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공산 북한에 ‘은행 나무’ 심어라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07.11.12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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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은행, 개성공단 입주 기업 대상 파격 행보…국민은행은 펀드로 우회 진출 노려

무주공산 북한 시장을 잡아라.” 북한 시장 선점을 위한 시중 은행장과 금융지주회사 회장들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이들은 개성 공단이나 금강산에 점포를 개설하는 수준을 넘어 글로벌 투자은행(IB) 도약을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 북한을 바라보고 있다. 물론 해당 은행들은 이런 사실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북한에서의 사업은 단순히 지점 수를 늘리는 국내 상황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자칫 호들갑을 떨었다가는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릴 수 있다’라는 우려에서인지 조심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해외 금융기관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북한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는 점에 이견이 없다. 남북 화해 무드를 타고 북한 내 경제 특구가 늘어날 경우 외국 은행과의 경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시일을 늦출 경우 초기 경쟁에서 밀릴 수도 있다. 금융감독원의 한 관계자는 “북한 진출 조건은 그리 까다롭지 않다. 통일부로부터 대북 협력사업 승인만 받으면 은행도 개성공단이나 금강산에 지점을 낼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 수는 북한 정부와의 협력 관계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은행권에서 가장 활발하게 대북 진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 곳은 하나은행이다. 하나은행의 경우 이미 북한에 진출한 우리은행이나 농협과 달리 점포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최근 김승유 하나금융그룹 회장의 방북을 계기로 북한 공략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은행권 “먹지 않으면 먹힌다” 신경전 치열

개성공단 입주 기업을 대상으로 시설·운전 자금을 대출해주는 ‘개성시대 론’이 대표적인 예이다. 지난 11월7일 하나은행이 선보인 이 상품의 조건은 상당히 파격적이다. 시설 자금의 경우 소요 자금의 70%까지, 운전 자금은 100%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담보 인정 비중도 시중 은행 최고 수준이다. 토지 이용권은 50%를, 건물은 30%를 담보로 적용하고 있다.
하나은행의 한 관계자는 “(김승유 회장이) 북한 시장에 관심이 많다. 북한 관련 상품 기획을 지시하면서 탄생한 상품이 ‘개성시대 론’이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북한 시장에 대한 김회장의 관심은 단순한 호기심 이상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지난 10월 시중 은행 총수로는 유일하게 남북정상회담 특별 수행원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당시 금융권 안팎에서는 우리금융지주 박병원 회장이나 박해춘 우리은행장이 대통령 방북 수행원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개성공단에 우리은행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김승유 회장이 수행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김회장이 북한 사업에 관심이 많고, 중국 동북3성을 통해 북한 진출을 꾸준히 준비한 점이 어필되었던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북한에서도 김회장은 파격 행보를 이어갔다. 그는 평양에서 마이크로 크레디트(무담보 소액 대출) 사업을 북측에 제안했다. 김회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방글라데시 그라민뱅크와 같은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이 북한에 적합하다. 이번 방북에서 북한에 관련 사업을 제안했다”라고 말했다.
물론 하나금융지주측은 이같은 김회장의 움직임이 지극히 사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시장에서는 하나은행이 조만간 북한에 지점을 설립할 것이라는 소문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김회장도 사석을 통해 “내년 초 뉴욕 필하모니가 평양에서 공연하면 북한은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외국 금융사들의 북한 진출이 잇따를 전망이다. 이에 앞서 우리가 북한 시장을 선점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연임에 성공한 강정원 국민은행장도 그동안의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북한 진출을 고심 중이다. 그는 지점 설립보다는 펀드 투자 등 우회적인 방법을 선호하고 있다. 해양수산부 주도로 오는 11월 공식 출범 예정인 국제 물류 펀드가 그것이다.
이 펀드는 북한 해주항 개발을 위해 마련되었다. 우선 정부가 단계적으로 3천억원가량을 출자하고 국민은행은 산업은행, 수협은행,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들과 함께 1조7천억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가장 먼저 개성공단에 진출한 우리은행은 아직까지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 2004년 국내 은행 최초로 개성공단에 지점을 개설했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 8월 처음으로 ‘개성공단 V론’을 선보였다.

우리은행·농협은 ‘서행’

그러나 지난 10월 대통령 특별 수행 명단에서 제외된 이후 잠잠한 상태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정부 정책이기 때문에 뭐라 말할 입장은 아니다. 그러나 솔직히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상징적인 면을 감안해도 현지 점포가 있는 우리가 특별 수행원 명단에 올랐어야 했다”라고 말했다.
이 은행 내부에서는 현 정권에 ‘팽’당한 것이 아니냐는 소리도 나온다. 한 은행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정부와의 관계가 소원해진 것이 아니냐는 말이 많다. 이대로 가다간 대북 사업에서 주도권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라고 했다.
현재 개성공단에 진출한 은행으로는 우리은행이 유일하다. 그러나 개성공단 영업 경쟁에서 밀릴 경우 북한 시장 주도권을 빼앗길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우리은행 관계자는 “그쪽은 특수 지역이다.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아직까지 금융 거래 규모나 범위가 지정되는 등 한계가 있다. 이같은 제약 때문에 함부로 나서지 않는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다급하기는 농협도 마찬가지이다. 농협중앙회는 현재 해외 진출을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 미국과 중국 상하이에 이어 북한을 잡아놓은 상태이다. 그러나 지난 최근 금강산에 점포를 개설한 이후로 아직까지 뚜렷한 활약이 없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농협의 북한 진출 이면에는 민족은행이라는 명분이 포함되어 있다.
당장 수익을 내기보다는 국가와 민족 발전을 위한다는 차원에서 서두르지 않고 있다”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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