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7.30 10:2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통합민주당 ‘삼두마차’ 박상천·조순형·김한길의 선택

 

 “아무리 어르신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틀렸다고 해야 한다. 민주당을 만든 분이지만, 지금은 열린우리당 지지자이기 때문에 존경할 것은 존경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한다.” 통합민주당 박상천 대표가 7월18일 지역위원장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여기서 ‘어르신’은 누구인가? 열린우리당을 포함해 범여권 정파들이 무조건 통합할 것을 재촉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가리킨다. “내가 모신 분이라 대들 수도 없고. 곤혹스럽다”라는 말도 했다. 호남 출신 정치인과 DJ의 관계로 미루어볼 때, 이 정도면 ‘역린’에 해당된다.
범여권은 지금 DJ 구도대로 굴러가고 있다. 이른바 제3 지대 범여권 대통합 신당 추진체인 ‘미래창조대통합민주신당’(가칭)이라는 이름의 창당준비위원회가 7월24일 발족되었고, 8월5일 중앙당 창당을 목표로 하고 있다. DJ의 구상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미래창조대통합민주신당은 아직 반쪽짜리 정당이다. 열린우리당 주력 부대와 통합민주당 세력은 강 건너 불 보듯 한다. 가장 강력한 정치 실체인 노무현 대통령 의중도 아직 실리지 않았다. 그러나 DJ의 구상은 ‘제3의 지대’에 신당이라는 강력한 유인제를 뿌려 열린우리당은 물론 통합민주당까지 흡수한다는 것이다. 통합민주당 소속인 아들 김홍업 의원의 탈당까지 부추겼다. DJ는 통합민주당 해체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래야만 노대통령이 집착하는 열린우리당까지 해체시켜 대통합을 성사시킬 수 있다는 계산인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 5월 신안·무안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전라도와 도민이 부끄럽다”라는 광주·전남 시민단체들의 비난 속에서도 김홍업씨 공천을 밀어붙였다. 그렇게 당선시킨 김홍업 의원이 통합민주당 해체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의 탈당은 바로 ‘DJ의 속내’이다. 영리한 김한길 공동대표는 바로 넘어갔다. 그러나 박상천 공동대표는 뚝심 있게 버텼다. 그는 김효석·이낙연·신중식·채일병 의원 등이 지난 7월24일 통합민주당을 탈당하고 제3 지대 신당 합류를 선언하자 “언젠가는 지역 주민들로부터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그는 “잡탕식 통합으로는 대선을 승리로 이끌 수도 없고 정치 발전을 이룰 수 없다. 잡탕식 대통합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라고 못박기도 했다. “열린우리당이 통째로 대통합에 들어간다면 우리는 들어가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이때만 해도 박대표는 신당에 가지 않아도 통합민주당이 ‘호남의 적자’로 존립 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믿음은 실리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졌다. 막상 김홍업·유선호 의원이 탈당하자 민주당이 기둥뿌리부터 흔들렸다. 급기야 박대표는 김홍업 의원이 빠져나가자 신당에 “합류할 수도 있다”라며 말을 흐렸다.

 
DJ 구상에 반기 들거나, 따르거나
박대표보다 더 강경한 사람이 있다. ‘미스터 쓴소리’ 조순형 의원이다. 그는 DJ에 대한 비난을 숨기지 않는다. “무조건 대통합을 종용해온 김 전 대통령은 정치는 후진들에게 맡기고 도가 지나친 정치 개입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벨상 수상자인 김 전 대통령은 세계 평화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라고도 말했다. 그는 “대선이 이번만 있는 것이 아니므로 통합민주당은 그대로 가야 한다” “통합민주당이 도로 민주당이 되더라도 민주당을 사수하겠다”라고 말했다. 그의 ‘민주당 사수’ 선언은 대선 출마 선언으로 입체화된다. 조의원은 “통합민주당이 무조건 잡탕식 대통합에 내몰리는 것은 독자 대선 후보를 내지 못한 데 원인이 있다. 나의 출마가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조순형 의원의 대선 출마 선언은 열린우리당은 물론 대통합 세력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더구나 7월26일 대권 출마를 선언하는 날 아침에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조의원이 10.2%를 기록해 손학규 전 지사에 이어 범여권 2위로 올라섰다. CBS-리얼미터가 7월23~25일 전국 1천2백5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명박(36.4%)·박근혜(25.9%) 지지율은 동반 하락했고, 범여권 후보 선호도에서 조순형 의원이 2위로 등극한 것이다. 대선 후보가 없어 ‘불임 정당’으로 지목받던 통합민주당은 조순형 후보를 앞세워 범여권 대통합에 새 판을 짤 수도 있으며, 나아가 범여권 후보 단일화에 주도권을 쥘 수 있다고 환호한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의 눈에는 박상천·조순형 두 사람이 가시일 수밖에 없다.
박상천 대표, 조순형 의원과는 다른 길을 걷는 정치인이 김한길 통합민주당 공동대표이다. 그는 7월12일 일찌감치 “범여권 대통합을 위해 기득권을 포기하겠다”라고 말했다. ‘기득권 포기’란 “대표 직이나 지분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6월27일 민주당과 ‘중도통합민주당’으로 합당했었다. 그는 그로부터 12일 만에 통합민주당 내 20명과 함께 당적은 유지한 채 신당에 가세했다. 그는 지난 2월 6일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뒤 6개월 만에 네 번이나 당적을 바꿨다. 그가 1992년 대선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국민당에서 정치를 시작한 것부터 꼽으면 도대체 몇 번이나 당적을 바꿨는지 헤아리기도 힘들다.
그는 “통합민주당이 기득권과 주도권을 내세우지 말고 제3 지대 세력들과 대통합신당 창당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해체’를 통해서라도 범여권 신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는 5개월 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를 벗어던지고 “열린우리당 역할이 끝났다”라면서 소속 의원 23명을 이끌고 탈당했었다.
 
김의원의 행보 뒤에는 김 전 대통령의 입김이 있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는 “기득권을 포기하겠다”라고 말한 지 닷새 뒤인 7월17일 동교동으로 DJ를 찾아갔다. 통합민주당 기득권을 버리기로 하고, 대통합으로 갈아탈 준비를 마친 그에게는 김 전 대통령의 충고가 긴요했을지 모른다. 그는 지난 2월 열린우리당을 탈당하기 직전, 노대통령과 따로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노대통령은 김의원에 대해 “머리 회전이 기막힌 사람”이라고 평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참여정부의 지지도가 바닥을 기자 ‘살길’을 찾아 빠지는 기술이 남다르다는 평가로도 들린다.
그는 서울 출신이다. 통합민주당 소속 의원이 대부분 호남 출신인 것과 입장이 다소 다를 수밖에 없다. 통합민주당이 내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나 범여권 신당과 별도로 후보를 낸다면 서울에서는 당선이 힘들지도 모른다. 범여권 표가 갈려서이다. 어떻게든 서울에서는 범여권이 단일 후보를 내야만 호남 표+진보 표로 당선을 꿈꿀 수 있는 처지이다. 이렇게 보면 그가 통합민주당을 만든 지 한 달도 안 되어 범여권 통합민주당 해체에 앞장서고 신당으로 말을 바꿔 탈 수밖에 없었던 처지가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6개월 사이에 당적을 네 번이나 옮겼다는 꼬리표는 계속 따라다닐 것이다. 선택이 옳았는지는 내년 총선이 지나야 알 수 있다. 박상천·조순형·김한길의 각기 다른 선택, 국민만이 심판관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