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매는커녕 전세 매물도 없어요!”
  • 함영진 (부동산써브 부동산연구실장) ()
  • 승인 2007.08.13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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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침체로 문 닫는 중개업소 속출…분양가 상한제 시행으로 된서리

지난주 금요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허름한 소줏집.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 대표들이 모여 저녁 식사를 하며 “장사가 안 되어 죽겠다”라고 푸념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옛날이 좋았다”라고 입을 모았다. 
먼저 ㅇ사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요즘은 종일 책상에 앉아 있기가 따분해 주택 관리사 시험을 준비 중이다”라고 했다. ㅎ사장은 “사무실 관리비도 나오지 않아 신용카드를 긁어가며 생활한다”라고 말했다. ㄷ사장은 아주 궁색했다. “지난해는 아내 몰래 비자금도 만들어 썼는데 요즘은 오히려 용돈을 타 쓸 정도로 어렵다”라고 탄식했다.
이들이 털어놓은 이야기는 부동산 중개업소 실태가 어떤지를 잘 말해준다. 사무실을 열어놓자니 비용만 나가고 닫자니 할일이 없다는 것이다. 할일만 없으면 좋으나 자칫 ‘망했다’는 소리를 들을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부동산 중개업소가 심한 ‘거래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이다. 정부의 각종 부동산 규제들이 하나씩 현실로 나타나면서 부동산 시장이 싸늘하게 식었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이 얼면 중개업소는 늘 개점 휴업 상태에 빠진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의 각종 부동산 규제로 중개업소들이 ‘거래 가뭄’에 시달리며 몸살을 앓고 있다.
전국부동산중개업협회 관계자는 “돈벌이는커녕 월세와 운영비도 못내는 중개업소가 수두룩하다. 이대로 가면 중개업소 절반은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라고 걱정했다. 부동산 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는 얘기이다. 서울 강북 ㅍ부동산중개업소 대표는 “월세와 운영비로 매달 3백만~3백50만원이 필요한데 지금은 중개업 일로는 도저히 타산을 맞출 수 없다. 중개업을 그만두고 싶어도 입점 때 얹어주었던 권리금을 포기할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꾸려가고 있다. 상황을 보아서 대리 운전 자리라도 알아볼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가끔 전화벨이 울려대고 아파트를 사고파는 사람들이 드나들어야 정상이지만 중개업소 대표가 대리 운전을 생각할 만큼 어렵다. 이런 현상은 세금 부담과 담보 대출 규제로 거래가 더 힘들어진 서울 강남의 재건축겙恣?아파트 주변 중개업소들도 마찬가지이다. 강남의 ㄴ공인중개사 대표는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된 뒤 집을 사려는 사람들이 많아 9월 이후부터는 더 힘들어질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서울 잠실 트리지움아파트 인근 ㅇ부동산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당분간 전세 계약서도 못쓸 판이다”라며 짜증스러워했다. 그는 “학군 때문에 전통적으로 전세 특수를 누렸던 강남 지역도 방학이 시작되었지만 전세 시장이 움직이지 않아 공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그는 “입주일이 다가오면서 전세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 잔금을 내지 못해 전세 물량은 많지만 수요 부족으로 99㎡대는 지난 6월보다 2천만~3천만원 내렸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부동산 거래가 크게 줄면서 월세 부담을 못 이겨 매물로 내어놓는 부동산 중개업소 사무실들이 쏟아져 나오고 권리금도 곤두박질치고 있다. 집값 움직임의 선행 지표인 거래량이 예년보다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통계들이 이를 잘 말해준다. 올 들어 5월까지 전국 거래량은 17만2천 건. 지난해 같은 기간 18만4천 건보다 6.5% 줄어들었다. 수도권은 10만8천 건에서 7만9천 건으로 27.3% 감소했다. 특히 수도권 주택 거래 신고 지역 중 20개 시·구의 상반기 거래량은 7천4백4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23% 선에 그쳤다. 전세 시장 역시 전국 1.5%, 수도권 2.05%, 서울 2.02% 가격이 오르는 데 그치면서 거래량이 급감하고 있다.
올해 10월 분양될 서울 은평 뉴타운 부근 부동산중개업소 ㄱ사장은 “은평 뉴타운 지역 중개업소들은 개점 휴업 상태이다. 뉴타운에 관심을 갖는 수요자는 많지만 10월 분양이 가까워오자 관망세로 돌아섰다”라고 말했다. 그는 “수요자들이 아파트 분양가가 얼마에 책정될지, 철거 원주민에게 특별 공급되는 아파트의 동 호수 추첨 결과와 권리 승계(1회 매도) 여부 등을 확인한 뒤 움직이겠다는 분위기”라며 최근 계약서 한 장 쓰지 못했다고 푸념했다.
상황이 어려워지자 중개업소들이 부동산 시장을 떠나고 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2만6천1백49곳이 휴업하거나 문을 닫았다. 전국적으로 영업 중인 중개업자가 8만1백17명에 달했던 점을 감안하면 32%가 떠난 셈이다.
경기도 부천 시내 ㅇ공인중개사사무소 ㅍ대표(58)는 20년 가까이 사용해오던 10평짜리 사무실을 매물로 내놓았다. 그는 지금 새 직업을 찾고 있다. “집에 가면 아내보기가 민망할 정도로 빈손으로 다닌다. 도시락을 싸와 먹지만 파리만 날린다”라고 말했다. 그는 “시원한 사무실에서 넥타이를 매고 있으니 돈 꽤나 버는 것 같지만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차라리 막노동이라도 해서 얼마씩 버는 것이 더 낫다”라고 말했다. 

