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발 ‘북풍’ 에 정신 못차리는 한나라당
  • 소종섭 기자 ()
  • 승인 2007.08.1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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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반대” “조건부 수용” 오락가락…중도 표 이탈 계기 될 가능성도

 
‘임기 말 대통령이 대선을 앞둔 시기에 지난 정상회담에 이어 또다시 평양이라는 장소에서 밀행적 절차를 통해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한 것에 대해 심히 우려를 표시한다. 시기, 장소, 절차가 모두 부적절한 남북정상회담에 반대한다.’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8월8일 오전 한나라당이 내놓은 첫 반응이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동시에 ‘남북정상회담은 결국 퍼주기, 구걸 의혹과 함께 정치적 뒷거래로 끝나고 말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나대변인의 논평은 당 내에서도 논란을 불렀다. 그날 오후에 만난 여의도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너무 성급했다. 정상회담 자체를 반대하기보다 실질적인 성과에 주목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어야 했다”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오후 늦게 들어 “핵폐기와 북한 개방에 기여하는 회담이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라며 ‘조건부 수용’으로 돌아서기는 했지만, ‘한나라당이 과거와 달라진 것이 없다’라는 ‘수구  보수’ 인상을 다시 각인시켰다. 한나라당은 여전히 남북정상회담의 긍정적 측면에 주목하기보다는 정상회담이 성사되기까지 남북 간에 무언가 뒷거래가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물론 증거는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최근 흐름은 지난 7월4일 한나라당 평화통일특별위원회(위원장 정형근)가 종전 선언, 평화협정 체결 등의 내용이 담긴 ‘한반도 평화 비전’을 발표해 신선한 느낌을 주었던 것과 엇박자이다.
정상회담과 북한을 불신하는 한나라당의 태도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중도파들이 이탈하는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여론조사 전문가인 명지대 교양학부 김형준 교수는 “선거가 막판에 이르게 되면 유권자들이 보통 진보 40%, 보수 40%, 중도 20%로 나눠지면서 4-4-2 이념 구도가 만들어진다. 중도 그룹이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결정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진보에 가까운 성향을 보이면서 안정보다는 변화를 지향하는’ 중도층이 한반도에 평화 무드가 무르익는 가운데 앞으로 한나라당에 등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김교수에 따르면 어떤 경우든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골수 지지층’은 23.8%에 불과하다. 지난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고, 현재도 지지하며 앞으로도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사람들의 비율이다. 이런 측면에 주목하면 현재 50%를 웃도는 한나라당 지지도는 허약하기 그지없다고 볼 수 있다. 절반 이상이 ‘충성도’가 약한 지지여서 외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KSDC)가 어떤 정책 항목이 유권자의 정치 이념에 영향을 주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국가보안법 폐지, 재벌개혁 등 12개 항목으로 나누어 조사한 결과가 주목된다. 유권자들을 보수냐 진보냐로 구분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인이 북한과 관련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즉 복지·감세 같은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대북 및 안보 문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가 한국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는 잣대라는 것이다.

“중도 표 못 잡으면 정권교체 물 건너 간다”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에 이른바 ‘평화  정치 시대’가 열릴 경우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평가나 경제 문제를 매개로 짜인 현 대선 판도 자체가 흔들릴 것이라는 관측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다. ‘한반도 문제’가 전면에 떠오르면서 이를 중심으로 진보와 보수가 확연히 갈라지는 쪽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윤여준 전 의원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에 평화 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한 획기적인 선언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라며 “대선 판도 자체가 완전히 새롭게 바뀔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한반도를 비롯한 국제 정세가 급변하고 민주신당과 열린우리당이 합당하는 등 여권이 체제를 정비해가는 가운데 한나라당과 보수 그룹에서는 ‘과연 정권을 교체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점점 높아가고 있다. 지난 8월8일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한나라당의 본선 필승 전략을 논한다’라는 토론회가 그 한 사례였다. 대선 후보 경선에서 중립을 지키고 있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모임인 ‘당이 중심되는 모임’(중심모임·회장 맹형규 의원)과 ‘보수의 개혁’을 주장하는 자유주의연대가 주최했다.

 

이 토론회에서 자유주의연대 신지호 대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을 강하게 비판했다. 신대표는 “(한나라당에) 본선을 위한 경선이 아니라 경선을 절대시하는 경향이 만연해 있다. 시너지 효과는 완전히 무산되었고, 여권에게 흑색 선전을 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 외연을 확대하는 데 역행한 경선이다”라며 한마디로 “‘예선의 본선화’로 인해 제살 깎아먹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라고 질타했다.
한나라당 경선이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집안 싸움’ 양상으로 비쳐지면서 한나라당 지지도는 오히려 20% 가까이 떨어졌다. 박근혜·이명박 두 후보의 이른바 ‘검증 공방’에 국민들이 질렸기 때문이다. 정정당당한 ‘검증’이 아니라 불법적으로 정보를 빼내 상대방을 비방·공격하는 구태에 유권자들의 고개가 절로 돌아가고 있다. 한나라당 경선은 마치 세상 돌아가는 줄 모르고 우물 안에서 치고받으면서 같이 죽어가는 모양새가 되었다. 오죽했으면 신지호 대표가 “중립 지대 유권자들이 누가 되든 상관없으니 정권 교체 좀 해달라는 전략 투표에 나서야 한다”라고 강조하고 나섰을까.
한나라당의 한 전략가는 민주신당과 열린우리당이 합당한 데 이어 대선 직전 민주당까지 포함하는 이른바 ‘반한나라당 연합’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크게 보아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까지 가세한 ‘한나라당 집권 저지 연대’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조순형 의원 캠프의 한 핵심 인사도 “민주당과 신당은 각자의 길을 가다가 막판에 함께하는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라고 비슷하게 전망했다.
남북정상회담은 당장 오는 8월19일 치러지는 한나라당 경선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남북 관계의 변화가 불러올 환경 변화  속에서 누가 더 경쟁력을 가질지가 새롭게 부각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후보는 “남북 정상은 자주 만날수록 좋다”라며 자신이 전향적인 대북관을 갖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박근혜 후보는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까지 할일을 해야 한다”라고 남북정상회담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누가 대선 후보가 되든 모든 것을 원점에서 새로 시작한다는 각오로 대선에 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워낙 큰 환경 변화가 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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