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돌 빼서 아프간 막는다
  • 조홍래 편집위원 ()
  • 승인 2008.07.22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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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의 대테러 전선에 일대 전환…이라크 주둔 병력, 아프가니스탄으로 계속 이동할 듯

▲ ⓒ뉴욕 타임즈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진행되어온 대테러 전쟁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전선이 이라크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라크 사태가 크게 호전되어 터널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성급한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오는 9월부터 이라크 주둔 병력을 추가로 빼내 아프가니스탄으로 이동시키는 전략을 검토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몇 달 전까지도 상상하지 못했던 매우 고무적인 서광이다. 2006년과 2007년까지도 캄캄했던 이라크 전황을 감안하면 이라크 철군은 일대 전환으로 평가된다고 뉴욕타임스는 분석했다.

전략 변경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첫째는 세력을 재규합한 탈레반의 공세 강화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추가 병력이 필요해졌고, 두 번째는 이라크 전황이 극적으로 유리해진 데 따른 것이다. 탈레반은 최근 아프가니스탄에서 연합군에 대한 공격을 부쩍 늘렸고, 이에 따라 연합군의 사상자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 5월과 6월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이라크에서보다 많은 미군과 연합군이 전사했으며, 이런 추세는 계속되고 있다. 현재 이라크에 주둔한 미군 15개 전투여단 중 최소한 1개 혹은 최대 3개 여단은 이라크에서 철수할 수 있을 것으로 미국 관리들은 보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아직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았으나 내년 1월20일 퇴임 전까지는 단안을 내릴 예정이다.

지난 2개월 동안 아프가니스탄에서 연합군 사상자 급증해

미국 국방부 관리들은 가급적 빨리 이라크 철군을 시작하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군의 작전 부담을 덜고 아울러 아프가니스탄과 여타 지역의 병력 수요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말리크 총리의 이라크 정부 역시 서면으로 된 철군 일정을 제시하라고 독촉하는 상황이다. 이라크 주둔 미군은 지난해 후반 부시의 증원 조치 이후 최대 17만명까지 늘어났다가 지금은 다소 줄었다. 전략가들은 궁극적으로 12만명 내지 13만명을 이라크에 남기는 것을 이상적인 대안으로 여기고 있다. 대선 열기 속에 거론되는 철군은 공화당의 존 매케인과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에게도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이라크 전선의 전황 변화로 혜택을 많이 보는 측은 매케인이 될 공산이 크다. 매케인은 그동안 부시의 이라크 전략을 지지한 반면 오바마는 이라크 전쟁 자체를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거의 무조건적으로 철군을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이라크로부터의 낭보는 매케인의 판단이 옳았다는 반증으로 작용하면서 이미 두 후보 간 지지율 격차까지 줄이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한때 15%까지 뒤졌던 매케인은 오바마를 3% 오차로 추격했다. 선두가 뒤바뀌리라는 전망도 나왔다.

이라크를 둘러싼 두 후보 간의 논쟁에 관계없이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라크의 치안 상태가 최근 현저히 나아졌다는 점이다. 이는 이라크 정부와 군 및 경찰의 자치 능력이 크게 향상된 결과이며, 추가 철군이 가능해진 것도 이 때문이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이라크의 폭력 소강 상태가 언제 깨질지 모른다는 신중론도 있지만 미군과 연합군에 대한 폭력과 공격은 2004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도 최근 “이라크 보안군이 강화되고 갈수록 강해짐에 따라 향후 미군의 미래를 점칠 수 있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치안 유지 책임이 이라크 정부로 상당히 순조롭게 이관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라크 주둔 미군사령관 데이비드 페트레우스 장군도 이라크 안보와 병력 수준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런 움직임은 만사가 순조롭게 진행된다는 낙관론을 낳고 있다. 다만 페트레우스는 국방부 관리들보다 신중한 편이다. 철군은 하되 소규모여야 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하는 한 고위 관리 역시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부시 대통령이 너무 성급하게 철군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철군을 서둘렀다가 안정되고 민주적인 이라크 정부 건설이라는 궁극 목표를 그르칠 수 있다는 것이다.그럼에도 이라크에서는 추가 철군이 가능하고, 아프가니스탄에는 병력이 더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워싱턴과 바그다드에서 확산되고 있다. 철군하는 병력 규모만 미결로 남아 있다.

국방부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에는 현재 3만2천명의 미군과 연합군이 주둔하고 있다. 현지 사령관들은 1만명 정도의 추가 파병을 바라고 있으나 육군과 해병의 인적 자원 부족으로 아직 충원을 받지 못했다. 이라크에서 감축되는 미군은 내년 봄쯤 아프가니스탄에 도착할 듯하다. 탈레반의 공세가 대체로 봄에 격화되는 점을 감안해서다. 게이츠 장관은 앞서 아프가니스탄 주둔 해병대의 주둔 기간을 1개월 연장했다. 겨울이 되어 아프가니스탄 산악지대의 많은 탈레반 요새들이 폐쇄되는 시점에 맞춘 것이다.

미국 국방부는 또 걸프만에 있던 항공모함 에이브러험 링컨 호를 아라비아 해로 이동 배치했다고 발표했다. 내년 봄까지 아프가니스탄 주둔군에 더 강력한 공군 화력과 정찰 기능을 제공하기 위한 목적에서다. 게이츠 장관은 항모 재배치와 관련해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폭력이 크게 증가한 반면 이라크에서는 사상자가 눈에 띄게 줄고 있다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 작전에 투입할 여분의 병력이 생겼다는 사실에 모두가 들떠 있는 분위기다. 페트레우스 장군은 지난해 이라크에서 5개 전투여단의 추가 철수를 건의했으며 부시는 이를 수락했다. 이 가운데 제2 여단과 제3 보병사단은 이달 철군을 완료했다. 이에 따라 이라크에 남은 미군 총 병력은 15개 여단, 14만명으로 줄어들었다.

9월 전황 보고 나오면 이라크 철군 본격화할 수도

만약 철군이 지금의 속도로 계속되면 대략 45일마다 3개 여단이 부시가 퇴임할 때까지 이라크를 떠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난 4월 이라크 철군이 45일간 잠정 중단된 적이 있다. 철군에 따른 전투 상황 검토가 완료되는 오는 9월 중순까지 관망할 필요가 있다.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전략은 전반적으로 잘못되었다. 그러나 이라크 내 바스라, 바그다드, 사드르, 모술 지역의 대규모 전투에서 승리를 거둠에 따라 이라크 전세가 유리해졌고, 이라크 군의 임무 부담도 늘어났다. 이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이다.

백악관은 철군 스케줄에 관해 논평을 거부했으나 고든 존드로 대변인은 부시 대통령이 될수록 많은 병력이 이라크에서 철수하기를 고대하고 있다고만 말했다. 이라크 철군은 9월에 있을 페트레우스 장군의 전황 보고가 나와야 시작된다. 현재로서는 미국과 이라크 정부가 철군 시기와 규모에 대해 집중적인 협의를 하는 단계다.

AP 통신에 의하면 영국도 2009년 중 이라크 주둔 병력을 대규모로 감축할 예정이다. 영국군은 현재 이라크 남부와 아프가니스탄에 배치되어 있다. 영국은 올해 초 이라크 주둔군을 4천명에서 2천5백명으로 감축하려다가 지난 3월 전투가 격화해 이를 연기했다.

지금까지 4천명의 미군이 전사하고 1조 달러의 전비가 투입된 이라크 전쟁은 미국 역사상 가장 중대한 외교 실책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지긋지긋한 전쟁에 종지부를 찍는 순간을 기다리는 사람은 부시만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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