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봉하마을 통신' 청와대 "신경쓰이네"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08.07.01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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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이 만드는 토론 사이트 '민주주의 2.0'에 긴장 친노 세력 참여하는 노무현 기념사업재단 설립도 예의주시

ⓒ연합뉴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4월 중순 “나는 이미 당선된 대통령으로 이제 더 이상 내게 정치적 경쟁자는 없다”라고 언급했다. 이대통령의 정적(政敵)으로 자주 거론되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의식해서 한 발언이었다. 그러나 최근 ‘촛불 정국’으로 위기에 빠진 이대통령의 경쟁자로 거론되는 인물은 따로 있다.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이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은 ‘3김 시대’ 이후 이 땅의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위치하고 있다. 두 사람이 갖는 정치적 함수 관계는 아이러니하다. 이대통령을 만든 것이 노 전 대통령이고, 또 노 전 대통령을 다시 띄운 것이 이대통령이라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지난 대선에서 이대통령에 대한 압도적 지지로 이어졌고, 현재의 이명박 정부가 보여주는 100여 일간의 혼돈이 자칫 잊혀질 뻔했던 노 전 대통령의 가치를 다시 되살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급기야 지난 6월20일 한 케이블 방송의 심야 토론에서는 ‘노무현 vs 이명박, 국민이 원하는 대통령은?’이라는 주제로 전직 국회의원과 언론인, 교수들이 나와서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7월6일 치러질 통합민주당의 전당대회에 ‘친노’ 세력의 대표주자 격인 안희정 전 참여정부평가포럼 상임집행위원장이 최고위원 경선에 뛰어들면서 노 전 대통령의 행보도 더욱 주목받게 되었다. 현재 통합민주당의 뚜렷한 당내 리더십이 없는 상황에서 이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의 비교 및 자질 공방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작 두 사람은 이런 분위기에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직설 화법을 사용하는 편이지만 양측은 서로를 직접 언급하지도 않는다. 특히 이대통령측은 현직 대통령으로서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쇠고기 협상 파동과 관련해서 “참여정부 때 처리했더라면 이런 말썽이 나지 않았다”라며 애둘러 불편한 심기를 내비친 적이 있다. 노 전 대통령 역시 이따금씩 지인들에게 현실 정치 참여성 발언을 하기는 하지만, 직접적으로 이대통령을 겨냥해서 한 발언은 없다.

이런 가운데, <시사저널>은 최근 노 전 대통령을 만나고 온 한 측근 인사를 통해 상당히 주목할 만한 얘기를 전해들었다. 노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동문인 이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이 얼마 전 이대통령에게 정책적인 조언을 담은 글을 작성한 것으로 안다”라는 것이다. 그는 “지난 6월12일 당시 3시쯤 봉하마을에 도착했는데, 노 전 대통령이 지금 글을 써야 할 것이 있으니 미안하지만 6시까지만 좀 기다려 달라고 양해를 구하더라. 그래서 세 시간을 기다린 후에 노 전 대통령을 만났다”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뭘 썼느냐”는 질문에 노 전 대통령이 “지금의 화물연대 파업 사태에 대해서 이명박 정부에게 조언을 좀 하고자 한다”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이 이대통령에게 썼다는 글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이 관계자는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경험상 화물연대 파업 사태 문제는 총리나 장관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해야 한다는 입장을 우리에게 말했다. 자신도 취임 직후 화물연대 파업을 맞은 경험이 있는데,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당시 쓴 글의 내용도 아마 그런 자신의 국정 경험을 담은 내용이 아닐까 생각된다”라고 덧붙였다.

노 전 대통령 측근 “이대통령에게 화물연대 파업 조언하는 글 썼다”

이 관계자의 전언대로라면 현재 청와대와 봉하마을 사이에 서로 의사 소통 구도가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형태일까. 위의 관계자는 “아마도 인터넷 메일이 아닐까 짐작된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양측은 일단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우선 기본적으로 현 정부와 지난 정부 간의 신뢰 관계가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소통 구도가 형성되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혹시라도 e메일의 성격으로 보내졌다면 그쪽에서 일방적으로 보낸 성격일 것이다”라고 밝혔다.

