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 흔드는‘대박’의 열망
  • 하재근 (문화평론가) ()
  • 승인 2009.04.01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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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연예인 지망생 시대, 수요는 적고 공급만 넘쳐 화려한 무대 뒤에는 처절한 현실…신인들 위상은 ‘바닥’

ⓒ뉴시스

성상납 사건으로 연예계 추문이 다시 불거졌다. 연예계 추문은 이번처럼 성상납이나 불공정 계약의 문제로 나타난다. 힘이 없는 자가 힘을 가진 자에게 성을 제공하거나, 폭행 등 부당한 일을 당했다는 내용들이다. 성상납은 워낙 비밀스러운 일이라서 그 내용이 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지만 불공정 계약의 문제는, 사례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가수 솔비는 과거 기획사로부터 감금을 당해 탈출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아이돌 그룹이었던 클레오의 멤버도 비슷한 고백을 했다. 원티드의 멤버도 과거에 감금과 폭행을 당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에 따라 연예계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높다. 대체로 진상을 드러내 일벌백계해야 한다, 남성들의 여성관과 접대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 기획사들을 단속하고 규제해야 한다, 정당한 계약 문화와 선진적인 기획사 영업 방식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의견들이다.

모두 맞는 말이다. 특히 기획사들을 단속하고 제도를 정비하는 것은 실질적인 차원에서 당장 실행할 수 있는 일이고, 문제 제기도 이 부문에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근본적으로 나아질 수 있을까? 연예인 지망생과 신인 연예인이 당하는 설움을 ‘표준계약서’가 해결해줄 수 있을까?

대중문화 산업은 척박해지는데 스타는 부각

근본적인 문제는 시장 상황에 있다. 제도 정비는 물론 중요하고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지만, 시장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근본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다. 국가는 단기적으로 기획사 단속과 제도 정비를 하되, 근본적으로는 대중문화가 융성할 수 있는 시장의 조건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100만 연예인 지망생 시대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가요계가 어렵다는데도 가수 지망생만 1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회원이 10만을 넘는 연예인 지망생 카페가 활동하고, 연예인에 환호하며 동시에 연예인을 꿈꾸는 열혈 팬클럽의 괴성은 나날이 커져만 간다. <개그 콘서트>에서는 요즘 청소년들 열에 아홉이 연예인을 꿈꾼다고 꼬집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연예인 지망생 공화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쟁률이 너무 높다. 일반인에서 연예인이 되기까지, 그리고 연예인에서 스타가 되기까지 엄청난 경쟁을 이겨내야 한다. 이렇게 너도나도 연예인을 열망하며 부나비처럼 달려드는 지망생들은 결국, 연예 산업의 ‘봉’일 수밖에 없다. 신인 연예인이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것은 그 지위가 낮기 때문인데, 그것은 꼭 계약서 때문만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숫자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공급 초과가 시장 가치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경제 법칙이다.

그 숫자가 점점 더 많아지는 것에 비해 그들이 누릴 것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일단 대중음악 시장은 붕괴되었다. 아이돌 가수의 화려함을 보고 연예인을 지망하는 10대들이 부지기수이지만, 그들이 안정된 수익을 올릴 가능성은 극히 낮다. 국내 3대 아이돌 기획사가 지난해에 모두 적자였다. 가수들의 소득이 대부분 유통 과정에서 사라지기 때문에 스타 가수조차 빈곤을 호소하고 있다.

영화 쪽도 점점 위축되고 있다. 드라마 시장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꽃보다 남자>는 과도한 PPL 광고로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 판권 판매만으로는 제작비 회수조차 안 되는 상황 때문이라고 한다. 

화려함에 대한 열망과 현실과의 큰 차이는 예술 활동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메워질 수밖에 없다. 기획사는 연예인들을 내돌리거나 금융적 우회도로를 찾는 것으로 탈출구를 찾고, 연예인 지망생은 예술 활동이 아닌 자신의 다른 매력을 통해 그 화려함에의 열망을 실현하려고 하게 된다.

그에 따라 스타로 가는 극히 좁은 통로를 장악하고 있거나, 자본을 가진 쪽의 권력은 점점 강해지고, 이런 힘의 불균형은 결국 이번 같은 파열음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IMF 외환위기 때 절감했듯이, 시장 상황의 악화는 양극화를 부른다. 즉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는데, 연예계에서 이것은 스타 권력의 강화로 나타난다. 그에 따라 연예인 지망생을 끌어들이는 스타의 빛은 더 눈부시게 되고 그만큼 연예인 지망생이 늘어나게 된다. 반면에 스타 권력 강화의 반대급부로 신인 연예인의 위상은 하락한다. 즉 경쟁률은 더 올라가고, 지위는 더 하락하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계약서 등 제도 정비만으로는 뒤집을 수 없다. 계약서와는 상관없이, ‘너 뜰려면 이 자리 가야 한다’라는 말을 듣고 안 갈 사람이 드물고, ‘돈 필요하면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말을 듣고 거부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 아이돌 그룹의 화려함을 보고 연예인을 지망하는 10대들이 많다. 위는 동방신기. ⓒKBS 제공

지망생·기획사 모두 대박 좇다가 ‘추락’

연예인 지망생을 늘리는 원인과, 대중문화 산업을 붕괴시키고 있는 원인은 같다. 국민이 빈곤해지고 문화가 척박해지는 것이 그 이유이다. 빈곤하고 미래가 없는 국민은 결국, 연예 스타 혹은 스포츠 스타를 꿈꾸거나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남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그리고 문화성이 척박한 곳에서는 예술적 재능보다 1차원적인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몸’이 중요한 자원이 된다.

언론들의 보도 태도도 여기에 한몫한다. 한류 스타의 화려한 면만을 부각시키는 보도는 그렇지 않아도 절망에 빠진 국민을 달뜨게 만든다. 삶이 불안할 때 도박에 빠지는 것처럼, 화려한 대박의 유혹에 국민을 빠뜨리는 것이다. 이것은 연예인 지망생과 기획사 업자들에게 모두 영향을 미친다. 시장 상황은 점점 안 좋아지는데 거꾸로 대박을 향한 열망은 커지니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10대들은 현재 지옥에 살며 미래의 불확실성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학교는 이미 공황 상태이다. 학교에서 벗어나 있는 10대가 수만 명을 헤아린다. 고등학생의 20% 이상이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 10대의 미래는 한 단어로 표상된다. 바로 ‘청년 실업’이다. 얼마 전에는 한·중·미·일 4개국 가운데 한국 청소년이 미래를 가장 불안하게 여긴다는 연구 발표도 있었다. 이런 속에서 아이들은 맹목적으로 스타를 열망하게 되는 것이다.

국민이 좀더 여유 있게 살면서 다양한 문화를 향유해 문화시장을 키우고, 10대들이 안정된 학교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사회 진로를 꿈꿀 수 있게 되면, 연예계 러시와 문화계 추락은 사그라들 수 있다. 결국, 사회·경제적인 토대가 받쳐주어야 문화가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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