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0GP의 진실, 더 이상 은폐하지 마라”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8.06.03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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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하 연천GP총기사고유족대책위원장 / “국방부 떳떳하다면 유족들 피할 이유 없어”

조두하 위원장이 조작 증거들을 들어 보이며 설명하고 있다. 

고조정웅 상병의 아버지 조두하씨와 고 이태련 상병의 아버지 이찬호씨가 지난 5월28일 오후 3시쯤 <시사저널> 편집국을 찾아왔다. 항상 단짝처럼 다니던 고 전영철 상병의 아버지 전제용씨가 빠진 것이 의아했다. 개인 사정으로 오지 못했다고 했다. 2005년 6월19일 경기도 연천군 28사단 530GP에서 사건이 터지기까지 이들은 일면식도 없었다. 자식들이 사망한 후 전우 아닌 전우가 되어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누고 있다.

사건이 일어난 지 2년이 훌쩍 넘었지만 진실(?)을 밝히기 위한 유족들의 싸움은 현재 진행형이다. 범인으로 지목된 김동민 일병은 지난 5월7일 고등군사법원에서 우여곡절 끝에 사형이 확정되었다. 유족들은 여전히 김일병은 범인이 아니고, 사건은 군에 의해 조작되었다고 확신하고 있다. 유족 대표인 조두하 위원장을 통해 유족들의 심정을 들어보았다.

530GP 사건이 조작되었다고 확신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이 사건은 당시 정치적 배경에 의해 조작된 권력형 사건이다. 증거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북한군과의 교전, 차단 작전 실시, 내무반 조작, 범인 조작 등의 증거가 있다. 차단 작전에 나갔다는 생존 사병의 진술도 확보했다. 생존 소대원들 중에는 전쟁이 일어났다고 생각한 사병도 있었다. 후송만 제대로 했더라도 살릴 수 있는 병사가 있었다. 그런데도 조작하기 위해 부상한 사병을 방치하고 죽게 만든 것은 생명의 존엄성을 망각한 만행이다.


생존 사병이나 지휘관들의 입을 일일이 막기는 어려운 것 아닌가?
군대라는 특수한 조직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군 의문사진상조사위를 통해서도 조작 사건이 밝혀지지 않았는가. 당시 GP는 비무장지대 안에 있었다. 소대원 36명과 근무자들 몇 명의 입을 막으면 조작이 가능하다. 생존 소대원들은 한결같이 군 수사기관의 강압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진술 시나리오를 미리 짜놓고 소대원들에게 진술을 유도하고 강요했다. 생존 사병들에게는 특혜를 주고 입을 막았다.


어떤 특혜를 주었다는 것인가?
2002년 서해교전 때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당했다. 실제 교전이 일어난 사건이었는데도 당시 부상병들은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군의 발표대로라면 530GP 사건은 내무반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그런데도 국방부는 생존 사병들을 모두 조기 전역시키고 국가유공자로 예우했다. 심지어 사건을 유발한 질책사병들까지 동일한 혜택을 주었다. 우리는 입막음용 특혜라고 보고 있다.


당시 지휘관들은 어떤 징계를 받았는가?
530GP 사건과 관련해서 실형을 받은 사병이나 장교는 없다. 지휘관들은 오히려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동안 군에서 일어난 총기사고와 비교해보면 전혀 딴판이다.


국방부에 진실을 규명해달라고 여러 번 요구한 것으로 아는데.
그동안 수차례 민원을 제기하고 진정서를 보냈다. 김동민 일병을 석방하라는 탄원서도 냈다. 그때마다 국방부는 재판 중이라는 이유를 들어 답변을 회피했다. 청와대나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내면 다시 국방부로 이첩시키는 방법으로 제자리를 맴돌았다.
한 언론사 기자가 국방부, 유족, 기자, 관련 전문가 등이 참석한 가운데 공청회를 열자고 제안했는데도 국방부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회피했다. 국방부가 떳떳하다면 유족들을 피할 이유가 없다.


