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제도는 이 땅의 청년들에게는 희망이자 절망이다. 미처 취업하지 못한 이들이 취업이라는 좁은 문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안타깝게 잡고 있는 희망의 끈이자 그 속에서 불안감에 시달리고 때때로 좌절감을 맛보야 하는 ‘어두운 숲’이기도 하다. 허드렛일이나 하면서도 잘릴까 봐 불평 한마디 꺼내지 못하다가 계약 기간이 끝나면 다른 자리를 찾아 헤매는 인턴이 비일비재하다. 상당수는 단지 ‘어떻게든 취업에 도움이 되겠지’라거나 ‘집에서 노느니 경험이나 쌓자’라는 식으로 분명한 목적의식 없이 인턴에 지원한다. 가끔 인턴 생활에서 얻은 경험을 밑천 삼아 취업에 성공하는 사례가 전설처럼 회자된다.
지난해 초 삼성전자에 입사한 서성표씨(29)는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다. 서씨는 주위에서 놀랄 정도로 인턴 경력을 쌓았다. 숭실대 국제통상학과에 다니면서 경기도 철산초등학교에서 영어 봉사 장학생으로 일했다. 그는 외국인 교사와 초등학생 사이에서 의사 소통을 돕는 업무를 맡았다.
6개월 인턴 기간이 끝난 뒤에는 제약업체 종근당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일반의약품(OTC) 마케팅 부서원을 보조하며 의약품 생산과 판매 업무를 경험했다. 종근당 인턴이 끝나자 KBS TV 편성기획 관리팀에서 일했고, 자산운용협회에서 3개월 근무했다. 삼성증권까지 포함하면 다섯 곳에서 인턴을 지냈다. 서성표씨는 “남과 다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인턴으로 일했다. 사회 경험이 많다는 것이 취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초 기대와 달리 화려한 인턴 경력은 취업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서씨는 “인턴 경력이 당락을 결정하는 변수는 아니라고 판단한다. 기업 인사팀 관계자도 인턴 경력을 단순 사회 참여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요즘 입사 전형 합격자 다수가 인턴을 경험했다고 한다. 대학에 재학할 때나 취업 준비생 시절 한두 번씩 인턴을 했기 때문이다. 이 탓에 웬만한 인턴 경험이 아니면 인사 담당자의 눈에 띄지 않는다. 서씨는 “특출한 인턴 활동이 아니면 (인턴 경력은) 이력서 빈 칸 채우기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실무를 배운다는 측면에서 인턴 제도의 효용성은 거의 없다. 실습사원이라는 인턴의 사전적 정의가 무색하다. 취업을 준비 중인 홍성준씨(28)는 실무를 배우겠다고 인턴에 지원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치부한다. 홍씨는 지난 2007년 7월 한 컴퓨터시스템업체에서 인턴을 지냈으나 업무를 파악하고 실행하기에는 인턴 기간이 너무 짧았다. 홍씨는 “회사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 외에 업무를 실습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다”라고 말했다.
인턴들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업도 찾기 힘들다. 박동수씨(27)는 “회사에서는 인턴들을 그저 잠시 시간만 때우고 가는 학생 정도로 여긴다. 인턴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인턴은 초단기 비정규직 노동자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인하대 항공우주학과 졸업자 이승근씨(29)는 지난해 항공우주연구원에서 인턴을 지냈다. 7개월 남짓한 인턴 기간에 이씨는 뚜렷하게 업무가 주어지지 않아 인턴끼리 삼삼오오 모여 시간을 때우기 일쑤였다. 이씨는 “인턴을 뽑는 회사는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학과나 취업 활동을 접고 인턴으로 들어온 만큼 회사가 책임감을 갖고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백화점에서 인턴을 지낸 김민정씨(24)는 “인턴십이 취업 예정자에게 교육이나 훈련의 기회를 제공했으면 좋겠다. 인턴십이 예비 취업자들에게 심부름이나 하고 끝나는 기간이라는 것이 아쉽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인턴으로 근무한 3개월 동안 문서 작업과 보조 업무로 시간을 보냈다.
자신의 적성에 맞게 선택하면 좋은 기회 될 수도 있어
이와 달리 중앙대 경영학과 4학년생 곽동곤씨(24)는 “(인턴 생활은) 취업에 앞서 지원 분야가 자기 적성에 맞는지 알아볼 수 있는 기회이다”라고 말했다. 곽씨는 지난해 3~6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인턴십을 수료했다. 3개월 남짓한 인턴 생활에서 곽씨가 얻은 최대 성과는 자신의 적성이 공기업 문화에 적합한지 확인한 것이다. 곽씨는 “(대한상공회의소) 신입 사원 상당수가 사기업에서 2년가량 근무하다 적성이 맞지 않아 이곳에 재취업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홍성준씨는 인턴으로 일할 업체에 닥치는 대로 지원할 것이 아니라 정규직 채용이나 취업과 연계할 것을 권유한다. 홍씨는 “불안하다고 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말고 자기가 궁극적으로 취업하고자 하는 영역과 인턴 경력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가늠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인턴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라고 말했다.
