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점짜리 정부, ‘체중 감량’이 우선이다
  • 이달곤 (한국행정학회장·서울대) ()
  • 승인 2008.01.02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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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실·대통령실 역할 중복되고 조정 기능 과부하…원칙 없이 비대해진 정부, 구조 간소화하고 공공 부문 민영화 등 추진해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를 인위적으로 개혁시키려고 했지만, 긴 역사의 시간 축에서 보면 정부도 진화하는 것이다. 20세기 초에는 주로 국방·외교·치안 등의 역할에 한정된 경찰국가를 지향하였으나, 전쟁으로 정부의 역할은 커지게 되었다. 전시 물자를 공급해야 했고, 전후에는 제대 군인을 보호해야 했다. 이후 대공황 시기를 맞이하게 되어 국민의 생계를 맡게 되면서 복지 정부, 큰 정부가 탄생한 것이다.
독재 정부에 시민이 반발하면서 시민사회가 발전했고, 산업이 발달하면서 정부와 시장은 불편한 관계가 되었다. 그래서 항상 시민사회, 정부, 그리고 시장 간에는 긴장과 상생의 문제가 놓여 있다. 정부를 줄이는 데도 한계가 있으므로 부정과 비효율을 척결하는 일이 선진국의 과제이다.
한국의 정부도 나름의 특이성이 있지만 서구 국가와 유사한 경험을 하면서 발전하고 있다. 비민주적 행정으로 비판받기도 했고, 국가 주도의 경제 체제를 유지하다가 이후 시장주의로 전환되는 과정을 거쳤다. 한때는 정부의 경쟁력이 국가적 화두가 되기도 했다. 국민의 정부에서는 경제 위기를 맞아 이른바 신공공 관리라는 효율성 위주의 개혁을 시도한 바 있고, 참여정부에서는 시민사회의 힘을 활용하기 위해서 다양한 참여를 진작해 확장적 정부를 운용한 바 있다. 현재 대통령 위원회가 22개, 행정 부처는 2원 18부 4처 18청 13위원회이다. 청와대나 총리실의 내부 직급을 포함할 경우 총리급 3, 부총리 3, 장관급 36, 차관급 45개이고, 각종 위원회, 검찰, 법원, 국회, 군 등 장·차관급 자리를 포함할 경우 그 수는 엄청나다.
현재 정부가 안고 있는 문제는 무엇이며, 앞으로 이명박 당선자가 추진하고자 하는 국가적 목표를 실현하는 데는 어떤 정부가 필요할 것인가? 현재 정부가 구조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는 총리실과 대통령실의 역할이 중복되어 있고 조정 기능에 과부하가 걸려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 주변에 너무 많은 국정과제 위원회가 포진하고 있어 부처의 정책 기능을 크게 제약하고 있다. 아울러 행정중심국가의 전통으로 많은 사업을 정부가 주도해 추진하고 민간을 독려하던 관행 때문에 부처가 너무 세분화되고, 정부가 지원하는 일이 많은데 그 효과가 의심스럽고 민간에 대한 간섭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다.
부처가 세분화될수록 총리실과 대통령실의 조정 기능에는 부하가 걸린다. 총리실이나 대통령실이 부처의 업무를 소상하게 알아야 조정이 가능하므로 자연히 부처 일에 개입하게 되어 장관의 자율성과 권한을 제약받기 일쑤이다. 따라서 넓어진 업무영역을 장관이 책임지고 내부 조정을 통해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국정의 탄력성을 높이자는 취지에서 대부처주의가 거론되고 있다. 그리고 신분상 공무원으로 분류되는 공무원의 수는 경쟁국에 비하면 작은 규모이지만, 여기에 각종 공기업, 공사, 공단, 협의회 등 준공공 단체를 포함한 실질적인 공공 부문의 규모는 작은 정부로 규정하기 어렵다. 아울러 60만명에 달하는 군을 부담하고 있는 국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는 큰 정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 각종 부담금의 증가로 인해 국민의 조세를 포함한 실질부담률도 상당히 높아졌다. 여기에 공무원이나 대규모 공기업 직원들이 행사하는 권한은 양적으로 측정할 수는 없지만 대단히 큰 규모라는 것을 언급할 필요도 없다.
과거에는 공직자와 공공 부문 종사자들의 전문성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순환보직이라는 제도로 인해 한 업무를 오랫 동안 숙달하지 못하고 있다. 각급 단체의 기관장이나 여타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은 대단히 복잡해졌고 따라서 조정의 기술 또한 고도화되어야 한다. 정부의 전문성을 높이고 공직자들의 문제 해결 능력을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

