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수신료 앞에서 ‘내우외환’
  • 이선희 | 국민일보 기자 ()
  • 승인 2010.07.1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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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노조 파업으로 연내 인상 추진에 제동 걸려…‘KBS 블랙 리스트’ 파문까지 겹쳐 난항 예상

연내 수신료 인상을 목표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KBS가 암초에 부딪쳤다. KBS 새 노조(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가 지난 7월1일부터 ‘공정 방송 사수’를 기치로 총파업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이 파업은 ‘수신료 여론전’에서 새 노조가 수신료 인상 반대를 주장하는 시민단체 등 진보 진영의 프레임과 궤를 같이하는 모양새를 띠고 있어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지금 KBS는 말 그대로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현재 KBS에는 두 개의 노조가 있다. 조합원 4천2백여 명으로 구성된 기존 노조(KBS 노동조합)와 지난 3월11일 출범한 새 노조가 그것이다. 새 노조는 기술 직군 위주의 기존 노조와 달리 본사 PD의 80%, 기자의 50%가 가입되어 있을 정도로 PD·기자 직군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가 7월8일 KBS 신관 돌계단에서 파업 8일차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캠프 참모였던 김인규 KBS 사장 취임에 반대하는 총파업이 부결되자, 이른바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에 미온적인 집행부에 실망한 KBS 노조원들이 기존 노조를 탈퇴하고 새 노조를 만들었다. 이후 시사 프로그램 폐지, 보도의 기계적 중립과 연성화 등에 불만을 느낀 젊은 기자·PD들이 가세하면서 가입자를 늘려 현재 9백20여 명에 달한다.

새 노조는 그동안 사측과 임금 단체협상(임단협)과 공정 방송 쟁취를 놓고 지난 4월부터 24차례에 걸쳐 교섭을 진행했다. 교섭이 결렬된 후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도 실패했고, 결국 지난 7월1일부터 ‘임단협과 공정 방송 쟁취, 조직 개악 저지’를 위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새 노조는 수신료 인상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수신료 여론전으로 매우 민감한 지금 시점에서 파업이 강행된 것만으로도 KBS 사측 입장에서는 매우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수신료 여론전은 KBS가 지난 6월14일 공청회를 열고 30년째 2천5백원으로 동결된 수신료를 최대 6천5백원으로 올리는 안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펼쳐졌다. 이후 수신료 인상을 반대하는 5백여 개 시민단체와 민주당 등 야 5당이 모여 ‘KBS 수신료 인상 저지 범국민행동’을 발족하며 불이 붙었다. 이들은 KBS의 공정성 결여와 신뢰도 하락을 지적하며 수신료 인상을 저지하고 있다. 따라서 ‘공정 방송 쟁취’를 내건 새 노조의 파업은 수신료 여론전에서 범국민행동측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표면적으로 KBS 새 노조 파업의 직접적인 계기는 노사 간 임단협 결렬에 따른 것이었다. 새 노조는 임금 10% 인상, 노조 전임자 요구, 별도 노사협의체 요구 등 조합원의 근로 조건과 지위에 대한 조항을 사측에 요구했다. 하지만 단체협상의 최대 쟁점은 공정 방송 관련 조항(공정방송위원회 설치 등)에 있었다. 새 노조가 사측과 뉴스·프로그램 전반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인 공정방송위원회(약칭 공방위)의 별도 설치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공방위는 매달 한 차례 사측과 노측이 모여 프로그램 전반을 점검하고 내용을 조절하는 회의이다. 이미 KBS 사측은 기존 노조와 공방위를 운영 중이다. 하지만 새 노조는 이 기구의 역할이 미흡하다고 판단해 별도의 공방위를 요구한 것이다. 이에 대해 사측은 “새로운 노동조합이 생길 때마다 별도의 공방위를 설치한다면, 어떤 기준으로 방송의 공정성을 맞춰나가야 하는지 혼란이 생긴다”라면서 새 노조의 요구를 근로 조건과 상관없는 ‘정치적 콜’이라고 규정하며 거부했다.

한편, 기존 노조는 새 노조의 총파업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기존 노조 최성원 공정방송실장은 “같은 언론 노동자의 입장에서 KBS본부가 소속 조합원을 보호하기 위한 기본적인 조처인 단체협약을 사측과 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깝다”라는 원론적인 입장만을 밝히고 있다. 

김경환 상지대 언론광고학부 교수는 “KBS가 안팎으로부터 시사 프로그램의 편향성과 특정 MC의 하차 등 공정성에 대한 지적을 받는 상황에서, 공정성을 되찾기 위한 파업은 예견 가능한 일이다. 파업이 여론의 지지를 받는다면 KBS에 대한 공정성 요구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새 노조는 공방위 설치를 필두로 한 공정 방송 쟁취 요구가 달성될 경우, 장기적으로는 KBS의 수신료 인상에도 긍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새 노조 관계자는 “수신료 인상에 대해 여론이 부정적인 이유는 KBS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요구대로 공방위가 설치되어 KBS의 공정성이 높아진다면 오히려 지금처럼 극렬한 수신료 인상 거부 운동은 없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사측 “내부에 파업 반대 여론 많다” 자신감

하지만 당장 연내에 수신료 인상을 염두에 둔 KBS 사측 입장에서 파업은 장애물일 뿐이다. 무엇보다 파업으로 인한 방송 파행이 즉각적인 시청자의 불만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KBS 경영진이 새 노조의 파업 직후 간부들에게 시청자의 불만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상적인 방송에 최선을 다해줄 것을 독려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새 노조의 파업은 노조의 단체교섭 응낙 가처분 신청에 대한 서울 남부지방법원의 2심 선고가 있는 7월15일이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한상덕 KBS 홍보주간은 “사내 게시판에 파업 중인 새 노조를 질타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와 있다. 수신료 인상을 위해 일치단결해야 하는 상황인 만큼, 파업을 조속히 해결하겠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 방송인 김미화씨의 ‘KBS 블랙리스트’ 파문까지 불거지면서 향후 수신료 여론전이 상당히 어렵게 전개될 것으로 예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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