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줄 모르는 ‘장외 졸전’
  • 김세옥 | 기자 ()
  • 승인 2010.06.29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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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독점 중계 둘러싼 방송사 간 ‘태클’ 계속돼…뉴스·예능 방송 등에서 잇달아 충돌 빚어

남아공월드컵에 출전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원정 첫 16강 진출이라는 새 역사를 쓰는 동안 지상파 방송사들은 중계권을 사이에 놓고 상호 비방하는 역사를 만들고 있다. KBS는 뉴스를 통해 ‘월드컵 채널’로서의 SBS의 자격과 상업주의를 문제 삼고 있다. SBS는 이를 반박하면서 월드컵 기간을 틈타 KBS가 추진하는 수신료 인상의 타당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지상파 방송사 모두 ‘반칙’의 전과가 있는 만큼 중계권 다툼의 책임이 어디에 있다고 잘라 말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남아공월드컵 개막을 전후해 벌어진 갈등은 SBS가 독점적 지위를 마음껏 행사한 데서 시작되었다.

 

▲ 서울광장에 설치된 SBS의 월드컵 뉴스 부스. ⓒSBS 제공

 

먼저 취재와 관련한 부분이다. 블로거 ‘미디어몽구(mongu.net)’가 촬영한 영상에 따르면 그리스전이 열렸던 지난 6월12일 SBS측 안전 요원들은 다른 언론사들이 거리 응원을 취재하는 것을 막았다. KBS는 곧바로 해당 동영상을 바탕으로 SBS의 취재 방해를 비판하는 보도를 내보냈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SBS는 다음 날인 13일 “일부 안전 요원이 미숙하게 대응했다”라고 해명했다.

KBS는 또 월드컵 채널로서 SBS의 자격 문제를 들고 나왔다. KBS는 지난 6월14일 <뉴스9>에서 자체적으로 조사한 SBS 난시청 현황 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1천9백10만 가구 중 4백40만 가구(23%)가 SBS를 직접 수신할 수 없고, KBS가 중계하면 60만 세대의 시청자가 더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SBS는 다음 날인 15일 <8뉴스>에서 방송통신위원회 해명 자료를 근거로 KBS가 모집단을 왜곡해 SBS의 가시청 가구 비율을 줄였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KBS는 이후에도 <뉴스9>를 통해 ‘FIFA 돈방석, SBS 독점 한몫 톡톡’(15일), ‘전광판 거액 중계료, 월드컵 찬물’(16일) 등 SBS의 월드컵 단독 중계를 비판하는 내용의 보도를 계속해서 내보냈다. KBS는 이에 앞서 지난 5월27일 월드컵 중계권과 관련해 사기와 업무 방해, 입찰 방해 등의 혐의로 윤세영 회장을 비롯한 SBS 임직원 여덟 명을 형사 고소했다. 

단독 중계에 대해 KBS가 집중 태클을 걸자 SBS도 반격에 나섰다. KBS가 밀어붙이고 있는 수신료 인상 시도를 비판한 것이다. SBS는 KBS의 수신료 공청회가 열린 지난 6월14일 <8뉴스>에서 “KBS가 정치적으로 독립되어 있지 않고, 보도도 공정하지 못하다” “국회에서 통과되어도 국민적 저항이 나타날 수 있다”라는 등 학계와 시민사회의 반대 의견을 집중 보도했다.

SBS는 중계권에 대한 독점적 지위 역시 마음껏 과시하고 있다. KBS 예능 프로그램인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이 지난 6월13일과 20일 방송에서 그리스전 영상을 내보낸 것에 대해 SBS가 문제를 제기하며 강경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SBS는 “경기 중계권자가 아닌 KBS와 MBC 등은 뉴스 보도용으로 월드컵 영상을 2분만 사용할 수 있다”라며 ‘남자의 자격’에 경기 장면이 나간 것은 FIFA 규정을 위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KBS는 월드컵 경기 영상 사용에 관한 합의서에 ‘뉴스 외 사용 불가’라는 문구가 없는 만큼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다른 방송사의 공세와 일부 시청자들의 비판적 시각에 곤혹스러워하던 SBS는 지난 6월23일 한국이 나이지리아와 비기며 16강 진출에 성공하자 일단 한숨 돌리는 모양새이다. 한국방송광고공사(이하 코바코)에 따르면, 나이지리아전까지 SBS가 광고를 판매한 금액은 6백50억원이었다. 중계권료와 남아공 현지 제작 인력 파견 등으로 1천100억원 가까이를 쓴 SBS 입장에서는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코바코의 한 관계자는 “일부 언론에서는 SBS의 광고 매출이 (현재까지) 8백억 이상이라고도 하는데, 터무니없는 숫자이다. 16강까지 광고를 완판한다 해도 70억원 이상의 매출을 추가로 더 올리는 것 이상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양휘부 코바코 사장도 지난 6월21일 국회 문방위원회 업무보고에 참석해 “16강에 진출해도 SBS의 광고 매출은 1천억원 정도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노영환 SBS 홍보팀장은 “월드컵 매출과 관련해서 추측성 보도들이 계속되는 것은 공시 위반이 되기 때문에 조심스럽다”라면서도 “16강 진출에 따라 시청률 등의 상승이 전망된다”라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순수 광고 매출만으로 흑자를 달성하기는 어렵지만 뉴미디어 부가 판권 수익 등을 합하면 적자는 보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라고 말했다.

SBS는 한국 대표팀이 여세를 몰아 8강까지 오르면 16강 진출로 FIFA에 추가 지급해야 할 비용을 감안해도 이익을 내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재발 막을 대책 세워야”…일부 의원은 방송법 개정안 발의

아울러 단독 중계에 대한 비판 여론도 조금은 완화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눈치이다. SBS의 한 관계자는 “월드컵 첫 원정 16강 진출에 온 국민이 환호하고 있는 만큼 KBS 등도 일련의 분위기를 감안하지 않겠나. 진통은 있겠지만 새로운 미디어들이 경쟁하는 환경 속에서 SBS가 스포츠에 강점을 가진 채널로 자리 잡는 과정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SBS가 2016년까지 동·하계 올림픽, 2014년 월드컵 중계권도 독점 확보하고 있어 방송사 간 갈등과 반목은 쉽게 해소되기 어려워 보인다. 문제는 중계권 논란이 공공재인 전파를 사용하는 방송의 공적 영역과 사적 기업의 이윤 추구라는 측면에서 충돌한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김경환 상지대 교수는 “근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라면서 중계권 분쟁의 핵심이자 편법 논란까지 일고 있는 ‘보편적 시청권’ 도달률 산정 기준을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문순 민주당 의원은 지난 6월23일 월드컵 등 국민적 관심이 높은 행사를 중계하는 방송사가 중계권을 다른 방송사에 판매할 때 중계 방송권의 총 계약 금액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제공토록 하는 내용 등이 담긴 방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보편적 시청권을 보장하기 위해 법으로 방송사들을 규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방송사들의 자율적인 노력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있다. KBS의 한 PD는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코리아풀’을 유지해 한국방송협회 차원에서 이를 깨는 쪽에 강력한 페널티를 주는 것이 방송사의 자율권도 보장할 수 있고 중계권료가 폭등하는 것을 막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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