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신창이가 된 노무현 사단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09.04.14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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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모들 다수 옥살이…정치 기반 회복 꿈도 물거품

ⓒ연합뉴스

친노 세력에 대한 확인 사살이나 다름없다.” 검찰의 ‘박연차 수사’를 지켜보던 한 야권 인사의 말이다. 지난 대선과 총선을 거치면서 반 토막 난 민주당 내에서도 소계파로 내려앉은 친노 정치 세력이 이번 일로 인해 사실상 와해될 위기에 놓였다는 것이다. 살아남은 몇 안 되는 현역 정치인 대다수가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올랐고, 노무현 전 대통령마저 조사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면서 내년 지방선거와 총선을 통해 정치 기반을 회복하겠다는 계획은 사실상 물거품이 되었다는 지적이다.

‘노무현 사람들’의 수난 시대가 계속되고 있다.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줄줄이 사법 처리 대상에 오르면서 친노 진영 전체가 극심한 침체에 빠져들었다. “너무 지독하고 힘들다”라는 말이 도처에서 흘러나온다. 이번 사건과 무관한 친노 인사들도 고통을 호소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민주당 지도부조차 노 전 대통령과 거리 두기에 나서고 있지만 이들은 침묵으로 일관하며 사태의 추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

이른바 ‘노무현 사단’은 한때 막강한 전투력을 자랑했다. 2002년 대선에서 패한 이회창 후보 캠프에서 그 위력을 인정할 정도였다. 그 중심에 ‘386 참모들’이 있었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던 이들이다. ‘좌희정, 우광재’로 불리는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과 이광재 의원이 대표 격이다. 노무현 캠프에서 ‘살림’과 ‘기획’을 각각 맡은 이들은 대선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다.

안최고위원은 집권 이후 불법 대선 자금을 받은 혐의로 1년간 옥살이를 치르면서 정계 복귀의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지난해 7월 민주당 최고위원에 당선되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17대 국회에서 ‘실세 의원’으로 불렸지만 각종 비리 의혹으로 검찰의 수사 대상에 10여 차례나 올랐던 이의원도 지난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하면서 강원 지역을 대표하는 젊은 정치인으로 입지를 다지는 듯이 보였다.

측근 386 의원들 수난 끝없어

하지만 시련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안최고위원은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인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에게서 10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 이의원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 정대근 전 농협회장으로부터 2억2천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었다. 특히 이의원은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의원직을 사퇴하겠다”라는 입장을 밝혀 사실상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노 전 대통령의 ‘양팔’이 모두 검찰의 포승줄에 묶여 꼼짝달싹도 못하게 된 형국이다.

역시 노 전 대통령의 ‘386 참모’로 활약한 서갑원 민주당 의원도 박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다. 당내 친노 핵심 정치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서의원은 지난해 재선에 성공한 후 원내수석부대표를 맡아 정치 영역을 넓혀나갔지만 이번 사건으로 인해 최대 위기를 맞았다.

당시 청와대 참모들은 대부분 정치적 휴식기를 갖고 있다. 이병완 전 비서실장은 퇴임 후 ‘참여정치포럼’을 만들어 한동안 활발히 활동했지만 지금은 개점휴업 상태이다. 노 전 대통령의 수행비서 출신으로 청와대에서 대통령의 입 역할을 도맡았던 천호선 전 대변인은 ‘더 좋은 민주주의 연구소’ 기획위원장을 맡고 있다. 윤태영 전 대변인은 노 전 대통령의 회고록 집필을 돕고 있으며, 양정철 전 홍보기획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이 만든 토론 사이트 ‘민주주의 2.0’의 관리를 맡는 등 봉하마을 일에 관여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청와대 참모 그룹 중 PK(부산·경남) 인사들은 대부분 고향으로 내려가 있는 가운데, 일부 인사들이 ‘박연차 리스트’에 이름이 오르내려 분위기가 싸늘하다. 386 세대의 맏형격인 이호철 전 민정수석은 노 전 대통령 퇴임 후 부산에서 봉하마을로 출퇴근하며 농촌 사업을 총괄하는 일을 도와왔다. 최근 6개월 일정으로 해외 배낭여행을 떠났으며, 현재 중국을 여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뇌물 수수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던 정윤재 전 의전비서관은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으로 석방된 이후 특별한 활동 없이 조용히 칩거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봉하마을은 청와대에서 마지막까지 노 전 대통령의 곁을 지켰던 문재인 전 비서실장이 책임지는 모습이다. 노 전 대통령의 변호사 동료로서 법무법인 ‘부산’을 운영 중인 문 전 실장은 이번 사건이 불거지자 대책회의를 주재하며 법률적 지원에 나서는 한편, 언론과의 대화 창구 역할도 맡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고시 공부를 하던 중 인연을 맺은 ‘동갑내기 친구’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은 이번 사건의 핵심 연결 고리로 지목되어 검찰 조사를 받았다. 고시 공부를 함께했던 박정규 전 민정수석도 박회장으로부터 1억원 상당의 상품권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상태이다.

