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짓’이 예쁜 춤을 압도한다
  • 심정민 (무용평론가) ()
  • 승인 2008.05.20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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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파격’으로 무장한 국제현대무용제, 5월27일 개막 해외 초청 공연물, 춤의 경계를 급진적으로 해체해 주목

ⓒ모다페 제공
봄이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는 5, 6월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춤 축제가 있다. 모다페(Modafe)로 더 잘 알려진 국제현대무용제는 현재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와 함께 우리 무용계를 대표하는 국제 페스티벌로 자리매김했다. 1982년에 출범한 모다페는 25년 동안 발전·정체·쇄신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해외 100여 단체와 국내 3백여 단체의 작품을 소개하는 저력을 보여왔다. 특히 21세기 들어서는 세계 춤 동향을 더욱 예민하게 끌어당기고 있다. ‘움직임의 파괴, 표현의 해방’이라는 표어를 내세운 모다페 2008(예술감독 한선숙)은 5월27일부터 6월7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등지에서 펼쳐진다.

모다페 2008의 ‘해외 초청 공연’에서 보기 좋게 예쁜 춤은 없다. 거기에 반기를 드는 도발과 파격의 무대만이 있을 뿐이다. 최근의 무용가들이 춤의 고정관념을 어떻게 바꿔나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유명한 거장들의 대작보다는 상대적으로 소소해 보일지 모르지만, 전통적인 춤의 경계를 급진적으로 해체해가는 무용가들의 작품은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움직임의 파괴, 표현의 해방’ 표어 그대로

2006년 <눈물의 역사>로 우리 공연예술계에 큰 충격과 파장을 불러일으킨 얀 파브르(Jan Fabre)가 다시 한 번 한국을 찾는다. <파브르 곤충기>로 유명한 곤충학자 앙리 파브르의 증손자이기도 한 얀 파브르는 벨기에를 중심으로 활약하는 미술가, 극작가, 무대감독, 무대 디자이너이자 안무가다. 한마디로 복합 매체 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선보이는 <여자가 남자의 주역이었을 때>에서 파브르는 모계 사회로 회귀하기 위한 제의적 준비 과정을 의도한다. 그 과정은 여성 무용수의 독무로 실현되고 있는데 바로 국제적으로 큰 이슈를 일으킨 한국인 무용수 허성임에 의해서다.

급격한 반전은 작품이 3분의 2 정도 진행되었을 때 일어난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허성임이 올리브 오일로 홍건히 젖은 바닥에 온몸을 내던진다. 온몸을 사용해 구르고 미끄러지는 모습은 파격의 절정이다. 허성임은 자칫 안무가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는, 전라의 행위를 자신감 넘치는 도발로 완성해간다. 그리하여 그녀는 개념과 광기가 상존하는 21세기의 제의를 실현시킨다. 마지막 장면은 극단의 경계선마저 벗어난 어딘가로 향해간다. 결국, 그녀는 제의의 여신으로 세워졌는가? 그에 대한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바르셀로나 48시간>의 데이빗 잠브라노(David Zambrano)는 베네수엘라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주로 활동하다가 유럽과 전세계로 활동 영역을 넓혀가는 국제화된 무용가다. 그는 이 작품에서 무용과 음악, 영화(사진)의 협력 작업을 꾀한다. 클럽에서 들을 수 있는 재지(jazzy)한 라이브 연주 속에서, 두 명의 여행자를 따라다니며 찍은 단편영화(사진)가 상연되고, 두 명의 무용가는 여행 중에 받은 인상을 현장성 있는 춤으로 그려낸다. 잠브라노는 즉흥의 예술적 가치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서인지 이 작품의 춤에서도 즉흥적 요소를 많이 가미하고 있다. 진지한 의미를 갖지 않고 정형화되지 않은 듯한 움직임은 시간이 갈수록 빠져들게 하는 독특한 매력을 지닌다. 마치 예술가들이 펼치는 여행 같은 분위기에 동승하는 인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안은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알려진 무용가 중 하나다. 빡빡 민 머리와 적나라하게 드러낸 가슴, 묵직한 질감의 배, 아찔하게 높은 하이힐, 야광 핑크색 가발에 이르기까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녀의 감각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유명하다. 항상 찬사와 질타를 동시에 몰고 다니는 무용가 안은미. 그녀는 우리 춤 영역의 최극단에서 활약하며 누구와도 다른, 그러므로 차별화된 예술적 감각을 분출해왔다.