 

“공직자·공공 부문 종사자들, 전문성 떨어지고 지위만 올라”

정부에 대해 국민이 가지는 신뢰는 떨어지고 있다. 각급 정부와 공무원, 경찰 등에 대한 믿음의 정도가 10점 만점에 4점도 채 되지 않는다. 고위직 비리는 많이 감소했지만 아직도 끊이지 않고 있으며, 이로 인해 원활한 국정 운영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아울러 계속 민간 경제에 개입하고, 사교육 문제 해결을 포기한 채 학교 일에 간섭하고, 부동산 폭등을 잡지 못하는 등 그 무능과 실책의 목록이 짧지 않다. 국민은 실망하고 있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사회적 동력을 만들어내는 것이 어려워진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 출범하면서 구조 개편 없이 혁신을 통한 정부 쇄신을 천명했다. 3개 한시적 위원회를 설치하고, 소방방재청, 방위산업청, 행정도시건설청을 신설했으며, 청소년보호위원회를 청년위원회로 또 여성부를 여성가족부로 확대했다. 김대중 정부 말을 기준으로 할 때 2청 3위원회가 늘어났다. 또 기관의 지위가 격상되고 정무직이 늘어났다. 대통령 비서실에는 정책실장, 안보실장 등 장관급이 2개나 늘어났고, 법제처, 국가보훈처도 장관급으로 격상되었다. 또한 국민고충처리위원회의 위원장도 상근 장관급의 지위를 갖는 등 총 8명의 장관급 자리가 늘었고, 4개 복수 차관제와 4개 직급의 상향 조정, 3개 한시 위원회의 상임위원 6인 등 차관급이 28개 순증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공무원 수는 9만여 명이 증가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원칙 없이 비대해지고 있는 정부를 통제하고 시민과 시장의 공간을 확대해야 할 시기이다. 먼저 정부의 구조를 간소하게 만들고, 재정을 엄정하게 운용하며, 공공 부문의 민영화를 추진하는 것이다. 전략적이고 거시적 기능은 대통령실에서 맡고, 조정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총리실의 기능을 분명히 하면서, 두 기관의 업무를 분업해 탄력적으로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미시 기능을 수행할 정부 부처의 수를 줄여나가야 할 것이다. 어떤 부처가 폐지되고 통합되는지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다. 하지만 기능 분석을 통해 유사 기능을 묶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고, 더 이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업무를 없앨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각종 기금도 필요성을 재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당선자는 공사 계약이나 회의비와 같이 공공 부문 내부에 남아 있는 낭비적 요인을 줄여서 긴요한 부문에 사용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공직자들이 비용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계수에 밝은 행정을 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실증적 업적에 입각한 행정을 할 수 있고, 공직자들이 문제 해결 능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공기업의 민영화는 대상을 적절하게 선정하고 환경을 잘 만들어가야 한다. 공기업은 존재 자체가 공공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므로, 운영의 효율화는 중요하다. 그러나 민영화는 경제력 집중을 가져오고, 요금을 상승시킬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폐해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장치들도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민영화된 기업의 지배 구조를 투명하게 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되어야 한다. 기존의 정책이나 비대해진 지원 기관의 업무실적을 과학적으로 평가해 실적이 낮은 사업은 통·폐합할 수 있을 것이다.
중앙 정부가 지방자치단체와 원활한 국정 파트너십을 구축하기 위한 장치도 필요하다. 대통령과 시·도지사 간의 국정 협의를 통해 지방 정부의 국정 참여 공간을 넓히고, 국가적 문제에 적극 협력하게 함으로써 공공 자금의 57%를 사용하고 있는 지방 정부의 에너지를 활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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