봉하마을측의 한 관계자 역시 “일단 e메일 발송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의 메일량이 워낙 많기 때문에 비서진들이 관리하는데, 노 전 대통령이 메일을 통해 보냈다면 우리가 모를 리가 없다”라고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는 “굳이 의견을 전달할 일이 있다면 전화로 할 수 있는데, e메일을 보낸다는 것도 모양새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그럼 두 분간에 전화 통화는 이루어지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거기에 대해서는 대답하기가 곤란하다”라고 즉답을 피했다.

양측 내부 관계자의 전언처럼 현재 청와대와 봉하마을 사이에는 여전히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촛불 시위의 가열로 위기에 놓인 청와대가 봉하마을을 너무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도 표출되고 있다. 시위 현장에서 또 인터넷에서 노 전 대통령과 이대통령을 단적으로 비교하는 글들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에서 봉하마을을 빗대어 ‘작은 청와대’라는 표현을 쓰는 데 대해서도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심기가 불편해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가 봉하마을의 최근 움직임에 대해 마뜩치 않아 하는 이유는 노 전 대통령이 현재 추진하고자 하는 ‘민주주의 2.0’에 있다. 인터넷상에 웹2.0 방식의 ‘민주주의 2.0’이라는 정치토론 사이트를 개설해 운영하는 작업을 진행하는 움직임이 그것이다. 안 전 위원장은 “노 전 대통령은 정치인으로서 국민과의 소통을 중시하고, 또 그 장소로 인터넷을 곧잘 활용하고자 한다. 이미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그랬다. 민주주의 2.0 역시 지난해부터 진작에 준비해왔던 것이다”라고 밝혔다. 소통의 단절이 이명박 정부의 최대 아킬레스건으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노 전 대통령이 온라인 공간을 통해서 국민과 소통하겠다고 나서는 모양새가 현 정부로서는 곱게 보일 리 만무하다.

“인터넷상의 가상 온라인 공화국 만들고 있다”

ⓒ연합뉴스
봉하마을측은 “순수한 의미의 토론의 장일 뿐, 현실 정치 개입은 아니다”라고 애써 강조하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 기자는 지난 3월께 노 전 대통령의 한 측근에게서 이 사이트와 관련해서 흥미로운 얘기를 전해들은 바 있다. 이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께서 요즘 인터넷에 아주 열심이다. 워낙 아이디어가 많은 분이기도 하지만,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홈페이지 만들고 거기서 게시판에 글 올리고 하는 정도가 아니라, 어떤 정책이나 사안별로 주제를 정해서 그 주제별로 책임자를 정하고, 그 속에서 아주 폭넓은 의견과 토론을 벌이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의미 있는 내용은 정책 대안으로 제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참여하는 네티즌들은 국민이 되고, 책임자는 장관이 되는, 소위 말해서 인터넷 상의 가상 온라인 공화국을 만드는 것이다”라고 귀띔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최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당시 언급한 것이 지금 얘기가 나오는 토론 사이트인 ‘민주주의 2.0’은 맞다. 하지만 온라인 공화국이니 하는 표현은 얘기를 전하는 과정에서 우리들끼리 굳이 비유를 하기 위해서 한 말이지, 적절한 표현은 아닌 것 같다”라고 다소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최근에는 여기에 덧붙여져서 ‘봉하 재단’을 만든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을 중심으로 추진 중인 ‘노무현 기념사업재단’의 또 다른 이름이다. 여기에 대해서도 봉하마을측은 “노 전 대통령이 귀향한 뒤 농촌과 환경 운동에 관련 활동 중심으로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정치적인 목적과는 거리가 멀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재단에 참여하는 인사들이 친노 세력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향후 정치 상황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서는 친노의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남쪽으로부터 들려오는 이런 일련의 움직임은 청와대와 여당으로서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입장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얼마 전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가 “청와대의 모든 자료를 (노 전 대통령측이) 전직 대통령 숙소로 가져간 것은 말이 안 된다”라며 강도 높게 비난한 것 또한 다분히 현재 봉하마을의 움직임을 견제하고자 하는 심리가 깔린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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