 툭 하면 단속 나와 정상 영업 더 어려워져

 
부동산중개업소가 고전하는 것은 서울만의 현상이 아니다. 천안겲틥?고속전철역 부근 ㅎ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여기는 완전히 뜨는 지역으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땅이 없어서 못 팔았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땅을 팔아달라고 하는 사람은 꽤 있는데 사달라는 사람은 거의 없다”라고 말했다.
대구시 효목동 ㅊ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좀 있으면 이사철이 되고, 이 때쯤이면 계약서는 쓰지 않더라도 물어보는 사람은 있는데 올해는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라고 의아해 했다. 그는 “종일 전화 한 통화가 없을 때도 있다”라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업계는 정부의 지나친 단속도 공인중개사들로 하여금 부동산 시장을 떠나게 한다고 주장한다. 탈세와 위법을 잡아내기 위한 국세청 지자체 등의 함정 단속이 많고, 투기 주범으로 몰리고 있다는 자괴감이 심하다는 것. 신도시 발표 때마다 주변 부동산 중개업소들을 대상으로 한 불법 행위 투기 단속반들이 몰리는 특별 지도 점검이 많다 보니 정상 영업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예 문을 닫는 경우가 많은 실정이다. 화성시 동탄 지역 내 한 부동산 중개업소의 ㅇ실장은 “단속 팀이 뜨면 문을 닫고 전화로 영업을 한다. 불법을 저지른 것이 없어도 컴퓨터나 장부를 닥치는대로 뒤져대니 상황을 보아 휴가나 떠날 생각이다”라며 어려움을 드러냈다.
최근 지자체마다 부동산 불법 중개를 신고할 수 있는 ‘파파라치’ 제도까지 시행하고 있어  이래저래 업소를 꾸려가기 어려워지고 있다. 서울 은평구 ㄱ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가 죽어 장사가 안 되면 단속이라도 완화해주어야 하는데 툭하면 단속이 나와 더 어렵다”라고 말했다.
부동산 중개업계는 △중개업소 간판 실명제 도입(6월29일) △현금 영수증 가맹점 가입 확대(7월1일) △부동산 실거래가 신고 의무화로 업무 부담이 늘어난데 따른 고충도 중개업소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이유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7월부터 시행되는 도량형 변경도 중개업소들이 신경 쓰는 대목이다. ‘평’ 등 비법정 계량 단위를 계약서에 쓰거나 이를 게시하면 50만원의 과태료가 나온다. 중개업소들은 매매계약서와 매물 장부를 ㎡로 바꾸고 평 단위에 익숙한 고객들에게도 일일이 설명하지만 계약 성사는 거의 없어 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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