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화합은 대안 없는 대세
  •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
  • 승인 2007.12.24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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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관계 재설정할 시간적 여유 없어 북핵 해결·평화체제 구축 함께 힘써야

 
이번 제17대 대통령 선거는 후보 검증 공방에 집중함으로써 후보들이 제시한 분야별 공약은 관심을 끌지 못했다. 특히 대북 정책과 관련해서는 ‘친북 좌파’ 공방만 이루어졌을 뿐, 구체적인 공약 검증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북핵 실험 이후 한반도 정세는 급변하고 있고 비핵화로 가는 중대 국면에 직면해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북한 핵을 폐기하고 한반도 평화 번영을 이루어야 할 역사적 사명을 부여받고 있다. 당선자는 경제 살리기와 국민통합을 강조하면서 ‘경제 대통령’을 표방해왔기 때문에 대선 공약 이외에 통일 철학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대선 공약인 ‘신한반도 구상’과 한나라당이 대선을 앞두고 내놓은 ‘한반도 평화 비전’ 등을 중심으로 새 정부의 ‘신대북 정책’ 방향을 전망해볼 수밖에 없다.
이명박 당선자의 대북 정책 관련 대선 공약은 ‘북한이 비핵·개방하면 10년 내 소득 3천 달러가 되도록 지원한다’라는 것과 ‘한반도 평화 정착 추진 및 한·미 동맹 강화’이다. 이당선자의 남북 관계 구상의 기본은 ‘핵폐기를 전제로 북한의 경제 자생력을 확보하도록 지원함으로써 통일의 기반을 조성한다는 것’으로 집약할 수 있다. 이당선자는 북핵 해결을 우선 과제로 제시하고 ‘국익 실리 외교’라는 이름으로 ‘실용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이당선자는 12월20일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차기 정부의 대북 정책 방향을 ‘핵 없는 한반도 평화 시대’로 요약하고 경협 역시 실용주의에 입각해 추진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를 위해 우선 6자회담 틀 속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 공조의 적극 이행과 북한에 대한 원칙 없는 ‘저자세’에서 벗어난, 강력하고 신뢰 있는 설득을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제시했다. 그는 특히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것이 북한도 발전하는 길이다. 한반도 비핵화를 통해 남북은 새로운 협력의 시대를 열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당선자는 유세 과정에서 ‘선 비핵’이라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지만 비핵화가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대북 정책을 펼쳐 비핵화를 조기에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북핵 폐기의 구체적 전략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는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에 따라 북핵 문제를 해결한다는 동시 행동 원칙을 확약한 다자간 합의이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이당선자가 ‘선 핵폐기’를 공약으로 제시함으로써 북한과 북핵 해결 방법을 둘러싸고 갈등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선 핵폐기 주장은 북한 핵실험 이전까지 미국 부시 행정부가 폈던 대북 강경 정책과 같은 것으로, 결국 핵실험까지 초래한 실패한 정책이다. 미국도 지금은 선 핵폐기보다는 행동 대 행동에 따른 핵폐기를 추진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집권 초기에 ‘북핵 해결 우선주의’를 내걸고 핵문제 해결과 남북 관계 진전을 연계 추진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전례도 있다. 현 정부는 북핵 해결 우선주의로 핵실험을 막지 못했다. 새 정부는 북핵 문제가 갖는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성격 등을 고려해서 6자회담을 통한 다자 국제 협력 틀을 통해서 대화와 압력을 통한 해결을 모색하고 남북 관계는 북핵 해결을 촉진하는 선순환 구조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지금의 한반도 정세는 시간을 가지고 남북 관계를 재설정할 정도로 한가롭지 않다. 연내 불능화를 목표로 한 10·3 합의가 진행 중에 있고,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3단계 협상을 서둘러야 할 ‘중대 기로(critical juncture)’에 서 있다. 미국 부시 행정부 임기를 고려할 때 2008년 상반기까지 북·미 관계 정상화의 큰 흐름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미국과 북한은 한국의 대북 정책에 상관없이 관계 개선을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 북·미 관계가 진전될 때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 한국 정부의 소외에 대한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북한이 노무현 정부 막바지에 남북정상회담에 응하는 등 다양한 대화 채널을 복원하는 관계 진전을 모색하는 것은 남측의 새 정부를 의식한 조치로 볼 수 있다. 북한은 이명박 대세론이 지속되는 가운데 보수 정권이 들어서 대북 정책을 재검토할 것을 의식한 선제 조치로 남북 관계 모멘텀을 유지하기 위한 많은 연결고리를 마련해두었다. 남북 관계가 경색된 가운데 정권 교체가 이루어질 경우 6·15 남북공동선언이 사문화되고 남북 관계 전반에 새로운 장애가 조성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북한, 새 정부 출범 초기에 예상 밖 ‘선물’ 내놓을 수도

