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야망으로 뭉치는 ‘반미 라인’
  • 조홍래│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11.01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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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러시아 기술로 원자로 건설 추진…이란·북한과 함께 핵연대 구성하려는 듯

 

ⓒAP연합

남미의 반미 선봉자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핵 야망을 드러냈다. 러시아의 기술로 원자로를 건설하겠다는 그의 계획에 가장 놀란 것은 미국이다. 이란과 북한의 핵 개발 저지에도 기진맥진한 미국에는 충격이자 경악이다. 베네수엘라가 핵을 보유할 경우 그 파장은 남미 전역의 지정학적 판도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대사건이 될 것이 확실하다. 주로 반미 성향을 지닌 여러 나라를 방문하던 그는, 10월15일 모스크바에서 핵 원자로 건설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이란과 마찬가지로 원자로 건설이 에너지 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평화적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베네수엘라가 풍부한 석유 및 천연가스 매장량에도 불구하고 최근 심각한 전력난에 봉착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핑계로 원자로를 건설하겠다는 그의 말은 우려를 자아낸다. 그는 지금까지 강력한 반미 정책을 통해 핵을 보유하겠다는 의도를 암암리에 시사해왔기 때문이다.

이란 및 북한과 함께 베네수엘라를 잠재적 핵 위협국으로 간주해온 미국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이다. 부시 시절 유엔 대사를 역임한 존 볼튼 전 유엔 대사는 진작부터 베네수엘라의 핵 야망을 경고해왔다. 차베스는 사실 오래전부터 핵 개발 계획을 추진해왔다. 방대한 우라늄 매장량을 확보하고 있는 베네수엘라는 이란과 강력한 동맹을 맺고 이란이 걸어온 핵 개발 행보를 꿈꿔왔다. 차베스의 핵 계획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려우나 러시아를 등에 업고 남미 최초의 핵 보유국이 됨으로써 남미에서 주도적인 반미 국가가 되는 것이 그의 오랜 야망이다. 그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매우 도발적인 정치 게임을 했다. 메드베데프는 원자로 협정을 체결하면서 “누군가가 이에 전율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향후 일어날 파장을 예견하고 있고, 그럼에도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결의를 표명한 셈이다. 러시아는 최근 이란과 첫 원자로 건설 공사를 완료한 데 이어 핵에너지 시장 확대를 추진하던 중 베네수엘라와 손을 잡았다.  

 미국 국무부는 오래전부터 베네수엘라의 의도를 파악하고 이것이 국제 협정을 위반하는 것은 아닌지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핵확산금지조약(NPT) 서명 국가이다. 전문가들은 베네수엘라가 핵 프로그램에 착수하기까지는 10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본다. 여기에는 또한 거대한 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에 다른 방도를 모색할 가능성도 있다. 영국에서 중남미 관련 뉴스레터를 발행하는 에일린 개빈은 베네수엘라의 핵 야망을 입증하는 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정황 증거는 풍부하다고 말했다. 차베스의 의도가 최근의 선거와 관련해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한 정치적 쇼일 가능성도 있다. 이런 추측이 나오는 것은 차베스가 9월에 실시된 선거에서 야당에 참패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말하자면 국내에서 약화된 정치적 입지를 회복하기 위한 제스처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1999년부터 집권한 차베스는 쿠바의 카스트로로부터 반미 수장 역할을 이어받아 중남미의 반미 지도자로 군림해왔다. 그러나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 기반이 약화되는 바람에 나름의 위기에 봉착했다. 남미에서는 브라질·아르헨티나·멕시코 같은 주요 국가들이 10년 전부터 핵에너지를 가동하고 있어 원자로를 보유하려는 차베스의 야망은 국가의 이미지는 물론 자신의 위상과도 관련되어 있다. 그가 핵보다 쉬운 방법으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에도 굳이 핵 타령을 하는 배경도 바로 여기에 있다.  

