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물흐물 흥청망청 대책없는 공기업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 승인 2008.03.17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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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기업의 방만한 경영이나 도덕적 해이가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이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라도 대대적인 조사가 불가피하다.”
지난 3월10일 공기업 감사를 위한 예비조사에 착수한 감사원 박종욱 부감사관의 말이다.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은 논란거리가 되고 있지만 마땅히 손을 대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곤 했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어김없이 공기업 개혁이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감사는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국전력 등 31개 공기업의 예비 감사에 투입하는 인원만 2백40여 명에 이른다. 이 정도면 감사원 전체 가동 인력의 3분의 1에 달한다는 것이 박부감사관의 설명이다. 그만큼 이번에는 철저한 감사로 무언가 가시적인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는 얘기이다.
그는 “감사원은 그동안 기획 감사를 통해 공기업 혁신을 유도해왔다. 그러나 외유성 해외 연수나 과도한 복리 후생 제도 등의 폐해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새 정부 출범에 맞춰 이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게 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감사원은 그동안 건설·금융·에너지 등 분야별로 나누어 감사를 벌여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모든 공기업을 대상에 올려놓았다. 감사 내용도 각종 불법 및 부당행위뿐 아니라 비효율적인 경영까지 포함하고 있어 감사 결과에 따라 대대적인 수술이 예고되고 있다.


사상 유례 없는 규모의 감사 진행…민영화 신호탄 올랐나

일각에서는 감사원의 이같은 행보가 공기업 민영화를 위한 정부의 사전 포석이 아니냐는 시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번 감사 대상에는 지난해 감사를 받은 한국전력이나 산업안전공단, 도시철도공사 등이 포함되어 있다. 감사에서 제외된 곳은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인 코레일과 지난 달 감사 결과가 발표된 강원랜드가 전부이다. 정부 안팎에서는 이번 감사를 계기로 공기업 민영화가 본격적으로 착수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설득력 있게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감사원은 지난해에 감사를 받은 기업은 배제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이번 감사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공기업 민영화를 위한 명분 쌓기로 보인다”라고 귀띔했다.
이와 관련해 감사원측은 “정부의 공기업 개혁 의지가 그 정도로 강하다고 이해해달라”라고 주문했다. 박종욱 부감사관은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정부 부처는 통·폐합을 감수하는 등 강도 높은 구조 조정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공기업은 지금까지의 모습을 전혀 바꾸지 않고 있다. 공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는 예정된 수순에 따른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감사원이 최근 공개한 ‘지방 공기업 경영 개선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은 단순한 우려 수준 이상이었다. 각종 인사 청탁이나 내부 비리가 끊이지 않는 등 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광주광역시도시공사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 회사는 최근 시영 아파트 당첨 결과를 조작했다가 감사원에 덜미를 잡혔다. 입주 계약을 철회한 사람을 별도로 관리하면서 이들 자리에 자신의 친척이나 로비를 받은 사람을 슬쩍 끼워넣은 것이다. 이로 인해 이 회사 김 아무개 팀장(행정 1급), 김 아무개 소장(행정4급) 등 직원 5명이 정직 등의 처분을 받았다.
이들은 심지어 아파트 당첨권을 미끼로 민원인의 입까지 막은 것으로 나타났다. 임대 보증금 인상에 반대하는 민원을 제기하는 임차인 대표나 관리소장에게 민원을 철회하는 조건으로 아파트에 당첨되도록 손을 쓴 것이다.
경기지방공사의 경우 각종 입찰에 직원들이 공공연하게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003년 5월 파주 LCD지방산업단지 용역 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자격도 안 되는 업체를 최종 낙찰자로 선정한 것이다. 물론 업체 선정에 참여한 심사위원들도 직원들의 불법 행각을 눈감아준 것으로 나타났다.


 
공사 직원이 아파트 당첨도 조작하는 등 도덕적 해이도 심각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 서울특별시농수산물공사, 서울특별시시설관리공단, 대구광역시지하철공사, 인천광역시지하철공사 등은 기준에도 없는 특별 휴가 제도를 만들어 연·월차 수당을 과다하게 지급해오다 적발되었다. 서울 강동구도시관리공단, 용인시시설관리공단 등은 직원 공채 과정에서 가산점을 틀리게 책정해 합격자가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는 기획예산처(현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10월 국회에 제출한 ‘2006년 공공 기관 평가 보고서’에도 상세하게 언급되어 있다. 주택공사는 자회사인 ㈜한양에 평균 낙찰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공사를 낙찰받게 해주어 벌금을 받은 것으로 국세청 세무조사 결과 나타났다. 한국전력은 하청 업체들과의 거래에서 지위 남용에 따른 불공정행위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지적을 받았다.
이밖에도 한국방송광고공사는 창립 기념으로 전 직원에게 2백만원 상당의 노트북을 지급했고, 석탄공사는 장기 결근자에게도 인건비를 지급해 지적을 받았다. 광업진흥공사 역시 정부 지침을 어기고 7%나 임금을 인상해 시정 조치를 받았다.
이렇듯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이나 도덕적 해이는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심각해지고 있다. 감사원이 최근 대규모 인원을 편성해 금융과 건설 등의 공기업에 대해 동시 다발적인 감사를 벌인 것 도 이런 점 때문이다. 박종욱 부감사관은 “이번 감사를 통해 설립 목적과 부합되지 않은 사업 및 조직 운영, 부적격 직원 채용, 부당 구매 계약 체결 등의 경영 사례가 드러날 경우 관련자를 문책하는 등 엄중하게 조치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그동안 공기업 경영 효율화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감사원은 지난 2004년부터 공기업 등 공공 기관 경영 혁신을 위한 조치를 지속적으로 펼쳐왔다. 그러나 공기업의 병폐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난 5년 사이 공공 기관의 수나 인력, 부채는 더욱 늘어났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11월부터 ‘공공 기관 경영 개선 신고센터’를 운영 중이다. 자체 감사와 별도로 시민들이나 내부 고발자의 신고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접수된 신고는 단 1건에 불과했다.


 
“내부 혁신보다 시장 중심으로 지배 구조 바꿔야”

전문가들은 공기업들이 안고 있는 근본적 문제의 해결은 조속한 민영화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때부터 공기업 민영화 문제를 어떤 후보보다 강하게 주문해왔다. 때문에 공기업 민영화에 대한 기대감도 역대 어느 정부 때보다 높은 것이 사실이다.
장대홍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교수는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진 우리나라 공기업을 지금과 같은 취약한 지배 구조 아래 방치할 경우 상당한 부작용이 예상된다. 민영화가 무엇보다 앞서 시행되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 그는 “내부 혁신을 통한 개혁보다 시장 중심으로 지배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라고 조언했다. 장교수는 “민영화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철도, 전력, 가스 등의 사업 부문은 즉시 민영화를 추진해야 한다. 우편이나 방송과 같은 사업 부문은 민영화 혜택이 비용을 상회하는 만큼 부분적으로라도 민영화를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장병완 전 기획예산처장관은 “과거에는 정부의 경제 및 산업 정책의 필요성에 따라 민영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공공 부문 효율화와 시장 기능 정상화 차원의 민영화가 논의되는 것이 특징이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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