일부에서는 유족들이 보상금을 더 타내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금지옥엽처럼 키운 자식들이 죽었다. 어떻게 자식들의 죽음을 가지고 부모들이 욕심을 낼 수 있겠는가. 우리가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생업을 포기하면서까지 매달리겠는가. 우리의 목적은 크게는 두 가지다. 하나는 자식들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밝혀 고인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군대에서 일어난 잘못된 사실을 알려서 재발 방지를 하는 것이다. 제2, 제3의 우리 자식들을 만들지 않고, 또 우리 같은 부모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찬호씨(오른쪽)는 현 정부가 진상 규명에 적극 나서줄 것을 촉구했다.

유족들의 주장이 사실이 아닐 경우를 생각해보았는가?
만약 우리가 주장한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면 모든 책임을 감수하겠다. 유족들이  만든 카페에 들어오면 조작 증거들을 볼 수 있다.
(cafe.daum.net/050619sadgun)


김동민 일병에 대한 사형 확정 판결이 내려졌다. 재판 과정은?
공개 재판인데도 보통군사재판에서는 재판장이 유족들을 퇴장시키고 증인 진술을 하도록 했다. 고등군사재판에서 재판장은 “유가족들이 오히려 김동민의 변호사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재판은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김동민도 재판장한테 “(자신의 범행이) 말뿐이지 증거가 없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했다. 김동민은 상고를 포기해 ‘사형 확정’을 받았다. 만약 김동민이 범인이라면 조속히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실 규명을 위한 자체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야 한다. 진실을 밝히든지 사형을 시키든지 양자 택일을 하라는 말이다.


김일병과 그 부모들의 심정이 궁금한데.
김동민이 범인이라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 오로지 김동민의 자백만 있을 뿐이다. 김동민이나 그 부모는 자신의 생명이 달린 문제인데도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김일병의 부모는 수사기록을 볼 생각도 안 하고 유족들을 만나는 것도 기피했다. “당신 아들은 범인이 아니다”라고 했는데도 남의 자식 생각하듯 했다. 같은 부모로서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생존 사병이나 군 지휘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진실이 밝혀진다. 또 밝혀질 것이다. 생존 소대원들은 유족들을 만나면 처음에는 정상적으로 말을 하다가 구체적인 증거들을 들이대면 몸을 덜덜덜 떨기 시작한다. 정 아무개 상병은 “차단 작전의 증거는 못 찾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상당수 생존 사병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런 사병들은 용서할 수 있다. 반면, 유족들의 활동을 끝까지 방해하거나 거짓으로 일관하면 용서할 수 없다. 생존 사병들의 부모들도 죽은 사병들의 일을 남의 일인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 실망스럽다. 군 내부에도 양심적인 지휘관이나 장교들이 많다. 당시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 등 지휘관들 중에도 이런 분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군의 명예를 위해서도 진실을 밝히는데 적극 협조해주기를 부탁드린다.


사건이 일어난 후 유족들의 생활이 어떻게 변했는가?
삶이 바뀌고 인생이 바뀌었다. 단순히 자식을 잃은 것이 아니라 가정의 꿈, 가족 간의 대화, 가정 생활, 직장 생활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과거의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기는 힘들어졌다. 비록 자식들은 죽었지만 영혼이라도 편히 쉴 수 있도록 반드시 진실을 규명할 것이다. 자식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 부모가 줄 수 있는 마지막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현 정부가 진실규명을 위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보는가?
530GP 사건은 노무현 정부 때 일어난 일이다. 우리 유족은 GP사건이 정권 차원에서 조작되었다고 확신한다. 현 정부는 이전의 정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리는 이 사건을 객관적으로 재조사할 수 있는 특별검사제를 요구한다.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위원회를 발족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자식이 또 한 명 있다면 군대에 보내겠는가?
지금 같아서는 보낼 수 없다. 국방의 의무를 회피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국민에 대한 도리를 못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죽은 자식들의 사망 의혹이 명확하게 밝혀질 때까지 군을 신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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