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신문들, 이미 선거 끝냈다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8.11.04 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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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일간지 포함 2백31개 신문이 오바마 지지…매체 영향력에서도 매케인 ‘압도’

▲ 미국의 신문들이 오바마(오른쪽) 지지를 선언하기에 바쁘다. 미국 미디어 비평지에 따르면 10월29일 현재 ‘2백31 대 1백2’로 ‘매케인 편’보다 두 배 많다. ⓒAP연합

영어로 ‘endorsement’, 즉 특정 후보 지지 선언은 미국 대선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이다. 미국에서는 신문도 특정 후보를 지지할 수 있다. 미국의 많은 신문은 사설을 통해 특정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전통을 유지해오고 있다. 우리의 현실과 비교하면 사뭇 생소한 풍경이다. 미국에서도 이것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논란이 존재한다. 이런 논란 때문인지 <월스트리트저널> 등은 특정 후보 지지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 사회에서는 신문의 특정 후보 지지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기류가 강하다. 언론의 책임은 국가가 좀더 나은 방향으로 전진하는 데 있으며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는 일도 언론의 사명 중 하나로 여기기 때문이다.

선거 현장의 최전선에 서 있는 ‘신문’이 누구를 지지하는지 훑어보면 선거의 향방도 한눈에 읽을 수 있다. 특히 올해의 경우는 ‘오바마’ 지지로 기울어진 지 오래이다. 물론 맹신은 금물이다. 어디까지나 참고 자료일 뿐이다. 미국의 미디어 비평지인 <에디터앤퍼블리셔>에 따르면 1940년부터 1992년 사이에 민주당 후보를 지지한 신문이 많았던 때는 1964년과 1992년, 단 두 번이었다. 린든 존슨 전 대통령과 클린턴 전 대통령이 그 주인공이다. 반면 그 사이에 민주당 대통령은 두 명이 아니라 다섯 명이 배출되었다.

<에디터앤퍼블리셔>의 자료에 따르면 10월29일을 기준으로 미국의 신문들은 오바마를 위해 레드카펫을 깔아주듯 지지 선언을 하기에 바쁘다. ‘2백31 대 1백2’로 오바마를 지지하는 신문이 두 배 이상 많다.

양적인 측면을 떠나 질적인 부분을 살펴보면 그 차이는 더욱 벌어진다. 오바마를 지지하는 2백31개 신문의 발행 부수는 총 2천1백30만부가 넘는다. 매케인을 지지하는 102개 매체의 발행부수는 7백만부 정도에 불과하다.

스윙스테이트(격전지)의 신문을 살펴보아도 오바마의 우세는 눈에 띈다. 플로리다의 경우 오바마를 지지하는 신문이 12곳인 데 비해 매케인은 4개 신문만이 지지하고 있다. 펜실베니아도 오바마 지지가 17곳, 매케인 지지는 4곳에 불과하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는 지지 후보를 밝힌 6곳 모두 오바마를 응원하고 있다.

시카고트리뷴의 오바마 지지는 ‘역사적 사건’…영국 유력지도 ‘동참’

매체 영향력에서는 오바마의 압도적 판정승이다.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유력지들은 대부분 오바마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오바마를 원하는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LA타임스, 보스턴글로브, 시카고트리뷴, 마이애미헤럴드 등은 우리에게도 낯익은 매체이다. 매케인이 이기기를 바라는 곳은 뉴욕포스트, 워싱턴타임스 정도에 불과하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영국의 유력지들도 오바마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영국의 일간지 더타임스와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즈는 비록 남의 나라 대통령 선거이지만 “그래도 오바마가 낫다”라고 사설에서 밝힌 바 있다. 미국의 유력지들은 세 번에 걸쳐 진행된 TV 토론이 끝난 후 지지 후보를 결정했다. 오바마를 지지한 신문들의 지지 이유는 거의 비슷하다. 현재의 미국이 처한 위기를 헤쳐나가는 데 필요한 통합의 리더십과 그의 지적인 능력을 높이 산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0월24일 오바마를 지지했다. 뉴욕타임스는 1960년 존 F. 케네디를 지지한 이후 줄곧 민주당 후보를 지지해왔다.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금융 위기 등 지금의 난국을 해결하는 데 광범위한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고 능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선거에서 오바마가 선택되어야 한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반면, 매케인에게는 ‘낡은 선거운동을 펼쳤다. 당파적인 분열을 일으키고 인종주의적인 선거 양상까지 보였다. 이성보다는 감정에 치우쳤다’라며 그의 선거운동에 ‘ugly(추한)’라는 표현을 갖다붙였다.

