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예능 프로가 창의력 후퇴시켰다”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10.08.03 18:1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칼린 음악감독 인터뷰 / “일반인의 문화 수준까지 낮춰…뮤지컬 관객도 딱 그 수준 되어버려”

 

ⓒ시사저널 박은숙

TV는 힘이 셌다. 국내 뮤지컬 음악감독 1호로 불리는 박칼린(Kolleen Park) 씨는 최근 KBS 예능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에 출연하면서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지난 7월26일 만난 박감독은 자신을 띄워주기도 한 것이 TV 예능 프로그램인데, 국내 TV의 예능 프로그램에 대해 거침없이 쓴소리를 토해냈다. 

그는 1967년 5월, 미국에서 한국인 아버지와 리투아니아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생활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첼로 학사, 서울대 대학원에서 국악 석사를 받았다. 명창인 고 박동진 선생에게 사사했지만 국적 문제로 전수자가 되지는 못했다. 1996년 뮤지컬 <명성황후>의 음악감독을 맡은 이후 <오페라의 유령> <사운드 오브 뮤직> <페임> <렌트> <시카고> <미녀와 야수> <노틀담의 꼽추> <아이다> <한여름 밤의 꿈> 등의 굵직한 작품을 지휘했다. 현재 킥 뮤지컬 스튜디오와 호원대학교에서 뮤지컬을 가르치고 있다.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유는?

나는 집중해서 짧은 시간에 성과를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다. 연출진이 나를 찾은 이유도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을 모아 집중 훈련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삶에 도전 의식을 가지고 살았고 그것도 하나의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 팬도 많아졌다.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난생 처음 들어보는 질문이다. 유명해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언론 인터뷰도 거의 하지 않는다. TV에서 진행자들이 메인이고 나는 도와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내가 부각되었다. 출연을 결정하기 전에 이 점을 계산하지 못했다.(웃음) 관객에게도 의무가 있다. 뮤지컬을 만드는 사람에게 고품질의 것을 내놓으라고 재촉하면 좋겠다. 돈을 내고 극장에 왔으니 기생처럼 놀아봐라 하는 것이 아니라 놀더라도 똑바로 놀라고 요구해야 한다. 그래야 뮤지컬을 만드는 사람과 관객의 수준이 모두 올라갈 수 있다.

▶우리 뮤지컬의 환경이나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몇몇 배우의 능력은 세계 수준이다. 오기와 열정도 있다. 미국 팀들도 탐낼 정도이다. 한국 사람은 손재주가 좋아 기술력도 수준급이다. 여기에 ‘빨리빨리’ 습성이 더해져 일을 신속하게 진행한다. <명성황후>를 준비할 때 느낀 점이지만 미국에서 1년 걸릴 일을 한국은 한 달 만에 해냈다. 반면에 창의력은 뒤처진다. TV 예능 프로그램이 창의력을 후퇴시켰다. 식당에 왜 TV가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주변 어디든지 TV가 있다. 그리고 유행인지 모르겠지만 TV 예능 프로그램은 무조건 웃기려고 과장된 행동을 보여준다. 이는 일반인의 문화 수준을 낮추어버렸다. 뮤지컬 관객도 딱 그 수준이 되어버렸다. 가벼운 것에 길들여지다 보니 진지한 작품을 지루하게 생각한다. 지난 몇 년 동안 서울 대학로의 창작 공연장도 저급한 TV 예능 프로그램을 그대로 옮겨놓은 곳으로 변했다.

▶뮤지컬도 돈을 벌어야 재투자를 할 수 있지 않나?

먹고사는 문제는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뮤지컬 바닥에 있는 사람은 창의적인 생각을 버려서는 안 된다. 1년에 두어 개 작품은 밥벌이로 출연하더라도 하나쯤은 가슴으로,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작품을 해야 한다. 돈만 좇는 것은 예술가가 아니라 월급쟁이이다. 나도 연기력, 글 쓰는 능력, 음악 능력이 있는 친구들을 발굴하는 것 자체에 재미를 느껴 열정을 쏟았다. 돈은 덤으로 따라왔던 것 같다. 기획자도 장기적인 안목을 가져야 한다. 돈벌이에 급급해서 억지 웃음과 반짝 스타만 추구하다 보니 한국에 마이클 잭슨과 같은 대형 스타가 없는 것이다.

