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죽인 ‘악마’도 늘어났다
  • 조홍래│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10.11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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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년간 이라크·아프간 주둔 중 살인 혐의로 재판 회부된 미군들 끊이지 않아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 서부 칸다하르 주의 주민들은 괴롭다. 도로를 점령한 탈레반은 세금을 걷고 탈레반에 비협조적인 사람들을 마구 처형한다. 탈레반을 소탕하러 온 미군들은 반군에 저항하라고 요구하면서 탈레반에 협조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주민들을 임의로 사살한다. 이 편도 저 편도 될 수 없는 주민들이 엉거주춤하고 있는 사이에 미군에 의한 민간인 살상 사건은 끊이지 않는다. 전쟁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순박한 민간인들을 변태적으로 사살한 악명 높은 미군은 캘빈 깁스 상사이다. 그는 스릴을 즐기기 위해 아프간 민간인을 죽이고 피살자의 손가락을 잘라 보관했다. 어느 날 동료 병사들이 시끄럽게 떠들자 그들에게 잘린 손가락을 던졌다. 사방이 조용해졌다. 깁스는 기분이 좋아졌다. 깁스는 비전투 행위로 민간인을 죽인 혐의로 군사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다섯 명의 미군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들은 심심풀이로, 스포츠로, 전쟁 놀이로 민간인을 죽이고 더러는 자신들이 죽인 시체와 함께 사진까지 찍은 혐의로 기소되었다. 깁스 소대에 배속된 병사들은 기소장 내용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 깁스는 전쟁에서는 모범 지휘관이었다. 모든 병사가 그를 존경하고 따랐다. 그런 그가 민간인을 잔혹하게 죽이고 그 시체까지 훼손했다는 검찰의 주장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소대원들은 입을 모았다. 이라크 전쟁과 아프간 전쟁에서는, 전투 중에는 용감한 지휘관이 되고 비전투 근무 중에는 살인마로 변하는 두 얼굴의 병사들을 흔히 볼 수 있다.

▲ 이라크 팔루자 지역 주민들이 교전 중에 숨진 민간인 희생자들의 관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9년간 수만 명의 미군 병사가 이라크와 아프간에 순환 배치되었다. 이 과정에서 34명의 육군 병사가 살인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어 24명은 유죄 판결을 받고 12명은 무죄 석방되었다. 병사들의 범죄 행각은 다양하고 더러는 잔혹성의 극치를 보여준다. 2006년 이라크에서는 강간과 살인 혐의로 여러 명이 처벌되었다. 2005년에도 이라크에서 숫자 미상의 미 해병대원이 살인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문제는 병사들의 범죄를 근절하려는 검찰의 노력에도 미군 범죄가 증가 일로에 있다는 현실이다. 시애틀에 있는 루이스 맥코드 3군 합동 군사재판정에서 들리는 얘기는 소름이 돋는다.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발생한 미군의 범죄 건수는 그 이전 전쟁에서의 기록을 능가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마약에 취한 병사들이 자칭 ‘살인 팀’을 조직해 심심풀이나 스포츠의 일환으로 아프간 민간인들을 살해하고 사체의 일부를 갖고 다녔다는 것이다.

군 검찰이나 인권단체들은 지금 이라크나 아프간에서 발생하는 군인의 범죄 양상이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여러 면에서 너무 다른 현실에 혀를 내두른다.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육군 군법회의 재판에 관여한 예비역 소장 토머스 로미그는 “전례가 없는 희한한 범죄가 기하급수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라고 개탄했다. 이전에 일어난 민간인 살해는 대부분 어떤 형태로든 전투와 관련된 것이었다. 적의 공격을 받았을 때 과잉 대응을 했거나 무차별 응사를 하는 과정에서 민간인이 살해되는 일이 발생했다. 또는 적이 던진 폭탄이 터졌을 때나 교전하다가 흥분한 상태에서 민간인을 죽인 경우도 있다. 이라크의 하디타에서 발생한 살인도 자살 폭탄으로 해병대원 한 명이 죽고 두 명이 부상한 직후에 일어났다. 이 사건 피의자들은 대부분 석방되었으나 일부는 아직 재판에 계류 중이다.

