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가 모르는 것
  • 김재태 기자 (purundal@yahoo.co.kr)
  • 승인 2009.03.24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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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에 있는 서울시교육청 앞을 지나다 보면 종종 소란스러운 광경들을 목격하게 된다. 때로는 전교조 회원들이, 또 때로는 학부모 단체 회원들이 여는 집회가 잦은 탓이다. 최근에는 일제고사에 반대해 해직당한 교사들과 그 지지자들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들의 행동이 옳고 그름을 떠나, 그 모습을 보면 마치 어지러운 우리 교육 현실과 마주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지곤 한다.

지금은 다소 잠잠해졌지만 이명박 정부가 밀어붙인 초·중·고교 일제고사는 아직도 곳곳에서 여진을 남기고 있다.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 사이의 앙금도 쉬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한쪽에서는 학교 교육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꼭 필요한 제도라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무한 경쟁을 부추겨 학교 교육을 오히려 피폐하게 만들 것이라고 소리를 높인다. 아직 결과물이 드러나지 않은 일이기에 어느 쪽이 옳다고 예단할 수는 없지만, 정작 수요자인 학생들의 목소리가 소외되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수시로 바뀌는 입시 제도와 숨바꼭질하느라 아이들과 학부모는 숨 돌릴 틈이 없고, 그렇게 교육이 ‘백년지대계’는커녕 ‘십년지대계’도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공교육의 시스템이 온전할 리 만무하다. 따지고 보면 지난번 일제고사 때 일어났던 성적 조작 파문은 그러한 현실의 필연적인 산물일 뿐이다.

일제고사 성적 조작은, 기초가 허약한데도 그것을 토대로 파생상품이라는 뻥튀기 제품을 자꾸 만들어내다 변고를 당한 미국의 금융 위기와 본질 면에서 많이 닮아 있다. 둘다 결국은 펀더멘털의 부실과 탐욕, 부도덕이 어우러져 빚어진 참사이다. 현실을 감추거나 속이고 무리한 욕심을 부리다 보면 필시 탈이 생기게 마련이다.

최근 대학 입시에서 새로운 추세로 자리 잡고 있는 입학사정관 제도도, 취지는 좋지만 그 토대가 불안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이다(36쪽 특집 기사 참조). 전문 직업인을 통해 대학 입학생을 뽑겠다는 것인데, 이 또한 교육 시스템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변화인지라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알 길이 없다. 물론 사정관들이 과학적인 근거와 전문적인 식견을 잘 활용하거나 발휘한다면 해당 학교에 필요한 학생들을 좀더 합리적으로 선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관련 지원금을 노린 대학들의 꼼수가 삐져나오고, 입학사정관 제도에 편승한 ‘입시 컨설팅’이 사교육 시장의 블루오션이 되리라는 예측이 쏟아지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얼마 전에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학생들의 수업 일수를 언급해 새삼 눈길을 끈 적이 있다. 그는 미국 학생들의 수업 시간이 한국 등 아시아 국가보다 한 달가량 짧다며 “한국이 할 수 있다면 미국에서도 가능하다”라고 강조했다. 한국 학생들이 학교 수업을 많이 받은 만큼 상당한 실력을 갖추었으리라는 전제에서 한 말일 터이다. 하지만 그가 모르는 것이 있다. 시쳇말로 ‘가방끈이 길다고 공부를 잘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수업 일수가 많다고 해서 양질의 교육을 받는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우리 학생들은 학교가 아닌 학원에서 더 많은 지식을 채우고 있다. 그것도 창의력 함양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수험용 지식을.

이래저래 우리 교육은 피곤하고 막막하다. 교과부는 이제 아예 전국 시·군·구별 수능 성적까지 공개하겠다고 나섰다. 지금은 새로운 정책·제도에 앞서 우리의 현실 즉, 분수를 제대로 아는 것이 더 절실한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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