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으로 권모술수 부리지 마라”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1.02.21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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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섭 전 국회의장 인터뷰 “다음에는 말을 좀 적게 하는 대통령 나왔으면 좋겠다”

 

▲ ⓒ시사저널 이종현

 

우리 사회에 진정한 원로가 없다는 말들이 많다. 대통령이, 또는 정치 지도자들이 올바른 길을 걷게끔 그 방향을 제시해주는 원로가 많을수록 그 사회는 건강해진다. 지난 2월16일이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2주년이었다. 존재감 자체만으로도 우리 사회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김추기경을 새삼 다시 추모하는 분위기가 일고 있는 것은 지금의 혼란스런 정국상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우리 사회의 진정한 원로 가운데 한 명이다. 국회의원 8선과 여야 여러 주요 정당의 총재와 대표 등을 지냈고, 국회의장직을 2차례나 역임한 이 전 의장은 어느 정파에 치우침 없이 지금도 후배 정치인들을 향해 쓴소리를 한다. 올해 우리 나이로 정확히 팔순에 다다랐지만, 여전히 그 날카로운 눈매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두 시간 가까이 꼿꼿한 자세를 한 번도 흐트러뜨리지 않고 현 정부와 정치인들을 질타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나, ‘친이(친이명박)계’나, 정히 박근혜 전 대표가 싫으면 되지도 않을 개헌으로 견제하려 들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자신들의 대표 후보를 내세워서 전당대회에서 페어플레이를 하라. 뒤에서 권모술수나 부리지 말고”라고 일침을 가했다. 2월17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이 전 의장을 만났다.

지난 1987년 여야 합의로 개헌한 헌법이 지금까지 24년째 지속되고 있다. 당시 이만섭 전 의장도 야당 대표로 개헌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나?

그렇다. 당시 내가 제2 야당인 한국국민당의 총재였다.

당시 개헌 과정은 어땠나?

그야말로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요구가 있었다. 대통령 직선제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였다. 대통령 단임제 요구 역시 그랬다. 국민들의 열망이 워낙 강했기에 오히려 정치권에서 큰 논란이 없었다. 단, 대통령 임기를 두고 당시 여당이던 민정당은 6년 단임제를, 야당은 5년 단임제를 주장하며 맞섰는데, 이 역시도 큰 대립 없이 5년 단임제가 채택되었다. 국민들의 힘이었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과 친이명박계 등 이른바 여권 주류에서 개헌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기적으로 이 정권에서는 이미 늦었다고 본다. 하려고 했으면 18대 국회 초에 바로 국회 헌법특위를 만들었어야 했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적어도 개헌이 이뤄지려면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요구가 있다든가, 아니면 국회에서 거의 만장일치 수준으로 합의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하나도 갖춰지지 않았다. 한마디로 전혀 가능성이 없다. 왜 가능성이 전혀 없는 개헌 얘기를 자꾸 하느냐 말이다. 오히려 정국의 혼란, 시간의 낭비, 국력의 낭비만 가져온다. 그래서 이제 그런 얘기는 더 이상 안하는 것이 좋겠다고 내가 선배 정치인으로서 후배들에게 충고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권 주류측에서는 개헌 성사 가능성이 전혀 없음에도 왜 이것을 계속 주장하고 나선다고 보는가?

되지도 않을 개헌을 억지로 추진하다가, 결국 안 되면 오히려 권력 누수 현상이 더 빨리 온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말 때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다가 역풍을 맞는 바람에 당·청 갈등만 야기하고, 이후 권력 누수 현상이 더 가속화되지 않았나. 속된 말로 대통령 스타일을 완전히 구긴 것이다. 그것을 뻔히 보았으면서 왜 지금 또 똑같은 길을 걷고 있는지 모르겠다.

또 하나, 개헌을 이용해서 박 전 대표를 견제하려 들지 말고, 정히 박 전 대표가 싫으면 정정당당하게 친이계 쪽에서 대표 후보를 한 명 내야 한다. 김문수 지사든, 오세훈 시장이든, 아니면 이재오 장관이 직접 나서든 친이계 대표 주자를 내세워서 전당대회에서 당당하게 페어플레이를 하란 말이다. 그렇게 해야지, 왜 자꾸 뒤에서 권모술수를 부리느냐 이 말이다. 솔직히 지금 국민들은 개헌에 대해 손톱만큼도 관심이 없다. 지금 급한 것은 물가, 구제역, 전세 대란, 여기에 남북 문제 이런 것이 더 시급하다. 내가 50년 정치권에 몸담으면서 경험을 통해 느낀 소중한 깨달음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법이나 제도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지도자의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 전 의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정치권에 입문했다. 따라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애정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혹시 그 연장선에서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애정도 갖고 있나?