군 검찰은 2008년 아프간 도로 위에서 차량과 행인들에게 무차별 사격을 하도록 부대를 지휘한 두 명의 해병대원들을 기소하지 않았다. 이 사건이 자살 폭탄 공격을 받은 직후에 일어났다는 정황을 감안해서였다. 조사 결과 이 사건에서 19명이 죽고 50명이 부상했다. 군 검찰의 고민도 깊어간다. 총탄이 난무하는 전쟁의 혼돈 속에서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대응한 전투 행위가 결과적으로 민간인 살해로 나타났을 때 어디까지 죄를 물을 수 있을지 판단하기 어렵다. 조지타운 대학에서 전쟁에 관한 법률을 가르치는 개리 솔리스 교수는 결정적 순간에 옳다고 판단해서 내린 결정이 결과적으로 멍청한 판단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증거 수집 어려워 법정 못 가는 경우도 많아

지난해 다섯 명의 미 육군 병사들은 눈을 가리고 수갑을 채운 네 명의 포로들을 등 뒤에서 총을 쏘아 죽인 후 시체를 바그다드의 강에 버린 혐의로 기소되었다. 병사들은 공격을 받자 반군들을 포로로 체포했다. 그리고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이 포로들이 석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들을 즉결 처분했다고 진술했다. 이런 특수 상황을 고려한 듯 최근에는 극한적 전투 상황에서 발생한 민간인 살해에 대해서는 무죄를 인정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최근 언론에 공개된 녹화 테이프에서 한 피고인은 공격을 받을 위험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에 사전 도발이 없더라도 민간인을 살해한다고 진술했다.

예일 대학 법대에서 군법을 강의하는 유진 피델 교수에 의하면 전장에서의 살인 혐의로 기소된 병사의 경우 증거를 수집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한다. 대다수의 경우가 기소가 되었을 때는 이미 시간이 많이 흘러 관련 부대는 이동하고 부대원은 다른 곳으로 배속된 후여서 증거를 확보하기가 매우 어렵다. 게다가 무슬림 국가에서는 종교적 이유 때문에 매장된 시체를 발굴해 검시를 하기가 쉽지 않다. 최근에는 병사들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현장에서 사진을 찍어 법정에 제출하는 사례도 많다.

전쟁 중에 발생한 민간인 학살의 대표적인 사례는 2006년 이라크에서 발생한 마무디야 사건이다. 당시 미군은 14세의 소녀를 집단으로 강간한 뒤 살해하고 소녀의 가족까지 죽인 후 집에 불을 질렀다. 아프간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 살인도 전투와는 무관하다. 희생된 가족들은 미군 검문소 부근에 살았다. 미군들은 이 가족을 학살한 후 반군의 소행으로 돌렸다. 그러나 이 사건이 밝혀졌을 때 관련 병사 한 명은 이미 전역했다. 그는 민간 법정에서 보석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다른 몇 명은 90년 내지 100년의 징역형을 받았다.

여러 사건을 비교하고 대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민간인 살인 행위가 법정에 가지 않고 묻혀버리는 경우도 많다. 더구나 군 사법 제도가 중앙집권적 시스템으로 되어 있지 않아서 종합적 정보를 취합하기도 힘들다. 해병대는 심지어 지난 2년간의 군 범죄 처벌에 관한 통계도 보유하지 않고 있다. 육군도 가벼운 처벌이나 과실 치사에 관한 군 범죄 기록은 갖고 있지 않다. 또한 군 검문소의 정지 명령에도 정차하지 않은 차량에 대해 발포하면서 발생한 민간인 피해 등은 기소되지 않았다. 전투 행위로 간주한 것이다. 미군에 의한 민간인 살인의 실상은 최근 피해 가족과의 인터뷰를 통해 뉴욕타임스가 상세하게 보도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민간인 피해는 대부분 전투 중에 발생했다. 따라서 이런 혼란 속에서 일어난 민간인 살인 혹은 피살에 대한 법정 분쟁에서는 쌍방의 법리 논쟁이 뜨겁다. 진짜 범인이 누구이며 피해자와 피해 규모는 얼마인지를 가리기 어렵다. 굳이 범인을 지목하라면 지루하고 명분 없는 전쟁 자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사회심리학자들의 결론이다.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이지만 수백만 명을 죽이면 역사가 된다는 스탈린의 말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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