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 승부사·광폭 경영인 ‘격돌’
  • 이은지 (lej81@sisapress.com)
  • 승인 2011.03.21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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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신사업과 프리미엄 시장에 모두 뛰어들기로

 

▲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연합뉴스

2011년 유통 전쟁의 승부처는 합병·매수(M&A)를 통한 신사업 추진과 프리미엄 시장 확대이다. 지난해까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M&A로 외연 확대에 집중해왔고,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프리미엄 시장 확대에 기민하게 대응하면서 선점 효과를 누려왔다. 올해에는 신회장과 정부회장 모두 두 가지 사업에 다 집중하겠다고 밝힌 만큼 맞불 경쟁이 불가피하다.

M&A 분야에서는 신회장을 따라갈 수가 없다. 그는 2004년 정책본부장을 맡은 이후 25건의 M&A를 주도하며 롯데그룹을 재계 서열 5위로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지난해에는 모두 3조6천억원을 투입해 11건의 M&A를 성사시켰는데, 이 가운데 다섯 건은 해외 업체 인수였다.김미연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롯데쇼핑은 2009년, 중국 동북 지역에 68개의 점포를 보유하고 있는 중국 유통업체 타임스(Times)를 인수한 저력을 바탕으로 지난해에는 말레이시아 석유화학업체 ‘타이탄’과 필리핀 청량음료업체 ‘펩시’를 인수했다. 올해에는 중국에 13개,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 18개 점포를 신규 개장할 예정이다. 소비 확대가 기대되는 지역인 만큼 성장 동인으로 적합한 전략이다”라고 평가했다.

신회장은 정부회장과 맞붙은 GS백화점과 GS마트 인수전에서도 시원하게 한판승을 거둔 바 있다. 지난해 1월, 신세계가 GS마트에 눈독을 들이자 신회장은 GS마트와 GS백화점을 모두 인수하는 조건으로 승부를 걸었다. 가격도 높았지만 백화점과 마트를 한꺼번에 사들여 직원들의 고용을 보장한 전략이 주효했다는 후문이다. 정부회장이 M&A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다 보니 신세계의 투자 확대 욕구를 리스크로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올해 신세계는 삼성생명 지분 매각을 통해 확보한 2조원을 신규 성장을 위한 M&A에 쓸 것으로 예상된다. 이상구 현대증권 애널리스트는 “정부회장은 M&A로 한 번도 검증받지 않았다. 과거에는 전문 경영인이 많은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오너인 정부회장이 전면에 많이 나서고 있기 때문에 약간의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최광호 신세계 홍보팀 팀장은 “이제까지 안 했다고 해서 못한다고 단정지어버리면 신규 사업에 도전조차 할 수 없다. 올해에는 M&A 시도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업종으로 진출하는 방안까지 다양한 각도로 전략을 짜고 있다”라고 밝혔다. 

파주 아울렛 부지 놓고 ‘기싸움’ 벌여

반면 프리미엄 시장 확대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쪽은 정부회장이다. 그가 2006년 3월 신세계 부회장으로 취임하자마자 다음 해 6월, 경기도 여주에 프리미엄 아울렛 ‘첼시’를 선보이면서 ‘명품 아울렛’을 국내에 최초로 들여왔다. 소득 증대로 명품 소비가 늘어나는 국내 소비 성향의 변화를 누구보다 빨리 눈치 챈 결과였다. 개점 첫해부터 매출액이 연평균 20% 이상 수직 상승하며 지난해에는 3천억원가량을 기록했다. 명품 아울렛이 탄력을 받자 지난 3월18일에는 경기도 파주에 프리미엄 아울렛 2호점을 열었다. 파주 아울렛 부지는 신회장과의 치열한 기싸움 끝에 획득한 만큼 정부회장에게는 특별한 대상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다. 이 부지에 처음 눈독을 들였던 것은 롯데였다. 그러나 거래 협상이 지지부진한 틈을 타 정부회장은 롯데보다 비싼 평당 1백20만원을 제시하며 일사천리로 거래를 성사시켰다. 이에 자극받은 신회장은 결국 신세계보다 3.5배나 비싼 평당 4백22만원에 파주출판단지를 확보하고 오는 12월 개장을 앞두고 있다. 이병희 롯데그룹 홍보팀 홍보부장은 “신세계와 달리 국내 고급 브랜드도 입점시킬 생각이다”라고 차별화 전략을 밝혔다. 2013년에는 경기도 이천점을 개장할 계획이다. 그러나 후발 주자인 데다가 투자 비용이 워낙 커 신세계의 실적을 능가할지는 불투명해 보인다. 