최근 남북 관계가 급진전함으로써 차기 정부는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집권 이후 남북 관계가 후퇴하거나 경색될 경우 대북 정책 수행 능력에 의문이 제기되는 등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실용주의를 표방한 새 정부는 핵문제에 진전이 이루어질 경우 적극적으로 대북 정책을 추진하려 할 것이다. 다만 지지 세력 중 대북 정책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는 강경 보수 쪽에서 오는 압력으로부터 얼마만큼 정책적 자율성을 갖느냐가 중요하다. 북한이 새 정부가 적극적인 대북 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집권 초기에 ‘선물’을 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남측이 원하는 성과를 주고 지지 세력의 반발을 무마하면서 적극적인 대북 포용 정책을 펼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가능성도 있다.
새 정부가 집권 초기 대북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현재 진행 중인 2·13 합의와 10·3 합의 이행과 남북 간 합의 사항을 잘 검토해 모멘텀을 유지하면서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북핵 실험 이후 핵확산을 막아야 하는 긴박한 국제 정세, 부시 대통령의 임기, 남북 간 산적한 현안 등을 고려할 때 남북 관계 재설정을 위한 시간은 많지 않다. 부시 대통령이 취임해 클린턴 행정부가 추진했던 대북 정책을 전면 부정하면서 대북 강경 정책을 편 결과 핵실험에까지 이르렀다는 점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전 정부들이 추진해온 대북 정책의 추진 동력을 유지하면서 대북 정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미 한나라당은 지난 7월에 한반도 평화비전을 내놓은 바 있다. 한나라당의 신대북 정책은 포용 정책의 내용을 상당 부분 수용하고 있다. 남북 관계는 국가 대 국가 관계가 아닌 민족 내부 관계이기 때문에 화해 협력, 평화 번영을 위한 포용 정책은 대안 없는 대세이다. 다만 원칙에 충실한 대북 포용 정책으로 평화 번영 시대를 열어나가야 할 것이다.
차기 정부의 대북 정책 과제는 첫째, 6자회담에서의 북핵 해결 노력과 함께 냉전 구조 해체 및 평화체제 구축을 실현하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가 구상한 한반도 냉전 구조 해체 구상은 노무현 정부에서도 북핵 문제에 발목이 잡혀 실현하지 못했다.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2005년 9·19 공동성명과 2007년 2·13 합의가 이행되면 냉전 구조 해체를 가속화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핵 불능화를 목표로 한 2·13 합의가 연내에 이루어지면 곧바로 북한 핵무기와 핵물질,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 등을 폐기하기 위한 다음 단계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 따라서 차기 정부는 집권 초기 북핵 폐기를 위한 외교 노력과 대북 정책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차기 정부는 6자회담과 남북 관계 두 축을 활용해서 북핵 폐기를 앞당기고 뒤쳐진 평화체제 구축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둘째, 6·15 선언 및 10·4 선언 이행과 남북연합 실현을 통한 ‘사실상의 통일’을 앞당겨야 한다. 남북 관계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1972년 7·4 공동성명,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2007년 남북 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 등 기존의 남북 합의문들은 정권을 초월해서 이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북측은 정권 수립 이후 현재까지 김일성-김정일 유일 지도 체제를 통해 계승성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는 임기에 따른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임 정권의 합의를 부정할 경우 남북 관계를 안정적으로 끌고 갈 수가 없다. 더구나 10·4 선언의 경우 대부분 차기 정부가 이행할 과제들이다. 또한 합의 내용 대부분은 새 정부가 우선 순위를 조정해서 이행해 나가야 할 남북 관계 현안들이다.
셋째, 남북 관계 발전을 위한 법적·제도적 장애 제거도 차기 정부의 해결 과제이다. 10·4 선언 2항에서 남과 북은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해 남북 관계를 상호 존중과 신뢰 관계로 전환시켜나가기로 했다. 또한 “남과 북은 남북 관계를 통일 지향적으로 발전시켜나가기 위해 각기 법률적·제도적 장치들을 정비해 나가기로 했다. 2007 남북정상회담의 합의에 따라 차기 정부는 상대를 부정하는 국가보안법 개정 또는 폐지 등 남북 관계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법률·제도를 정비해나가야 할 것이다. 남북 관계 발전 추세에 맞게 법률 제도 정비를 하지 않으면 남북교류협력 내용의 상당 부분이 국가보안법과 어긋나는 ‘위법’ 현상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점은 2005년 12월 제정한 ‘남북 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로 어느 정도 해결하고 있지만 근원적 해결을 위한 법률적·제도적 장애를 제거해나가야 한다.

 

대북 정책 둘러싼 남남 갈등 해소도 중요

넷째, 대북 정책을 둘러싼 남남 갈등을 해소하는 노력도 지속해나가야 한다. 6·15 공동선언 이후 남과 북은 남북 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정착시키기 위해서 노력해왔다. 그 결과 남과 북에서는 점차 대결적 냉전 사고로부터 벗어나 민족 공동 번영을 모색하는 인식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하지만 6·15 공동선언에 따라 남북 관계를 제도화하고 남과 북의 사회 내에 남아 있는 남북 대결 시대의 논리와 정책을 완전히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남측에서는 북한 변화 여부 논란, 대북 지원 관련 ‘퍼주기’ 논쟁 등으로 남북 화해 시대 남남 갈등이라는 역설이 형성되기도 했다. 북측에서도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대북 강경 정책 등 국내외 정세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남북 관계 발전에 기복을 보이고 있다.
  남북 화해 협력 정책은 정권을 초월한 대안 없는 대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햇볕 정책, 대북 포용 정책, 평화 번영 정책 등을 둘러싸고 남남 갈등을 지속하는 것은 냉전 시대의 남북 관계 패러다임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남 갈등의 중심에는 국가 정체성과 관련한 문제가 있다. 부정하고 극복해야 할 북한과 화해 협력, 공존 공영하는 데 따른 정체성 갈등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주권 국가의 경계를 넘어 생산과 소비 활동이 지구적 범위에서 이루어지는 글로벌 시대, 유럽연합에서처럼 국가 간 통합이 이루어지는 지역 통합의 시대에 맞게, 그리고 남북 공존 공영의 시대에 맞게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새롭게 확립하고 이를 국가 이미지 제고에 활용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반공 국가’라는 냉전 시대 국가 이미지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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