내가 1963년 동아일보 기자를 그만두고 공화당 박정희 대통령 후보의 당선을 위해 정치권에 투신했고, 그때 내가 전국 유세를 돌면서 그 양반의 당선을 도와줬다. 그 후에 박 전 대통령이 날 참 좋아하셨다. 나중에는 박 전 대통령의 3선 개헌을 반대하고, 장기 집권에 반대하면서 대통령과의 관계가 소원해졌지만. 요즘 말로 대통령이 좀 삐쳐서 내가 한 8년간 정치를 못하기도 했다.(웃음)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이 나 좋아할 때에는 이틀이 멀다 하고 청와대에 가서 같이 식사하고 그랬다. 당시 박 전 대표는 어린 여학생 시절이었는데, 그때부터 내가 잘 안다. 지금 흔히 박 전 대표를 가리켜 ‘아버지의 후광’이라고 하는데, 물론 그런 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후광을 잘 관리하는 것도 중요한데, (박 전 대표가) 그것을 잘 관리했다고 본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 능력도 있다고 봐야겠지.

만약 박 전 대표측에서 대선에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줄 용의가 있는가?

나는 박근혜 전 대표나, 또 김문수 지사나, 오세훈 시장이나, 또 야당의 손학규·유시민·정동영·정세균이나, 전부 사랑하는 후배들이다. 지금은 내가 “누구를 도와준다” 이런 말을 할 형편도 아니고, 더 두고 봐야 한다. 다만 한 가지, 한나라당이 전당대회에서 페어플레이를 해서 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된 사람을 똘똘 뭉쳐서 밀어주어야만 정권을 재창출할 가능성이 있다. 분열하면 정권 내놓아야 한다. 또, 야당도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합쳐서 후보를 하나로 내면 정권을 되찾을 가능성이 있다. 역시 분열해서 싸우면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차기 대선의 승패는 여당이나 야당이나 결속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최근 김영삼 전 대통령이 부쩍 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 ‘군사 쿠데타의 원흉’이라는 등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나도 김 전 대통령을 인간적으로 잘 알지만, 얘기할 필요가 없는 말을 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양면성이 있는 것 아닌가. 경제 건설하고, 원조받는 나라에서 원조 주는 나라로 국제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하는 이런 것은 인정을 해야지. 장기 독재를 한 것만 갖고 자꾸 얘기하는데, 같은 전직 대통령끼리 욕하는 것은 국민들 보기에도 안 좋다. 그리고 김 전 대통령 또한 좀 미안한 말이지만, 과거 박정희 정권 시절에 경부고속도로 건설 추진 반대, 월남 파병 반대 등 사사건건 반대만 해 오지 않았나. 그런 과거에 대해서 한번 차분히 생각할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전 의장께서는 여러 전직 대통령을 옆에서 쭉 지켜봐왔다. 그런 면에서 차기 대통령은 어떤 인물이 되어야 한다고 보나?

첫째, 정직하고 솔직한 대통령이었으면 한다. 거짓말하거나 쇼를 해서는 안 된다. 정직하게 일하고, 나중에 역사와 국민의 심판을 받을 생각을 해야 한다. 둘째, 말로만 ‘친서민’ 하지 말고, 진실로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 셋째, 측근들의 권력형 부정부패를 처음부터 발본색원해야 한다. 넷째, 다음 대통령은 말을 좀 적게 하면 좋겠다. 대통령이 말이 많으니까 정책에 혼선이 온다. 장관들이 우왕좌왕한다. 또 한반도의 미묘한 정세를 고도의 외교적 능력으로 잘 조정해나가는 그런 능력을 가진 대통령이 나왔으면 한다.

아직 임기는 2년 정도 남아 있지만, 지금의 이대통령에 대해서도 아쉬운 점이 많은 듯하다.