정부회장은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하는 동시에 저가 시장 확대를 함께 추진했다. 소비자들의 이중적인 소비 행태를 정확히 읽어냈기에 추진할 수 있었던 전략이다. 이마트가 지난해부터 상시 저가 정책을 구사한 결과 이마트의 매출액은 증가했지만 수익성은 더욱 악화되는 부작용이 뒤따랐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회장은 지난 3월18일에 열린 주주총회에서 이마트와 신세계의 인적 분할 안건을 통과시켰다. 인적 분할로 이마트가 직면해 있던 성장 정체와 마진 하락의 굴레를 벗어날 전환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정부회장에게는 숙제가 남아 있다. 김미연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마트는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중국 사업의 구조조정 및 M&A를 통해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신세계는 통합 시너지가 가능한 신규 사업으로 M&A를 추진함으로써 수익성 향상을 꾀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신세계는 중국 이마트에 대해 전략을 펴기로 결정했다. 대도시가 아닌 중소 도시에 신규 점포를 내고, 임대 출점 방식이 아닌 자가 출점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 신세계 대표이사 2년차에 불과한 정부회장이 적자 사업을 당장 흑자로 전환시킨다는 것이 버거운 과제일 수 있지만, 상대가 신회장인 만큼 한 번 실패한다면 롯데쇼핑과 좁힐 수 없는 격차가 벌어질 가능성 또한 크다. 사활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 몰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통운 인수전에서도 맞대결 예정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시사저널자료

20년 경영 노하우를 가진 신회장에게 주어진 과제는 속도감 있게 추진한 M&A를 얼마나 빠른 속도로 안정화시키느냐이다. 이병희 롯데그룹 홍보실 홍보부장은 “당장 성과가 나오기는 힘들다. 최소 3~5년 정도 지나야 성과가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아시아 TOP 10 글로벌 그룹’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조직 인사 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꿨다. 기초적인 작업부터 차근히 해나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일단 전문가들은 신회장에게 신뢰를 보낸다. 롯데백화점이 업체 1위를 차지하고 있고, 롯데마트의 수익 개선이 도드라지고 있는 데다가 롯데슈퍼가 성장의 한 축으로 자리 잡으면서 다양한 유통 채널을 확보했다는 점이 높게 평가받았다. 또한 중국 소비 시장에서 M&A 전략으로 장기적인 성장 동력을 마련한 것 또한 큰 점수를 얻었다.

신회장과 정부회장은 올해 M&A나 프리미엄 시장 확대를 진행하면서 맞붙을 가능성이 짙다. 두 기업 모두 현금은 충분히 모아뒀다. 신세계는 삼성생명 지분 매각을 통해 확보할 2조원을 M&A 자금으로 모아두었다. 구체적인 대상 기업은 정하지 않았다. 롯데그룹은 전환 사채 발행 한도를 높여 1조원의 자금을 확보해 대한통운 인수전에 뛰어든다고 밝힌 상태이다. 두 기업 모두 상대 기업에 대한 평가는 피했다. 그러면서도 똑같이 글로벌 기업을 지향하겠다고 밝혔다. 지향점과 전략이 비슷한 만큼 두 기업이 올해에도 치열한 경쟁 구도를 그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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