모다페의 ‘국제공동작업’에서 안은미는 스위스 링가무용단에 있는 두 무용가와 <Mucus & Angels>라는 작품을 공연한다. 3명의 국제 공동 작업이지만 무대 위에서는 안은미와 카타지나 그다니에치의 2인무가 펼쳐진다. 동·서양, 다른 국적의 무용수들이 각자의 예술 관념과 정서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습은 흥미롭다. 타인을 압도하는 발상과 기(氣)를 갖고 있는 안은미가 외국무용가를 어떻게 오염(?)시키는지 지켜보는 묘미가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1시간 내내 안은미의 ‘미친 짓’을 많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녀의 정식 안무작과는 또 다른 흥취를 느끼게 해준다.

ⓒ모다페 제공

국내 공연물, 젊은 신진 무용가들 활약 기대

한편, 모다페 2008의 국내 공연은 연륜 있는 중견 무용가, 중견을 향해가는 신진 무용가, 그리고 갓 출발한 신진 무용가들을 어우르고 있는데, 전체적인 비율에서 젊은 무용가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개막 공연’에서는 중견 무용가 황미숙과 신진 무용가 이용우의 춤이 맞닥뜨려진다. 하지만 그들은 중견과 신진 사이의 대립이 아닌 조화의 한마당을 예고한다. ‘국내 초청 공연’에서는 이윤경, 밝넝쿨, 김형남, 최재희, 남도욱, 김남진, 방혜선, 홍동표와 같이 풍부한 작품 경력을 자랑하는 무용가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스파크 플레이스(spark place)’에서는 아직 앳된 무용가들의 톡톡 튀는 개성이 표출될 예정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 세 번의 오디션을 통과한 5명의 신진 무용가들이 소개되는 만큼 어떤 빛나는 재능을 보여줄지 주목된다.
최근 국내 무용계에서 젊은 무용가들을 위한 장이 급속히 팽창하고 있다. 다소간 침체를 맞고 있는 무용계가 쇄신을 위해 미래의 주역을 발굴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동시에 세계적인 춤 동향에 합류하기 위해 적응력 높은 젊은 무용가를 내세우는 것이리라. 약간은 과잉 조짐까지 보이는 이러한 추세에서 모다페가 어떤 차별성과 나름의 성격을 갖춰나가는지는 좀더 지켜봐야할 것 같다.

M.O.S.(Modafe Off Stage)는 말 그대로 극장 무대에서 벗어나 일반 대중에게로 뛰어든 춤을 말한다. 온(on)이 모다페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면, 오프(off)는 그 부대 행사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5월31일의 야외 공연과 6월1일/4일의 스튜디오 공연으로 이루어진 M.O.S.는 가벼운 마음으로 젊은 춤꾼들을 바로 코앞에서 볼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올해는 신진 무용가들 사이에서 M.O.S.에 출연하고자 하는 열의가 뜨거웠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실제로 꽤 알려진 신진 무용가도 참가한다. 그들 중에서 미래 춤의 거장을 미리 점찍어보는 센스도 잊지말아야 하겠다.

부담 없이 무료로 즐길 수 있는 모다페 2008 행사도 다채롭다. 축제 개막을 하루 앞둔 5월26일에는 <영화감독 장진이 본 현대무용의 비전>을 통해 올해 모다페를 미리 보는 자리를 마련한다. 화려한 축제의 전야를 밝힌다는 기분으로 장진 감독의 눈을 통해 본 모다페를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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