윤정수씨(31)는 정규직 채용을 염두에 두고 인턴으로 일할 업체를 선택해 평소 꿈꾸던 분야에서 일자리를 찾았다. 윤씨는 지난 2006년 4학년 여름 방학 기간 동안 한글과컴퓨터사에서 인턴을 지냈다. 프로그램 개발 업종에 취업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후 그에 맞는 업체를 찾았다. 윤씨는 무보수를 감수하고 자기가 꿈꾸던 리눅스 프로그래밍 업무를 할 수 있는 한글과컴퓨터를 찾아갔다. 당시 컴퓨터 운영체제(OS) 리눅스 붐이 일자 한글과컴퓨터는 개발자 30여 명을 거느리고 아시아리눅스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윤씨는 인턴 4명과 함께 리눅스 프로그래밍 업무에 참여했다. 프로그래머 선배들과 함께 코딩 작업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리눅스 프로그래밍을 배우고자 했다. 윤씨는 “내 인턴 생활은 성공적이었다. 미래 직장과 연관이 있는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울 수 있어 취업에도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라고 말했다. 윤씨는 지금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업체 어플라이드머티리어즈(Applied Materials) 사 한국 법인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한다.
잔심부름에 시달리며 패배감 느끼기도
윤정수씨는 “자기 전공이나 적성에 맞춰 남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경험이나 지식을 쌓아야 한다. 계획 없이 인턴 자리를 전전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취업 준비생 상당수는 중앙 행정 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선발하는 행정 인턴은 정규 취업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박동수씨는 “정부가 시행하는 인턴 제도는 실업률을 낮추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 행정 기관에서 복사를 하거나 잔무 따위를 처리하며 6개월가량을 보내는 것은 시간 낭비이다”라고 말했다.
그나마 인턴 생활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이들과 달리 어둠의 숲에서 헤매는 인턴들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안준영씨(24)는 지난해 초 정부 산하 연구소에서 조사원 보조로 인턴 생활을 시작했다. 해당 연구소에서 일한 선배의 추천으로 현장 조사, 설문 조사, 데이터 정리 업무를 맡았다. 3개월 남짓했던 인턴 생활은 안씨에게 지옥과 같았다. 조사원을 차에 태우고 운전하거나 서류 심부름을 하는 일이 고작이었다. 안씨는 조직 내에서 존재감을 느낄 수 없었다. 안씨는 지금 정신적 공황 상태에 있다. 시키는 대로 살다가 사회에 나왔으나 취업에 거듭 실패하면서 그는 어느새 ‘루저’가 되었다. 그에게 인턴은 루저임을 확인하는 제도에 불과하다.
안씨는 “과거 죄인들의 이마에 문신을 새겼듯이, 인턴은 당신들은 쓸모없는 잉여 인간이라고 낙인 찍어주는 제도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스스로 패배자라고 일컫는다. 안씨는 “취업이 지상 과제이고 취업하지 못한 자는 살 수 없는 세상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 그런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인턴을 양성하는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인턴에게 미래가 없듯이”라고 말했다.
이나래씨(24)는 인턴 제도가 초래한 비극적 현실을 거부한다. 친구들이 인턴 자리를 얻기 위해 잇따라 휴학하자 이씨도 휴학계를 냈다. 그녀가 들어간 곳은 서울복지시민연대라는 시민단체였다. 이씨는 지난해 4~9월까지 6개월 남짓 시민단체 간사로 일하면서 이른바 ‘비주류’의 삶을 경험하고자 했다. 윤씨는 “내가 겪은 인턴 아닌 인턴 생활 기간이 취업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의문스럽지만 ‘사람과 노동의 가치’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값진 시간이었다”라고 말했다.
해마다 신규 취업 희망자가 50만명 이상 쏟아지는 와중에 일자리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고용 없는 성장’은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주된 화두가 될 전망이다. 뒤늦게 정부는 일자리 만들기를 올해 최우선 국정 과제로 꼽았다. 올해 예산만 12조원을 책정했다. 갖가지 실업 정책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청년 실업 대책으로 인턴 제도밖에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 땅의 청년들은 인턴이라는 칼날 위에 위태롭게 서 있어야 할 듯하다.
이나래씨(24)는 인턴을 거부한다. 이씨는 인턴 제도가 이 땅의 청년들이 숙명적으로 안고 있는 불안을 악용해 노동 착취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변태적 고용 형태라고 규정한다. 그녀는 지금 서울복지시민연대라는 시민단체에서 간사로 활동 중이다.
인턴이 되기를 거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취업 준비생은, 보수가 높고 주변에서 선망의 눈길을 보내는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 흔히 스펙이라고 하는 것을 쌓기 위한 과정의 하나로 인턴에 지원한다. 허나, 인턴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인턴은 일을 시켜보고 아니다 싶으면 떨어뜨리면 된다. 기업에게는 부담 없는 존재들이다. 단물만 쪽쪽 빨아먹고 획 던져버리면 되지 않나. 인턴 하는 친구들은 부당 노동 행위를 당해도 신고조차 못한다. 잘릴까 봐 불안한 탓이다. 그런 불안에 시달리다 인턴 기간을 채우고 또다시 인턴 자리를 찾아 기업들을 기웃거린다.
인턴 제도를 활용해 정규직으로 취업하는 사례가 있지 않는가?
이력서에 한 줄 더 넣기 위한 것이라면 맞는 말이다. 20대 청년들은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인턴 자리를 놓지 못하고 있다. 피고용자로서 존중받아야 할 기본권마저 유보하면서까지. 20대 청년들은 이런 사회가 불안하다. ‘88만원 세대’에 이어 ‘인턴 세대’라고 불리는 20대의 현실에 불안감을 느낀다.
앞으로 취업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남들처럼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토익 공부에 매달릴 생각이 없다. 내가 즐거울 수 있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분야를 공부할 계획이다. 영어 구사 능력을 키우고 평소 관심이 있던 조사방법론을 공부하고자 한다. 자신을 그럴싸하게 보이는 상품으로 만드는 데 치중하기보다 배우는 즐거움을 선택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