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양국 연극판 ‘중심’에서 외치다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11.06.07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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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최고 극작가·연출가로 꼽히는 ‘재일교포 2.5세’ 정의신, 올해 한국 무대에 대다수 작품 올릴 예정

 

▲ 정의신

재일교포 2.5세대 정의신은 특이한 존재이다. 그는 일본에서 최고로 꼽히는 극작가이자 연출가이다. 그가 일본어로 쓴 대본은 우리나라에서도 인기 최고이다. 지난 3월 예술의전당에서 재공연을 가진 <야끼니쿠 드래곤>은 11일간의 공연 기간 내내 만석이었고, 객석을 웃기다가 울리며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지난 2008년 이 작품의 초연에 참여한 한국 배우 고수희는 일본에서 이 작품을 일본어와 한국어로 연기해 일본 요미우리 연극상 여자연기상 부문에서 수상했다. 이제 정의신에게 한·일 양국은 홈그라운드나 마찬가지다. 오사카의 빈민가에서 충청도 출신 아버지와 재일교포 2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렵고 고단한 어린 시절을 겪으며 주변부로 내몰리기만 했던 ‘자이니치 2.5세’가 한·일 양국의 연극판 중심부에 선 것이다. 성장기에 몸으로 겪어낸 고단한 현실이 그의 작품의 자양분이 되어서 한·일 관객 모두에게 보편적인 감동을 나누어주고 있다.    

연말에는 극단 미추와 손잡고 직접 연출하는 무대 마련

올해에는 국내에서 정의신의 작품을 양껏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야끼니쿠 드래곤>이 재공연된 데 이어 극단 조은컴퍼니에서 그의 작품 <겨울 선인장> <아시안 스위트>를 연이어 올리고, 연말에는 극단 미추에서 정의신씨가 대본을 쓴 작품을 직접 연출한 무대가 올라갈 예정이다.

정의신표 연극의 특징은 드라마가 무척 강하다는 점이다. 그는 관객을 웃고 울리는 데 능하다. 연극을 보는 것이 낯선 관객이라도 그의 연극에 쉽게 빠진다. 웬만한 TV 연속극보다 이야기가 강하다. 그는 어렵지 않게 이야기한다. 사회적 소수, 약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대의’나 ‘정의’처럼 어려운 말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그가 성장기에 눈으로 지켜보고 몸으로 겪어낸 비주류의 고단한 삶을 동네 풍경처럼 담담하고 세세하게 풀어낸다. 

그렇다 보니 그의 드라마에서는 늘 출구 없는 하층민이나 다리를 저는 장애인, 성적 소수자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주인공이다. <야끼니쿠 드래곤>에서 큰딸 시즈카(정화)는 다리를 절었고, 6월30일부터 무대에 오르는 <아시안 스위트>에서는 재개발 지역에서 양장점을 운영하는 치요코도 다리를 전다.  

ⓒ조은컴퍼니 제공

 <아시안 스위트>의 연출가 김제훈씨는 “정작가의 작품에는 이른바 정상적인 사람이 등장하는 예가 거의 없다. 무언가 부족하고 장애를 갖고 있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런 인물이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무심하게 보여줄 때 관객들은 감동을 전달받는다”라고 말했다.

<아시안 스위트>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재일교포 배우 김구미자의 유작이기도 하다. 김구미자는 <애란>과 <미친 사랑의 노래>로 국내 영화팬에게도 낯익은 인물로 일본의 신주쿠양산박이라는 극단에서 정의신 작가와 함께 활동했다. <아시안 스위트>는 그가 애초부터 여주인공으로 김구미자를 염두에 두고 쓴 작품으로 알려졌다. 2003년 6월 암 수술을 받은 김구미자는 이듬해 4월 이 무대에 주연 배우로 섰다. 마지막 장면에 치요코는 하얀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등장해 인사를 한다. “모두에게 감사한다”라고. 미혼이었던 김구미자는 이 작품을 통해 드레스를 입어보고 그해 10월, 45세의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떴다.

국내판 <아시안 스위트>에서는 동아연극상을 수상하기도 한 실력파 이항나가 치요코 역으로 출연한다. 이 작품은 지난겨울에도 일본에서 재공연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정의신씨도 ‘개인적인 경험이 반영’된 치요코 역의 한국판 캐스팅에 큰 관심을 기울였고 이항나에 대해 만족해했다고 한다.

‘정의신 작가 전’의 첫 번째 작품 <겨울 선인장>은 6월19일까지 혜화동 키 작은 소나무 극장에서 열리고 있고, <아시안 스위트>는 6월30일부터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한국 초연 무대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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