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하는 미디어, 지성을 마비시킨다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09.08.10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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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이 우위인 세계에서 분별력 지키라는 메시지 전해

미디어법 강행 처리로 정국이 어수선하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헛갈리는 사람이라면 미디어의 속성과 정체성부터 알아야 하지 않을까. 뉴미디어가 속속 등장해 어리둥절한 데다 각종 미디어가 쏟아내는 정보의 물결에 휩쓸려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중심을 잡아줄 이론이 필요하겠다.

최근 옷 벗은 여성 앵커를 내세운 ‘네이키드 뉴스’까지 상륙해 눈길을 끌었다. 출범한 지 1개월도 못 넘기고 사라졌지만 요지경인 미디어 세상을 말해 주기에 충분했다. 중년들은 젊은이들이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끊임없이 주고받고, 인터넷을 이용한 다양한 사이트와 새로운 기술에 힘입은 프로그램들로 무장해 ‘의사소통’하고 있는 것을 어깨 너머로 훔쳐보면서 ‘개인 미디어를 가지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불안해하기도 한다.

당사자에게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은 큰 문제이겠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미디어의 발전에 비춰 사람들이 미디어를 바라보는 시각이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라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게다가 각종 미디어를 별 저항 없이 수용하고,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에 맹목적으로 열광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미디어 빅뱅’이 닥치든 ‘미디어 2.0 시대’가 도래하든 이 미디어라는 것이 인류에게 무엇인지 성찰해야 하는 것은, 과거 TV를 ‘바보상자’라고 말하며 비판했던 것과 다름없다.

재미만 좇으며 매체에 놀아나는 세태 지적

20여 년 전에 은근하면서도 뿌리 깊은 텔레비전의 해악에 대해 일찌감치 경고한 미국의 커뮤니케이션 이론가 닐 포스트먼의 주장이 이 시대에 더욱 유용할 듯하다. 그는 <죽도록 즐기기>라는 책을 통해 미디어 세대의 성찰을 촉구했다. 이 책의 역자는 “혹시 당신은 컴퓨터나 휴대전화 같은 기기는 ‘인간이 사용하기 나름’이라는 순진하기 짝이 없는 고정관념의 소유자는 아닌가? 청소년들이 주고받는 문자메시지를 단순히 ‘또래 문화’ 정도로 치부하는 경솔함을 보이지는 않는가? 막장 드라마나 선정적인 쇼, 저질 코미디 프로그램이야말로 텔레비전의 골칫거리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완전히 틀렸다. 게다가 인터넷 뉴스 기사에 주렁주렁 달린 댓글을 여론이라 여긴다면, 구제불능 수준이다. 이 말은 이미 당신은 21세기 초반의 매체 생태 환경에 철저하게 길들여져 분별력을 송두리째 상실했다는 뜻이다”라고 말하며, 불과 10여 년 사이에 온갖 매체가 인류를 뒤덮어버린 세상에서 ‘죽도록 즐기다가’ 많은 것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우려했다.

닐 포스트먼은 영상이 우위인 세계에서 사람들이 뉴스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재미 삼아 보며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지적했는데, 인쇄 매체에서 독자가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것과 대조적이라고 비판했다. 이 비판은 지금도 적용 가능하다. 진지해야 할 뉴스는 쇼 형식을 띠지 않으면 안 되었는지, 교육적이지도 않고 성찰하거나 정서를 함양하는 형식을 지닌 것은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또 그는 ‘하찮음의 추구’라고 부를 만한 정보 환경으로 급속히 들어서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재미있는 뉴스가 ‘조회 수 1위’로서 가치 있는 뉴스로 둔갑하는 현실을 보면 달라진 것이 없다. 그가 “이래서야 문화가 살아남을지는 모르겠다”라고 하소연한 것이 절실하게 와닿는다. 이에 더해 삶과 무관한 정보가 도처에 흘러 넘쳐 ‘정보 대비 행동 비율’이 극적으로 낮아진 점도 꼬집었다. 전달되는 내용이 오락적 형태를 띠는 등 쇼비즈니스 시대라는 것도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꼭 같다.

저자는 “대중이 하찮은 일에 정신이 팔릴 때, 끊임없는 오락 활동을 문화적 삶으로 착각할 때, 진지한 공적 대화가 허튼소리로 전락할 때, 한마디로 국민이 관객이 되고 모든 공적 활동이 가벼운 희극과 같이 변할 때 국가는 위기를 맞는다. 이때 문화의 사멸은 필연적이다”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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