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사면은 ‘범죄’이다
  • 전원책 | 변호사 ()
  • 승인 2010.07.26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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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이해 얽힌 특별사면은 법 정신 무시하는 행위…‘유권무죄·무권유죄’ 인식 조장할 수도 있어

 

해마다 광복절이나 연말이 다가오면 으레 사면설이 나돈다. 문민정부 이후 1년에 두 차례씩 벌어지는 연례 행사이다. 그런 사면이 오죽 보편화되었으면 <광복절 특사>라는 제목의 영화까지 나왔겠는가. 특사가 있을 때마다 법치주의를 파괴한다느니 사법권을 침해한다느니 하는 비난이 뒤따랐다. 그래도 그때뿐이었다. 수혜자만 있고 ‘피해자’가 있을 턱이 없으니 이내 잠잠해졌다. 사면권을 제한하는 입법 조치는 사면심사위원회를 설치하는 것 외에 없었다.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일반사면보다 특별사면, 이른바 ‘특사’(特赦)를 선호하는 것은 대상자가 다분히 정치적 판단을 요하는 특정인들인 데다가 특사에 대통령의 ‘시혜’라는 의미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거기다 어느 정권에서든 ‘정권의 혹’ 같은 이들은 있기 마련이다. 함부로 잘라낼 수도 없는 이 혹을 무리 없이 다스리려면 반대편에 있는 정적(政敵)의 형편도 살펴야 한다. ‘눈엣가시’ 같은 정적에게도 특사의 시혜가 베풀어지는 이유이다. 쉽게 말하면 공생(共生)이요, 정적에 대한 회유이다. 이러다 보니 이 나라의 정계 실력자들이 죄를 짓고 감옥에 갔다가 만기 출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리고 사면 뒤에는 어김없이 복권(復權)이 뒤따른다. 파렴치한 범죄를 저질렀던 자도 복권하면 다시 정치에 나서 마치 자신이 핍박받은 듯 위장하고 다시 고위직에 오른다. 그런 자일수록 동료 정치인들이 범죄를 저지르면 엄단해야 한다고 큰소리를 치는 것을 보면 후안무치하기가 짝이 없다.

경제인 역시 마찬가지다. 정치 권력만큼이나 금력도 세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여야 가릴 것 없이 이 나라 권력층의 ‘이너 서클’은 혈맥·혼맥으로 얽혀 있고 학연·지연으로 뭉쳐 있다. 그러니 온갖 지저분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경제인들이 감옥에 가는 경우는 아주 드물고, 설령 간다 한들 그곳에서 썩는 일은 결코 없다. 그래서 당연히 특별사면에서 늘 주목받는 이들은 정치인과 경제인들이다.

올해도 정부는 광복절을 맞아 수천 명을 대상으로 특별사면 및 복권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정부 들어 다섯 번째 특사이다. 이 정권이 사면한 사람은 4백70만명에 이른다. 대선 때 사면권을 남용하는 폐단을 없애겠다고 공약한 것이 헛 공약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검토 중인 사면 대상에는 정치인과 경제인은 물론이고 지난 18대 총선에서 선거법을 위반해 형(刑)이 확정된 선거 사범들까지 포함되어 있다.

지난해 말 수많은 비난을 무릅쓰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사면했을 때 끝내 명단에서 빠졌던 경제인들이 절치부심 대거 사면 대상으로 올라 있는 것이다. 당시 전경련 등 경제 5단체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등 기업인 78명의 사면·복권을 청원했었다. 

 

▲ 2007년 12월24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비리 재벌 총수 및 정치인에 대한 사면 중단과 양심수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당한 사면 막는 장치도 제왕적 대통령제에서는 무용지물

그래도 누구보다 이번 사면의 핵심은 서청원 전 친박연대 대표이다. 서 전 대표는 지난해에도 사면설이 꾸준히 나왔다. 그럴 때마다 친박연대는 입조심을 했다. 올해에는 지방선거 전 친박연대 스스로 한나라당에 합당 선언을 해버렸다. 공을 한나라당 지도부에 넘긴 것이다. 청와대부터 박근혜 전 대표의 심기를 헤아려야 하는 데다 당권을 잡은 친이계가 친박계와 화합을 도모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지금, 서 전 대표를 그대로 둔다는 것은 정권의 큰 부담이다. 거기에다가 서 전 대표의 혐의가 ‘공천 헌금’이다.

