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정신을 바탕으로 정권 되찾을 전략 찾겠다”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9.09.29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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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의원 인터뷰 / “신당 창당은 구시대 정치 답습” , “포스트 DJ의 정확한 의미는 평화 유지하고 서민 삶 지키는 것”

ⓒ시사저널 유장훈

‘무소속’ 정동영 의원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 4월 재·보선 때 정치적 고향인 전북 전주 덕진에서 당선된 이후 정중동의 행보를 보여왔던 그였다. 재·보선 당시 민주당 공천권을 놓고 민주당 지도부와 첨예한 갈등을 빚었던 것도 그가 운신할 수 있는 폭을 좁힌 한 요인이었다. 그럼에도 지난 5월 말부터 용산 참사 현장만큼은 거의 매주 빠짐없이 찾아가 천주교 미사 등에 참석했다. 동시에 용산 참사 해결과 재발 방지를 위한 이른바 ‘용산 3법’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다.

정의원은 지난 9월18일 미국 언론인클럽(NPC) 초청 연설에 참석했는데, 원래 이 연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9월21일 귀국한 직후부터 달변가인 그가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복잡다단했던 심경이 어느 정도 정리된 것일까. 지난 9월24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이명박 대통령이 북핵 문제 해법으로 제안한 이른바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 일괄 타결)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그랜드 바겐은 새로운 외교적 용어이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6자회담 대표들이 지난 2005년에 합의했던 ‘9·19 베이징 공동성명’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 이명박 정부는 그 이야기를 하기가 싫은 것이다. 문제는 말이 아니라 실천이다.

어떻게 실천해야 한다는 것인가?

2005년 6월 평양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을 때 그는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가 ‘저들은 화장만 좀 고친 거야’라는 식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무엇보다 남북 대화를 복원해야 한다. 당장 총리급 회담을 제안하면 된다. 2007년 11월 서울에서 남북 총리회담이 열렸다. 그때 2008년 상반기에 두 번째 회담을 열기로 했으나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실현되지 못했다. 현 정부의 의지만 있으면 북한도 받아들일 것이다. 특히 북·미 정상회담이 가장 유효한 최고 수단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북한이 안심하고 핵을 폐기할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 현 정부 들어 1년7개월 동안 남북 당국자 회담이 한 번도 없었다. 외교안보팀의 실력에 문제가 있다.

외교안보팀에 문제가 많다는 것인가?

외교안보팀을 바꾸어야 한다. 한 예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에 북한 조문단이 왔을 때도 외교안보팀은 조문단의 의도를 통민봉관(通民封官)이라고 보았다. 그것은 큰 오판이었다. 대통령의 판단을 그르치게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민주개혁 세력의 대통합 내지 대연합론이 나왔는데 별다른 진전이 없어 보인다.

대통합이라는 말은 무성했지만 강물을 손으로 움켜쥔 것이다. 손에 쥔 것이 없다. 말의 허망함만 남았다.

무엇이 문제인가?

결국, 기득권의 문제이다. 통합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내 앞에는 무엇을 놓아야 한다’라고 말하면 그 진정성을 잃게 된다. 두 전직 대통령을 떠나보내면서 그 정부를 만들었던 국민들의 요구는 ‘제3기 민주개혁 정부를 수립하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최대 가치이다. 그렇다면 기득권을 포기하면서 통합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 입에서 ‘저 사람들이 김대중·노무현 시대를 밑거름으로 해서 더 도약하고자 치열하게 모색하는구나’라는 말이 나온다.

민주개혁 진영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기본으로 돌아가 국민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면 된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바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것과 관련해서 현 정권과 경쟁해야 한다. 이대통령이 친서민 중도실용 노선을 파고들어왔다.
이것을 양보하면 안 된다. 어떤 것이 진짜인지를 놓고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민생 현장으로 가야 한다. 대표적인 곳이 용산 참사 현장이다. 오늘(24일) 아침 정운찬 총리 후보자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총리가 되면 용산에 오십시오’라고 제안했고, ‘가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비정규직 문제 역시 상당히 중요한 문제이다.  

민주당에 복당하는 문제는 어떻게 되어가는가?

내 고민은 복당하는 데 있지 않다. 지금 중요한 것은 민주개혁 세력의 재집권 가능성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국민의 시선을 붙잡아야 한다. 하지만 실기(失機)했다.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를 통해 중요한 기회가 주어졌는데 그것을 놓쳤다. 국민들은 두 분의 서거를 통해 민주개혁 진영 쪽을 쳐다보았는데, 아무런 변화나 흥미로운 일이 없었다. 그러니 다시 시선을 거둔 것이다. 지금은 이 심각한 위기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나는 민주당에서 정치를 시작했고, 사람들도 민주당 사람인 줄 안다.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정작 중요한 것은 정권을 되찾아 오는 것이다. 나는 지난 대선에서 참패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큰 책임이 있다. 어떤 역할을 하더라도 다시 정권을 되찾아오는 데 기여할 것이다.

정세균 대표와는?

이런저런 자리에서 조우한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 국장 이후에는 만난 적이 없다.

동교동계 인사들과 자주 접촉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권노갑 고문과 만나면서 정국 전반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민주당에 복당하는 것이 아닌 ‘제3의 길’을 선택할 수도 있는가?

…….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포스트 DJ’와 차기 ‘호남 맹주’에 대한 관측이 무성하다.

나는 호남 정신을 이야기하고 싶다. 호남 정신은 호남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호남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반독재 민주화와 인권·평화 정신이 어찌 호남만을 위한 정신인가. 우리 전체를 위한 것이다. 더 이상 평화가 흔들리지 않도록, 서민의 삶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포스트 DJ’의 정확한 의미라고 본다.
그 연장선에서, 호남을 배제한 전국정당론은 용납할 수 없다.  특정 지역 배제는 특정 정신의 배제로 연결된다. 호남 정신을 기반으로 다시 집권할 수 있는 전략과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그렇다면 친노 신당 창당 움직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친노 신당을 추진하는 분들이 ‘민주당은 호남당’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김대중·노무현 시대를 뛰어넘어 새로운 사고와 지평을 여는 정치를 해야 할 사람들이 구시대 정치를 답습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래서 그 창당에는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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