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앞의 고난도 ‘3차 방정식’
  • 채은하 | 프레시안 기자 ()
  • 승인 2010.07.26 18:5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영진·새 노조·기존 노조, 파업 관련해 복잡한 구조로 얽혀…기존 노조와의 관계 때문에 협상 힘들어

요즘 KBS에는 바람 잘 날이 없다. KBS 새 노조(전국언론노조 KBS본부, 본부장 엄경철)가 지난 7월1일부터 파업에 돌입해 벌써 20일째를 훌쩍 넘겼고, 방송인 김미화씨는 ‘KBS 블랙리스트’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KBS 이사회는 ‘속도전’으로 올해 최대의 과제인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고 있지만, 오히려 여론은 ‘수신료 납부 거부 운동’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이 와중에 눈에 띄는 것은 KBS의 대응 방식이다. 방송인 김미화씨가 자신의 트위터에 “KBS에 ‘블랙리스트’가 실제로 존재하고 돌아다니는지 밝혀달라”라는 글을 올리자 KBS는 즉각 ‘명예훼손’으로 김씨를 고소했다. ‘블랙리스트’ 의혹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KBS의 고소로 파문이 커졌다. KBS 내부에서도 “조용히 지나갔으면 묻혔을 일을 과잉 대응해 오히려 문제를 키웠다”라는 지적이 나온다. KBS는 고소를 취하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KBS의 한 관계자는 “수신료 인상에 앞서 ‘잡음’을 없애려는 조급한 대응이 오히려 일을 키웠다. 이제 KBS와 김미화씨의 자존심 대결이 되어버렸다”라고 촌평했다.

KBS 새 노조의 파업에 대해서도 사측은 ‘수신료 인상 걸림돌’이라는 시각을 내비친다. 이에 대해 KBS 새 노조는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수신료 인상에 찬성한다”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KBS 사측과 기존 노조에서는 이번 파업을 ‘수신료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이 강하다.

물론 KBS 새 노조의 파업에 걸려 있는 변수가 수신료 문제만은 아니다. 새 노조의 한 관계자는 “지금 파업은 KBS 경영진과 새 노조 그리고 기존 노조 간의 3차 방정식이다”라고 말했다. 이 ‘3차 방정식’이 가장 복잡하게 돌아간 날이 지난 7월20일이었다. 당시 KBS 새 노조와 사측이 잠정적 합의안을 도출하고, 새 노조는 ‘비공개 조합원 총회’까지 열었으나, 총회 직전에 사측이 입장을 바꾸면서 무산되었다. 엄경철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회사가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사측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라고 토로했다.

KBS 사측과 새 노조 간 협상이 쉽지 않은 것은 기존 노조와의 관계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애초에 KBS 새 노조가 김인규 사장 취임 반대를 두고 갈등을 빚다 기존 노조에서 탈퇴한 기자와 PD가 중심이 되어 창설한 것처럼, KBS 새 노조와 기존 노조는 경쟁 및 갈등 관계에 있다. 특히 KBS 새 노조가 파업을 시작한 이래 조합원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도 KBS 기존 노조의 경계심을 자극하고 있다. 파업 찬반 투표 당시 8백45명이던 새 노조의 조합원 수는 파업 돌입 직전 영상제작국 조합원들이 추가로 가입하면서 9백명을 돌파했고, 그 이후로도 꾸준히 늘어 7월21일을 기준으로 9백76명이 되었다. KBS 새 노조 관계자는 “지역 조합원들이 추가 가입한 것 등까지 고려하면 파업 기간 동안 1천명을 무난히 넘길 것으로 보인다. KBS 사측이 새 노조를 교섭 대상으로 인정하면 몇백 명 단위의 추가 가입자가 늘어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 지난 7월8일 언론노조 산하 KBS2노조가 KBS 신관 돌계단에서 파업 8일차 결의대회를 갖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김사장, 기존 노조 기반한 사내 강경파 비판   

공정방송위원회(약칭 공방위) 설치 문제도 민감하다. 노조가 ‘방송의 공정성’에 대해 사측에 직접 요구할 수 있는 창구이기 때문이다. 공방위가 설치될 경우 KBS 새 노조는 사내에서 기존 노조에 못지않은 영향력을 갖게 된다.

KBS 사측이 새 노조와의 협상에 지지부진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가 기존 노조에 대한 ‘눈치 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김인규 사장은 자신의 절대 과제인 ‘수신료 인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새 노조와의 협상 문제를 하루빨리 매듭짓고 싶어 하지만, 사내 강경파의 반대에 막혀 운신의 폭이 좁다는 것이다. 협상 결렬 다음 날인 7월21일 김사장은 오전 임원회의에서 “회사를 파국으로 몰고 가려 하느냐”라며 사내 강경파들을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내 비판 세력으로 자리 잡은 KBS 새 노조와 ‘낙하산’ 논란에도 자신의 취임을 용인해준 기존 노조 그리고 기존 노조에 기반한 사내 강경파 사이에서의 ‘균형 잡기’가 김사장의 최대 과제인 셈이다. 일단 KBS 새 노조의 파업은 7월 마지막 주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KBS 새 노조 관계자는 “사측은 일단 고법에 걸려 있는 ‘단체교섭 응낙 가처분’ 소송 결과를 보겠다는 식이다. 7월 마지막 주 초에 판결이 나오고 나면 협상은 급물살을 탈 것이다”라고 말했다.

‘블랙리스트’ 파문 등 안팎의 잡음과 KBS 내부 갈등에도 수신료 인상은 계속 ‘추진 중’이다. KBS의 여당측 이사들은 7월 중 전문가 및 사내 의견 청취, 공청회 등을 거치며 수신료 인상에 필요한 절차들을 진행시키고 있다. 적어도 오는 8월까지는 KBS 이사회와 방송통신위원회의 의결 절차까지 거친다는 로드맵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 일단 야당측 이사들이 KBS의 일방적인 수신료 인상에 반대해 별도의 지역 공청회를 여는 등 반발하고 있고, 시민사회에서도 ‘수신료 납부 거부 운동’이 시작되었다. KBS가 컨설팅 결과라며 제시한 4천5백~6천5백원 인상안을 두고도 반발이 적지 않다. 6·2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한나라당이 정치적 역풍이 될 가능성이 큰 수신료 인상안을 적극적으로 처리해줄지도 역시 알 수 없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