워싱턴포스트가 오바마를 지지하는 것도 별로 낯설지 않다. 공화당에게 한때는 ‘좌파 매체’라는 평가까지 들었던 워싱턴포스트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사설에서 ‘우리는 두 명의 재능 있는 대통령 후보를 눈앞에 두고 있다’라고 말머리를 열었지만 결국, ‘오바마가 위대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언급하며 오바마 지지를 명확히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부시 정권의 지난 8년은 재정의 무모함, 지구 생태계의 파괴, 고문 등으로 점철되었고, 무능과 오만이 함께했다’라고 비판하며 ‘미국의 경쟁력 강화와 저소득층 등을 보호하는 데 오바마의 주제가 훨씬 매력적이다’라고 평했다. 경제 위기를 탈출하는 방법론에서도 ‘오바마가 이 위기를 확실히 이해하고 있고 개혁을 추구할 수 있으며 그런 유연성을 가진 인물이다’라며 손을 들어주었다.

시카고트리뷴이 오바마를 지지한 것은 스스로가 밝혔듯이 ‘역사적 사건’이었다. 시카고 트리뷴은 ‘시카고트리뷴의 위대한 지도자였던 조셉 메딜이 공화당의 창당 멤버였다’라며 자신들의 정치색을 설명했다. 시카고트리뷴은 미국 보수 성향의 대표 신문으로 회사 역사상 단 한 번도 민주당 후보를 지지해본 적이 없다. 그 첫 변화의 시발점으로 오바마를 택했다. 시카고트리뷴은 사설에서 ‘많은 미국인은 오바마를 불안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보증한다. 그의 지적 능력과 도덕적인 면, 사려 깊은 판단 그리고 엄청난 자신감은 그가 이미 준비되었음을 보여 준다’라며 오바마를 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사설의 상당부분은 매케인에 대한 실망감을 표현하는 데 할애했다. ‘매케인은 요즘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부시의 감세 정책을 지지하고 페일린을 러닝메이트로 선택하는 실수를 범했다’라고 비판했다.

‘여론과 영합한 언론’ 비판 속 ‘확신이 낳은 결과’ 주장도

LA타임스도 매케인에게 실망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LA타임스는 ‘즉흥적이고 변덕스런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압박 속에서도 신중하고 유려한 지도자가 필요한데 오바마가 그렇다’라고 지지 이유를 밝혔다. 반면 매케인에 대해서는 ‘공화당 경선에서는 이민법 개혁 등을 고수할 것처럼 보였지만 이후 자신의 이민 법안에 대해 투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라며 원칙의 부재를 지적했다. 페일린을 부통령으로 선택한 그의 안목은 여기서도 비판거리이다. “페일린은 거대 정당의 부통령 후보로는 가장 부적격한 인물이었다. 반면 오바마는 경험 많은 바이든을 러닝메이트로 지명하면서 더욱 점수를 딸 수 있었다”라며 두 후보의 차이를 부각시켰다.

유력지들 이외에 다른 신문들 사이에서도 전체적인 양상은 비슷하다. 친(親)민주당 신문들은 오바마의 능력과 신중함 그리고 열정을 높이 산다. 반면 공화당을 지지했다가 민주당으로 돌아선 신문들은 상대적으로 매케인의 실책을 비판하고 있다. 페일린이 주지사로 있는 알래스카의 최대 일간지 앵커리지데일리뉴스조차 ‘페일린의 능력을 고려할 때 매케인을 지지하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크다’라며 오바마 지지를 표명했다.

특히 올해의 경우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지지 후보를 갈아탄 신문들이 많다. 2004년 대선에서는 공화당의 부시 대통령을 지지했지만 올해에는 오바마를 선택한 신문이 46곳이나 된다. 이를 두고 “언론이 여론을 선도하는 시대가 지나 이제는 여론과 영합한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라는 비판이 나온다. 반면 LA타임스처럼 지난 대선에는 지지 후보를 표명하지 않았던 신문들이 이번에는 ‘오바마 지지’를 표한 점에 주목하는 전문가도 많다. 이들은 “이번 대선에서는 매케인에 비해 오바마에 대한 상대적인 확신이 강하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만큼 오바마의 흡인력이 강하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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