▲ 이란의 부셰르 원전. ⓒEPA

 차베스, 이란 방문해 ‘신 세계 질서’ 선언 

차베스는 러시아에 이어 10월20일 이란을 방문한 자리에서는 미국의 패권을 대체할 ‘신 세계 질서’를 선언했다. 이란의 핵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네 차례의 유엔 제재까지 했던 미국과 유엔은 뒤통수를 맞은 형국이다. 차베스는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과 11개 항의 우호 증진 협정을 체결하고 석유·천연가스·섬유·무역·공공 주택 분야에서 양국의 긴밀한 협력을 다짐했다. 얼핏 보면 국가 간의 통상적인 제휴로 보이지만 속셈은 따로 있다. 한마디로 세상사를 제 입맛대로 요리하려는 서방의 오만, 특히 미국의 지배에 도전하겠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미 제국주의’를 비난하면서 누구도 양국의 협력을 방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들은 구체적인 실천 방안으로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통해 유럽과 아시아에 대한 석유 공급에 영향을 주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모두 OPEC 회원국인 양국이 일종의 카르텔을 만들어 석유 공급을 정치 무기화할 경우 그 영향력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이란 국영 TV로 중계된 성명에서 양국 관계를 ‘전략적 동맹’으로 규정하고 이것이 궁극적으로 기존 세계 질서를 제거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두 나라의 동맹은 특히 핵 야망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끈다. 이란은 이미 평화적 사용이라는 구실로 핵 원자로 건설을 추진하고 있고 베네수엘라도 러시아의 기술 협조로 원자로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런 계획들이 구체화될 경우 양국은 북한과 함께 세계의 비핵화 노력을 비웃는 연대 세력으로 등장한다. 차베스는 천암함 사건을 비롯한 주요 고비마다 북한을 두둔했다. 아마디네자드는 인도주의와 정의에 입각해 신 질서를 구축할 것이며 이것은 결과적으로 세계 지배를 꿈꾸는 세력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차베스는 지금이 ‘거대한 위협의 시대’라고 규정하고 바로 이 때문에 정치, 경제, 기술, 에너지 및 사회 분야에서 전략적 동맹을 시급히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양국 간 협력의 자세한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차베스는 양국 합의는 서면상의 합의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해 묘한 여운을 풍겼다. 베네수엘라의 실무진은 곧 이란을 방문해 합의를 실천하는 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이란은 중동에서 반미 좌경 노선을 추구하는 베네수엘라의 가장 가까운 동맹으로 등장했다. 차베스는 그동안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세계 전역에서 자신에게 동조하는 세력을 규합해왔다. 베네수엘라 통신에 의하면 차베스는 미국을 지칭하는 발언에서 제국주의는 쇠락의 길에 들어섰으며 마치 무덤으로 향하는 코끼리 신세가 되었다고 말했다.

차베스는 이란의 핵에너지 개발 프로그램을 강력히 두둔했다. 그는 이것이 평화적 목적을 위한 것이며 핵폭탄을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미국은 그동안 이란의 핵에너지 프로젝트를 핵무기 개발을 위한 전 단계로 보고 유엔을 통해 강력한 제재를 해왔다. 러시아는 그루지야 전쟁으로 러시아 내 반미 감정이 가장 높던 때인 2008년 베네수엘라에 원자력 기술을 제공하겠다고 제의해 이번에 성사되었다. 차베스는 모든 국가는 이란의 핵 주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핵 야망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그의 핵 야망과 신 질서 구상은 세계사에 한바탕 풍파를 불러올 것이 확실하다. 그가 이란을 얼마나 부러워하고 모방하는지는 취임 이후 아홉 번째 이란을 방문한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테헤란에 오기 전 러시아, 벨로루시, 우크라이나를 방문했으며 이란 다음에는 시리아, 리비아, 포르투갈을 방문했다.

카스트로가 50년을 써먹고 버린 반미 노선을 상속받아 이란, 북한과 함께 반미 핵 연대를 구성하려는 차베스의 시도는 어쩌면 시대착오적이다. 하지만 북한에 이어 베네수엘라와 이란까지 언젠가 핵보유국으로 등장할 경우 미국의 비핵화 노력은 치명상을 입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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