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세계에 갇힌 외로운 방랑자
  • 김연수 (생태 사진가) ()
  • 승인 2009.01.06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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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육로로 금강산 가는 길목인 건봉산에는 ‘건봉사’라는 유서 깊은 사찰이 있다.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의병들을 훈련시켰던 곳이고, 한국전쟁 때는 남북의 군인들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15년 전까지만 해도 건봉사는 민통선 안 군 작전지역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민통선이 좁혀지면서 지금은 누구나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다. 건봉사를 옆에 끼고 가파른 산악 길을 지프차로 2시간이 넘게 올라가면 건봉산 꼭대기에 커다란 부대가 자리 잡고 있다. 그 부대보다 더 북쪽으로 내려가면 북한과 대치 중인 최전방 철책선이 나타난다. 고진동·오소동 계곡으로 불리는 이곳에 산양(천연기념물 217호)들이 주로 서식한다.  

해발 1천~1천5백m의 가파른 암벽 지대를 뛰어다니는 절벽의 곡예사 산양. 한겨울 폭설이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면 그들의 방황이 시작된다. 때로는 먹이를 찾아 비무장지대(DMZ)의 철책선 근처로 이동해 군인들이 제공하는 푸른 배추를 먹기도 한다. 오소동 계곡의 경우 해질녘이 되면 4~5마리의 산양들이 군 초소 근처로 내려와 인간이 마련한 끼니로 겨울을 난다.

1960년대 초만 해도 산양은 강원도 설악산·오대산·태백산 등지에 수천 마리 이상의 개체가 서식했었다. 그러나 1964~65년, 대폭설로 먹이를 찾아 민가로 내려온 산양들이 어렵던 시절의 굶주린 주민들에 의해 무참히 포획되었다. 그 후 1968년 천연기념물로 지정, 국가에서 보호하고 있으나 강원 고성, 양구의 비무장지대와 설악산·오대산에 몇 마리가 생존해 남한에 살고 있는 총 개체 수가 3백여 마리를 넘지 못할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에는 충북 월악산과 강원도 가리왕산에서도 몇몇 개체가 발견되고 있다.

농가의 흑염소와 비슷한 산양은 어미의 몸길이가 1백20cm 안팎이고 키는 55~70cm, 몸무게 35kg 정도이다. 암수 모두 10~23cm의 검은 뿔을 2개 가졌다. 사슴과 달리 뿔이 빠지지 않고, 가지도 없으며 평생 자라기 때문에 뿔의 크기로 나이를 측정하기도 한다. 초식성 산양은 맹수를 피해 기암절벽에 살도록 진화되었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굵은 다리와 바위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스펀지처럼 탄력성이 있는 발바닥을 가졌다. 적갈색의 보호색을 지닌 탓에 멀리서 보면 바위와 같아, 눈 속이 아니면 육안으로 식별이 어렵다.

산양은 한반도와 중국 동북 지방, 러시아 우수리 강 유역에 분포하는 국제 보호종이다. 중국과 러시아와는 달리  호랑이, 늑대 등 맹수가 사라진 남한에서 이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은 은밀히 이어지는 밀렵 행위와 이를 구매하는 보신족이 아직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구호만 요란한 녹색 성장 시대에 우리 사회의 그늘진 구석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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