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는 쇄신의 어머니다
  • 김재태 기자 (purundal@yahoo.co.kr)
  • 승인 2009.07.01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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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스포츠가 다 그렇겠지만, 축구 경기의 결과를 예단하기란 쉽지 않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명백하게 약세인 팀이 강팀을 격파하며 이변을 연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공은 둥글고, 승부도 둥글다’라는 말이 회자되기도 한다. 최근 열린 컨페더레이션스컵 대회에서 미국 대표팀이 35경기 무패 행진을 벌여오던 스페인 팀을 꺾은 것도 그같은 승부의 불가측성을 확인시켜준다. 이처럼 스포츠 경기의 승패가 일반의 예상과 다르게 나타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큰 변수로 꼽히는 것은 역시 정신력이다. 여유 있는 마음으로 임하는 팀과 그렇지 않는 팀의 경기 운영 형태는 현격히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상대 팀에게 지레 겁을 먹거나 승리하지 못할까 봐 초조한 팀은 대오가 흔들려 조직력이 약화되고 무리한 공격으로 낭패를 보기 일쑤이다.

여유의 미덕은 비단 스포츠 경기에서만 유용한 것이 아니다. 우리 삶의 영역 곳곳에서 위력을 발휘한다. 정치도 마찬가지이다. 지도자가 여유를 갖지 못하고 폐쇄적인 자세로 일관하면 ‘광장 공포증’이 표출되고 국정이 흔들리며 국민이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지도자의 여유가 가장 이상적으로 나타난 형태는 포용 혹은 통합이다. 그 담대한 힘은 때로 적을 동지로 바꾸는 기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정적을 과감하게 껴안아 최근 유럽의회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사례는 그 좋은 본보기일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사회 곳곳에서 분출한 국정 쇄신 요구에 대응해 ‘중도’라는 카드를 꺼내놓았다. 그동안 이른바 ‘집토끼’로 불려온 보수층에 기대온 것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사 표시이다. 이대통령으로서는 또 하나의 승부수를 던진 셈인데, 그 결과가 어찌될지는 알 수 없으나 이제라도 사회 통합의 길을 모색하겠다고 나선 점에서는 일단 고무적인 변화로 보인다. 그러나 그 효과와 진정성에 생각이 미치면 개운치 않은 점이 적지 않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통합을 저해할 이념 갈등의 요인들이 상존해 있다. 국회 내 대립을 야기하는 미디어법 등 쟁점 법안들이 그렇고, 현재 진행형인 보·혁 대결이 그렇다. 그것을 방치한 상태에서 펼치는 중도 강화론은 자칫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 있다. 최근 검찰총장과 국세청장 인사에서 보여졌듯이 친정 체제를 더욱 굳혀가는 모습도 통합의 진정성에 대한 의문을 부추기기에 충분하다.

중도란 대통령이 앞장서서 호각을 불듯이 이끈다고 열리는 길이 아니다. 그것이 실체화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포용의 제스처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 핵심은 인적 쇄신이다. 좀더 스펙트럼이 다양한 인물들이 권부에 포진해야 중도가 바로 설 수 있다. 또다시 그 밥에 그 나물이 된다면 통합도 중도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여유가 절실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얼마 전에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파리 잡기’가 세간의 이목을 끈 적이 있다. 방송 회견 중에 날아다니던 파리를 재빠르게 제압한 장면이 인터넷에 동영상으로 오르면서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다. 어찌 보면 정말 대수롭지 않을 이 광경에 이른바 ‘유투브 세대’들이 환호한 이유는 간단하다. 대통령으로서의 권위·체면 따위와는 거리가 먼 분방하고 여유 있는 모습이 그들에게 친근하게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듯 여유는 다른 사람을 편하게 해주고 믿음도 얻을 수 있는 마음의 큰 자산이다. 국가 지도자에게서의 그 자산 가치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여유’야말로 ‘쇄신’의 가장 든든한 토양이자 최고의 지원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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