우선은 대통령이 너무 혼자 다 하겠다는 생각 때문에, 밑의 장관들이나 측근들이 소신을 갖고 일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는 것이 아쉽다. 둘째, 아침부터 밤까지 부지런하게 일한다고 하는데도 그만큼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국민들에게 믿음과 감동을 못 줘서 그렇다. 셋째, 이대통령은 앞으로라도 말수를 좀 줄였으면 좋겠다. 말이 많으니까 자꾸 정책 혼선이 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2년 동안이라도 ‘대중국 외교’를 좀 더 강화했으면 하는 당부를 꼭 하고 싶다. 한·미·일 공조는 말할 것도 없지만, 중국에 대해서도 우리가 전략적 동반자로서 협력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현 정부가 중국을 무조건 북한 편으로 치부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근본적으로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우리 정책과도 일치한다.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한반도 내의 평화와 안정이다. 이것은 우리 정부의 입장과도 똑같다.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것은 북한이다. 그러니까 우리와 중국이 얼마든지 협력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런 외교적 능력이 현재 이명박 정부에는 전혀 없다. 그런 것이 정말 답답하다.

현 정부 들어서는 여야 영수회담도 사라졌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최근에 모처럼 그런 분위기가 있었는데, 얼마 전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사실상 영수회담을 거부하면서 그마저도 또 기회가 사라졌다.

모두 옹졸해서 그렇다. 하지만 일차적인 책임은 이대통령에게 있다. 대통령이 야당 대표와 자주 만나서 나라 걱정하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이번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꼭 이대통령더러 야당에게 사과하라는 것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이왕 야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지난 연말 국회가 예산안 처리 문제로 시끄러웠던 데 대해서 국민에게 걱정을 끼쳐드린 점을 죄송하게 생각한다”라는 정도로 한마디만 하면 되는 것이다. 또 그것은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맞다. 국정의 최고 통치자로서 불미스런 폭력 행위가 발생하면 어떻든 국민에게 사과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사과 안 하겠다, 못 하겠다 이러니까, 야당에서도 “그러면 만날 필요가 뭐가 있나” 이렇게 나올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국민을 향해 사과하는 것은 나라만 잘된다면야 매일같이 해도 나쁠 것이 뭐가 있나.

이대통령이 “나는 경제 살리는 대통령이지 정치는 관계가 없다. 국민들은 내게 경제 살리라 시켰다”라는 취지로 말하던데, 정치가 잘되어야 경제가 사는 것이다. 경제 살리는 것도 넓은 의미의 정치이다. 그런데 정치는 ‘모르겠다’는 식으로 치부하면 어떻게 하나. 이대통령이 아직도 소통의 정치를 못하고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과거 정치인으로서의 삶 가운데서 혹시 아쉽거나 후회되는 점은 없나?

1950년대 대학 다닐 때부터 내 꿈이 통일된 한국의 대통령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정치를 시작했는데, 통일 대통령은커녕 반쪽 대통령도 못되었으니까 그게 아쉽다. 내가 좀 더 강하게 나갔으면, 그래서 큰일을 맡았으면,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잘했을 텐데 하는 그런 아쉬움이 있다.

대권 도전을 구체적으로 계획했었나?

김영삼 대통령 때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때 내가 14대 국회에서 국회의장을 했는데, 김대통령이 1994년 예산안 처리 문제 등 자신이 한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날치기를 거부했다고 해서, 인간적으로 나와 소원해졌기 때문에 그런 기회가 없어졌다. 그 다음 (김대중) 대통령 때도 마찬가지고. 공교롭게도 전직 두 김대통령 시절 모두 국회의장을 하면서 국회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청와대와 강한 대립각을 세웠고, 이런 내 모습에 양김씨 모두 ‘퇴임 후에도 저 사람을 믿을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좀 있었던가 보다. 그래서 기회가 없어졌다.

평소 건강 관리는 어떻게 하나?

만보기 차고 틈만 나면 걷는다. 건강 비결은 양심을 지키는 것이다. 영어 속담에도 ‘A clear conscience is a good pillow(깨끗한 양심은 잠을 잘 들게 하는 부드러운 베개이다)’라고 했다. 양심을 지키면 잠자리가 편하고, 거짓말을 하면 잠자리가 불편하고, 고민을 해서 건강을 해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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