▶가수 비의 음악 지도도 했던 것으로 안다. 가수들의 수준은 어떻다고 보나?

처음에 비가 나에게 왔을 때에는 노래를 못했다. 그는 노력파이다. 노래를 잘해서가 아니라 그 노력 자체를 칭찬해주고 싶다. 김원준도 노래를 썩 잘하는 친구는 아니지만, 관객을 대하는 무대 매너가 남다르다. 이처럼 가수는 여러 형태를 띤다. 다 좋은데 단발성, 즉 반짝 스타는 아닌 것 같다.

▶공연장이 부족하고 입장권 가격도 비싸서 뮤지컬이 대중화되지 않았다는 시각이 있다.

나를 비롯한, 뮤지컬이 불모지였던 때부터 뮤지컬을 시작한 사람들은 해마다 조금씩 대중화되는 것을 느낀다. 시간이 더딜 뿐이다. 티켓 가격이 비싸다는 점도 안다. 뮤지컬 하나가 히트하면 너나 할 것 없이 뮤지컬 제작에 뛰어든다. 그러니 외국 프로듀서는 한국에서 뮤지컬 작품을 손에 들고 흔들기만 하면 누군가 덥석 물 것이라는 점을 잘 안다. 앞으로 돈벌이를 위해 뛰어드는 제작자, 가요 쪽에서 덤벼들었던 배우나 가수 등이 빠져나가 거품이 사라지기를 기대한다.

▶음악감독은 뮤지컬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인가?

뮤지컬의 시작부터 끝까지 참여해야 한다. 작곡가는 작곡만 하면 되지만 음악감독은 배우 구성, 연습, 지휘, 악기 섭외 등 모든 과정을 담당해야 하므로 일이 많다. 음악적 지식은 물론 사람 다루는 일도 잘해야 한다. 일 자체가 지치는 업무의 연속이다. 음악감독에게는 돈을 많이 줘야 한다.(웃음) 겉모습만 보고 함부로 음악감독이 되려고 뛰어들지 말았으면 좋겠다.

▶곧 책을 낼 계획인 것으로 안다.

약 8년 전부터 글을 써왔다. 대본을 쓰면서 글쓰기에 재미를 붙였다. 여기저기에 조금씩 기고했던 글을 묶어 책으로 내려 한다. 어제 막 탈고했고 곧 출판사에 넘길 것이다. 뮤지컬 음악감독에 대한 이론서도 두 권 정도 준비 중이다. 물론 공연계를 떠나지는 않을 것 같다. 남이 의뢰한 작품이 아니라 내가 구상하고 선택한 작품을 해보고 싶다. 미래가 보이는 사람들, 정말 ‘꾼’들과 함께하고 싶다.

▶박감독이 만든 작품을 언제 볼 수 있을까?

오래전부터 꾸준히 준비해왔기 때문에 앞으로 3년 후쯤 선보일 것 같다.

▶첼로와 국악 작곡을 전공한 것으로 안다. 현재는 음악감독이면서 대학 교수, 뮤지컬 스튜디오 대표, 방송 출연자 등 직함도 다양하다.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시각을 어떻게 받아들이나?

그런 시각은 생각해보지 않은 부분인데…, (잠시 생각) 그 모든 것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가 없을 것 같다. 클래식을 전공하지 않았다면 음악 품질이 낮았을 것이다.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한국 무용을 했다. 이 때문에 작곡할 때 국악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대학 때에도 다른 나라 민속 음악을 좋아했다. 뮤지컬이라고 해서 클래식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음악 장르를 다 사용한다. 팝, 록, 재즈, 흑인 음악, 라틴 음악, 국악 등 수많은 장르가 있지만 기본은 같다. 요리를 할 때 칼 쓰고, 데쳐내고, 튀기는 것은 같다. 재료만 다를 뿐이다. <명성황후>에 무당 장면을 넣었는데 이것이 주목을 받았다. 또, 내가 클래식만 했으면 <렌트> 같은 작품은 도전도 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