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재난 감지기’ 왜 꺼져 있었나
  • 김재태 편집부국장 jaitai@sisapress ()
  • 승인 2008.02.25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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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그 순간까지 지켜주지 못해서. 살아 있을 때 우리에게 많은 힘을 주었습니다.’ ‘지방에 살아서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너무 허탈하다.’ ‘이 참사를 한 개인이나 단체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이 참사는 역사와 조상을 공경할 줄 모르는 한민족에 대한 마지막 경고다.’ ‘항상 이 자리에 있어 가슴에 담지 못했는데 숯이 되어서야 이곳을 찾아 가슴에 담는다. 누구를 탓하랴, 내 잘못인데….’
숭례문을 떠나보낸 지 여러 날이 지났지만 그것을 비통해하는 사람들의 한탄과 오열은 그칠 줄 모른다. 흉측한 모습을 감추기 위해 서둘러 설치한 가림막에는 오늘도 애절한 마음들이 빼곡히 붙고 있다. 불타 없어진 숭례문 앞에서, 혹은 경건하게 혹은 눈시울을 붉히며 조화를 바치거나 한숨 짓는 행렬은 마치 잃어버린 역사의 성지를 찾아 먼길을 달려온 순례자의 모습과 닮았다. 휴일에도 주변 도로에는 차들이 붐볐고 인파는 넘쳤다.
숭례문의 붕괴는 단순히 조선 이후 6백년을 품어안아온 한국사의 랜드마크 하나가 사라진 것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들 가운데 일상적으로 통용되어왔던, 그래서 무너질 것을 단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던 거대한 상식 또는 신뢰의 소멸이기도 하다.
숭례문이 소실된 후 언론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숭례문에 대한 애정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그야말로 ‘사후약방문’의 범람이다. 그러나 애정 표현과 책임 소재에 대한 추궁, 상호 비방은 들끓었으되 정작 있어야 할 반성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모든 언론이 입 모아 지적한 것처럼 숭례문 화재 사건은 문화재 관리의 총체적 부실이 빚어낸 예고된 참화임이 분명하다.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며 관련된 취재를 여러 차례해온 <시사저널> 소종섭 팀장이 2005년 우리나라 국보·보물이 처한 상황을 커버스토리에 담기 위해 여러 현장을 찾았을 때 목도한 현실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명색이 국보 4호인 고달사지 부도가 아무런 보호막 없이 산중에 홀로 내팽개쳐져 있던 모습을 보고는 눈앞이 아찔했었다는 것이 그의 전언이다.
언론이 지니는 여러 기능 가운데 맨 첫손에 꼽히는 것이 ‘감시’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럼에도 방화의 무방비 지대로 내몰린 숭례문에 대해 언론이 그동안 아무런 위험 신호도 보내지 않았던 것은 씻을 수 없는 실책이며, 그 자책에서 <시사저널>도 자유롭지는 못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언론이라는 ‘재난 감지기’가 작동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검게 그을린 가슴으로 또 한 번 뼈아프게 배웠다. 화재 참사가 일어난 지 10여 일이 지나, 늘 그래왔던 것처럼 숭례문이 다시 언론에서 서서히 지워져가는 사이 국가 1급시설인 정부종합청사에서까지 불길이 치솟는 장면을 지켜보는 것은 그래서 더욱 씁쓸하다. 나라의 중심부가 연이어 화마에 농락당하고 있는 꼴이다.
이제 막 출범한 이명박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많지만 당장 필요한 것은 저 어이없는 참화 앞에서 망연자실해 있는 국민들의 허탈감과 절망을 닦아낼 희망의 천을 준비하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당연하게도 깊은 반성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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