노무현 정권에서 총리를 지낸 중진 정치인인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는 지난 총선 이후 사실상 정치 활동을 중단했다. 실세 총리로 통했던 이 전 총리는 총선 불출마 선언 후 신당 창당을 고려했지만 현실화하지는 못했다. 재단 법인 ‘광장’을 세워 국가 정책에 대한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지만 개인적인 활동은 하지 않고 있다. 총선에서 낙마한 한명숙 전 총리도 정치권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다.

국민통합추진위원회(통추)에서 노 전 대통령과 함께 활동했던 ‘정치 동지’들 중에서도 원혜영 민주당 원내대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현실 정치에서 거리가 멀어졌다. 유인태 전 의원은 지난 총선에서 재선을 했던 서울 도봉 을에서 낙마했고, 이철 전 의원은 코레일 사장에서 물러났다. 여기에 영남권 친노 좌장격이던 이강철 전 정무특보는 불법 정치 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었다. 노 전 대통령의 ‘정치 스승’ 격인 김원기 전 국회의장도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았다.

유시민·김두관 등은 지역 활동

총선에서 친노 세력을 대표하며 영남에서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신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과 김두관 전 행자부장관은 지역에 머무르고 있다. 유 전 장관은 ‘노(盧)의 남자’로, 김 전 장관은 ‘리틀 노무현’으로 불렸던 친노 진영의 대선 주자들이다. 대구 수성 을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주호영 의원과 맞섰다가 낙선한 유 전 장관은 이후 경북대에서 ‘생활과 경제’를 강의해왔다. 최근 <후불제 민주주의>라는 정치 에세이집을 출간한 그는 노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이 거론되자 저자 간담회와 시국 강연 등 외부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밝히면서 변함없는 지지를 보냈다. 고향 남해·하동에서 출마했다가 아깝게 낙선한 김 전 장관은 두 달 뒤 있은 남해 군수 재·보궐 선거에서 측근인 정현태 후보의 당선을 도왔다. 두 정치인 모두 총선에서 무소속 출마해 현재 민주당에는 적을 두지 않고 있다.

학자 출신으로 노 전 대통령을 보좌했던 김우식(연세대) 비서실장과 이정우(경북대)·성경륭(한림대)·김병준(국민대) 전 정책실장, 김용익(서울대) 전 사회정책수석 등은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대학으로 돌아갔다. 이들은 지난해 9월 출범한 ‘한국미래발전연구원’ 이사진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 연구원의 기획운영실장은 김성환 전 정책조정비서관이 맡고 있다. 보수 신문과 날을 세웠던 조기숙 전 홍보수석도 이화여대로 돌아가 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 반면, 언론인 출신으로 기자실 통폐합을 골자로 한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을 주도했던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은 명지대 부교수로 재직하다 사표를 낸 뒤 지난해 3월 캐나다로 떠나 현지 대학에서 연수 중이다.

▲ ‘좌희정, 우광재’로 불렸던 민주당 안희정 최고위원과 이광재 의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오랜 지기인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과 박정규 전 민정수석(왼쪽부터). ⓒ(맨 왼쪽부터)시사저널 이종현, 시사저널 임영무, 연합뉴스, 시사저널 임준선


관료 그룹은 정권 바뀌어도 승승장구

노무현 전 대통령이 중용했던 관료 중에는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여전히 위세를 떨치는 인사들이 여럿 된다. 국회에 입성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민주당에서는 이용섭·송민순 의원이 지난 정부에서 장관을 지냈다.  광주 광산 을에 출마해 금배지를 단 이용섭 의원은 국세청장에 이어 행자부장관과 건교부장관을 두루 거쳤다. 비례대표인 송민순 의원은 외교부에서 잔뼈가 굵은 관료 출신이다. 2006년 청와대에서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을 맡았다가 그해 말부터 정권 마지막까지 외교부장관을 지냈다.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한 김장수 의원은 노무현 정부에서 육군참모총장과 국방부장관을 지냈다. 허준영 코레일 사장은 지난 정권에서 치안비서관과 경찰청장을 잇달아 지냈지만 한나라당 공천에 도전했다가 고배를 마시고 공기업 사장이 되었다. 한덕수 주미대사는 경제부총리에 이어 총리까지 지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과 윤진식 경제수석, 진동수 금융위원장도 노무현 정권에서 요직을 지냈다. 윤장관은 금융감독위원장, 윤수석은 산자부장관, 진위원장은 재경부 차관 출신이다.

이들은 노 전 대통령의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함께 일할 때부터 ‘코드’가 딱 맞아 떨어지지 않았다. 군대와 경찰은 물론이며 경제 분야 관료의 경우도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 인사들이 많다. 강만수 전 장관에 이어 이명박 정부 2기 경제팀을 이끌고 있는 윤장관 등은 재경부 출신의 이른바 ‘모피아 인맥’으로 정권 교체와는 무관하게 재등용이 된 경우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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