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동지들’에 대하여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08.11.11 11:2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80년대 좌파의 한계와 오류에 대한 성찰과 ‘21세기 좌파’에 대한 제언

‘잃어버린 10년’이라 말들 많은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소위 ‘좌파’ 또한 정체성을 잃어버린 10년이 아니었는지. ‘군부 독재 정권 타도’를 외치던 1980년대, 최루탄 빗발치는 투쟁 현장에서 ‘짱돌’과 화염병으로 무장했던 ‘진짜 좌파’는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제5공화국에서 20대를 보낸 이광일씨가 <좌파는 어떻게 좌파가 됐나>를 펴내며 젊은 시절 운동권에서 보낸 온갖 ‘증거물’들을 펼쳐냈다. 단지 회고담으로써가 아니라 그 증거물들로 지금의 진보 정치를 돌아보아야 하기 때문이라며.

지난 2008년 초 민주노동당의 분화 이후 한편으로는 ‘진보정당 운동 10년 과정에 대한 평가’가, 다른 한편으로는 ‘진보정치의 재구성’이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러나 저자의 말처럼 진보정치 10년 평가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의 진보 정치나 좌파 정치가 부딪히고 있는 지점을 온전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980년대 이후 30년간 좌파 정치 운동을 재평가해야 한다.

위상은 ‘과잉 격상’, 역할은 ‘과잉 비판’ 지적

1990년대 초반 이후, 1980년대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채 1980년대는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질풍노도의 에피소드’로, 역사의 뒤편으로 내팽겨지거나 청산되어 버렸다. 특히 민주화 세력이 정권을 잡은 10년 동안 이른바 386세대 일부에 의해 시대가 주도됐지만, 민주화 세력의 실패로 인해 1980년대 전반이 도매금으로 부정적 평가되고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해 이러한 평가가 부당할 뿐만 아니라, 사실과도 다르다고 학술적으로 논증하고 있다.

▲ 1987년 10월 노동운동탄압분쇄결의대회를 마친 노동자들이 ‘군사 독재 허수아비’를 태우고 있다. ⓒ연합뉴스
저자는 1980년대 급진 노동운동에 대해 ‘대중적인 힘을 얻었다’라며 그 위상을 과잉 격상시키는 것에도 찬성할 수 없고, ‘그에 합당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라고 과잉 비판하는 것도 부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980년대 등장한 급진 노동운동은 반파시스트 투쟁을 일관되게 전개하고 자본의 지배에 반대하여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을 모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념 조직의 수준에서 볼 때, 노동운동 내부에서 대중적 헤게모니를 확보하고 행사한 적이 거의 없었다.”

저자는 1980년대 연구에서 기존의 학자들이 대부분 ‘경험주의’와 ‘실증주의’에 치우쳤다고 주장하며, 1980년대 급진 노동운동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서는 ‘급진 노동운동의 역사에 대한 재구성’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 책은 그런 취지 아래 급진 노동운동의 이론과 실천의 역사에 대해 방대한 자료를 들춰가며 분석한 것이다.

이 책은 급진 노동운동을 펼쳤던 ‘옛 동지들’을 다시 불러내어 미화하거나 변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당시 ‘혁명’을 내세웠던 급진적인 정치 세력들이 과연 슬로건에 걸맞은 역량을 일정 정도라도 지니고 있었는지, 또 6·10 민주항쟁으로 치달았던 ‘1980년대의 혁명’은 왜 유산됐는가에 대해 학술적으로 재검토해 ‘좌파의 한계와 오류’를 성찰하고자 했다.

이 성찰은 다시 ‘21세기 좌파’의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행한다. 저자는 21세기 좌파는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직면했던 ‘민주화’라는 시대정신처럼, 다시 새로운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저자는 “자본주의가 더 이상 효율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불안정하며 난폭하기조차 하다”라며 전제한 뒤 “지금은 좌파가 자본주의 위기를 극복할 유의미한 정치세력으로 등장할 시기이자, 동시에 좌파들이 스스로를 개조할 역사적인 기회”라고 말했다. 이 기회란 ‘현실적인 감각을 지닌 새로운 노동운동이 태어날 수 있는’ 기회이며, 또 ‘일반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논리로 설득력 있고 역량 있는 세력으로 등장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저자의 말처럼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장밋빛 전망에 회색 구름이 낀 현실에서 ‘21세기 좌파’의 모습은 어떨까. 1980년대 ‘흩어지면 죽는다’라며 외치던 그들, 모래알처럼 흩어졌던 그들이 다시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라며 노래하며 ‘새로운 희망’을 전할지 궁금해진다.  1987년 10월 노동운동탄압분쇄결의대회를 마친 노동자들이 ‘군사 독재 허수아비’를 태우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