솔직히 말해 다들 공천 헌금 문제에 큰소리칠 만큼 순백하지는 않다. 서 전 대표가 수사 선상에 오르자 친박연대는 노골적으로 다른 정당들을 물고 늘어졌다. 왜 우리만 죽이느냐는 항변이었다. 사실 여부는 제쳐 놓고 여기에 공감하는 국민들도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니 서 전 대표 문제는 형평성의 문제로 남아 있었다. 이 역시 정권의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야당의 눈치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정적에 시혜를 베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노건평씨 사면이 거론되는 이유이다. 노건평씨가 누구인가. 이명박 대통령의 최대 정적인 노 전 대통령의 친형이다. 그래서 정부는 사면의 명분을 사회 통합 차원에서 찾고 있다. 정적과의 화해가 왜 사회 통합으로 이해되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솔직히 지방선거에서 ‘죽은 공명에게 쫓긴 사마중달’ 짝이 된 집권 세력이 친노 세력의 앙금을 조금이라도 풀기 위한 이유도 있다. 노씨는 2008년 말 세종증권 매각 비리로 구속 기소되어 올해 초 징역 2년6개월에 추징금 3억원이 확정되었다. 그는 아직 추징금 3억원을 납부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노씨에 대한 사면 역시 강행될 모양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아니면 체면 때문인지 민주당 대변인이 오히려 두 사람의 사면에 반대한다는 논평을 냈다. 

본래 사면권은 대통령이 국가 원수라는 지위에서 가지는 은전권(恩典權)이다. 사면권이 삼심(三審)제로도 걸러지지 못한 판결의 오류를 시정할 마지막 보루라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수사 방법과 기술이 발달하고 과학화한 지금 그런 오판은 찾아보기 어렵다. 실제 오판을 바로잡기 위해 사면권이 발동된 적도 없다. 대통령은 국가 원수 혹은 국정의 최고 책임자이지만 한편 행정부의 수반이기도 하다.

따라서 행정부가 사법부가 내린 판단의 효력을 없애고 사법권을 제한한다는 것은 엄밀히 말해 삼권 분립을 저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사면권은 보이지 않는 내재적인 한계를 지닌다.

이런 한계 때문에 헌법은 사면을 국무회의의 심의 사항으로 하고 있고, 사면법은 사면심사위원회가 사면의 적정성을 심사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러나 제왕적 대통령제 국가에서 그런 규정들은 전혀 제한 장치가 되지 못한다. 누가 감히 대통령의 정치적 의사를 꺾을 것인가.

실제 광복 이후 지금까지 역대 대통령의 사면권은 전부 자의로 행해진 것들이다. 대통령의 결심 여하에 따라 요식적인 절차를 갖추는 것이다.

과거 군사 독재 시절이든 오늘날 문민 정부이든 간에 사면권이 언제나 정략적 판단에 의해서 집행되었다는 데에는 사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사면권이 마치 집권 여당 혹은 대통령의 프리미엄 같은 역할을 해 온 것이다. 사면권 자체가 국민들에게 ‘유권무죄(有權無罪)·무권유죄’라는 또 하나의 비애를 심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점에서는 역대 문민 정부들 모두 분명히 도를 넘었다.

하긴 미국도 대통령의 퇴임 직전 마지막 업무가 자신의 후원자나 동지의 전과를 없애주는 사면권 행사인 경우가 왕왕 있었다. 그래도 정치적인 목적으로 정적을 회유하기 위해서 사면권을 쓰거나, 자기 사람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풀어주지는 않았다.

그런 식의 사면권 행사는 법 정신을 무시하는 또 하나의 범죄에 지나지 않는다. 법률 선진국인 독일이 2차 대전 후 지금까지 고작 네 번밖에 사면권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은 법치를 확립하는 길이기도 하다. 대통령부터 헌법 정신과 헌법에서 정한 사면권을 언제 어떻게 무슨 목적으로 행사해야 하는 것인지 새겨보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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