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영화가 추석 극장가 ‘챔프’ 될까
  • 이지강│영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1.09.03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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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코미디·멜로 등 다양한 장르 동시 개봉…<최종병기 활>의 인기도 계속 이어질 듯

추석 영화 하면 액션과 코미디가 먼저 떠오른다. 그만큼 추석에는 가볍게 즐길 만한 작품이 선전해왔다. 이번에도 여러 편의 기대작이 추석 극장가에 선보인다. 역시 국내 영화의 강세가 눈에 띈다. <푸른소금>을 비롯해 <통증> <챔프> <가문의 영광 4-가문의 수난> 등 총 네 편이 선보인다. 이에 맞서 <콜롬비아나> <파퍼씨네 펭귄들>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5> 등 할리우드 영화 세 편도 관객을 기다린다.

국내 멜로물 <푸른 소금> <통증>, 제목만큼 궁금증 자극

영화 선택을 좀 더 쉽게 하기 위해 올 추석 영화를 멜로 영화, 가족 영화, 시리즈 영화로 분류해보았다. 멜로 영화로는 <통증>과 <푸른소금>이 눈에 띈다. <통증>은 어린 시절 사고로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남자와 혈우병으로 인해 작은 통증에도 괴로워하는 여자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신체적으로 반대의 특질을 지닌 남녀의 결합이라는 소재가 관객에게 얼마만큼 호소력이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이다. <친구> <태풍> 등을 통해 남성적 감성을 잘 이끌어내온 곽경택 감독이 <사랑>에 이어 다시 멜로물에 도전했다. <통증>을 기대하게 하는 요소는 원작자인 만화가 강풀이다. 최고의 웹툰 만화가로 불리는 강풀은 <아파트> <바보> 같은 작품 대다수가 영화화되었지만 별 재미를 못 본 대표적인 경우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인기 만화를 영화로 옮긴 전작과 달리 원안 작업부터 영화와 같이 시작했다는 점에서 궁금증을 자극하고 있다.

이미 개봉한 <푸른소금>은 액션 영화의 외피를 두른 멜로 영화이다. 폭력 조직을 떠나 평범한 삶을 살기 원하는 중년의 남자와 그를 살해해야 하는 사격 선수 출신 젊은 여자의 사랑을 그렸다. 주연을 맡은 송강호와 신세경을 비롯해 천정명, 오달수, 김뢰하, 윤여정 등 캐스팅이 화려하다. <시월애>의 이현승 감독이 11년 만에 연출에 복귀해 내놓은 작품이기도 하다. 이감독은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는 영상미로 호평을 받아왔지,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재주로 평가받는 감독은 아니었다. 이번 작품에 대한 평단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름다운 화면과 신세경이라는 트렌디한 아이콘, 중년 남자의 로망을 소비하고픈 관객이라면 선택할 만하다.

어린이 동반한 가족 관객에게는 <챔프> <파퍼씨네 펭귄들> 권할 만

가족 영화로는 <챔프>와 <파퍼씨네 펭귄들>이 있다. <챔프>는 시력을 잃어가는 왕년의 스타 기수와 절름발이 경주마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영화는 주연 배우 차태현에 많이 기대를 걸고 있다. 그는 개봉 전까지 큰 기대를 받지 못하던 작품을 중·대박 영화로 탈바꿈시키는 재주가 있다. <헬로우 고스트>나 <과속 스캔들> <복면달호> 등이 그런 예이다. 

짐 캐리 주연의 <파퍼씨네 펭귄들>은 전형적인 할리우드 가족 영화이다. ‘정신 분열 직전’의 코미디 캐릭터인 짐 캐리는 의외로 히트작 목록에 가족 영화를 꽤 가지고 있다. 이 작품 역시 동물과 아이라는 요소와 짐 캐리의 장점을 잘 버무린 영화이다. 펭귄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뽀로로’를 사랑하는 국내 어린이 관객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가문의 영광 4-가문의 수난>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5> <콜롬비아나>는 코미디, 공포, 액션이라는 서로 다른 장르를 내세우지만 브랜드를 가진 시리즈 영화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시리즈 영화는 작품의 수준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안전한 선택이기도 하다.

1980년대 한국 영화의 부흥기 이후 가장 오래된 프랜차이즈 브랜드는 <가문의 영광> 시리즈이다. <가문의 수난>은 이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으로 제작자인 정태원씨가 직접 감독을 맡은 첫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는 주인공 가족이 해외 출국 금지가 풀리면서 처음 일본으로 해외여행을 떠나 벌이는 소동을 다루고 있다. 정감독은 왁자지껄한 웃음 뒤에 감동 코드라는 그간의 전형적인 패턴에서 벗어나 코미디에 집중하고 있다. 매번 평단의 평가와 흥행의 성공이라는 상반적인 평가를 받아온 이 시리즈가 이번에도 상업적으로 살아남을지 궁금하다.

▲ ( 위 ) (아래)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5>는 사고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뒤이어 찾아오는 죽음의 운명을 넘어서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다루는 공포 영화 시리즈이다. 첫 작품은 참신한 규칙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이어진 시리즈는 표현의 수위만 자극적으로 바꾸면서 시들시들한 시리즈로 전락했다. 이번 작품은 타인의 생명으로 본인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새로운 규칙을 도입하는 등 나름으로 새 단장을 했다.

<콜롬비아나>는 전작이 있는 시리즈 영화는 아니지만 뤽 베송이라는 브랜드를 앞세웠다는 점에서 시리즈 영화로 묶어볼 수 있다. 그의 대표작 <레옹>처럼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킬러로 성장한 여전사가 거대 조직에 맞서 복수를 펼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뤽 베송은 최근 제작자로서의 행보가 더 눈에 띈다. 빠른 화면 전개와 영상 표현에 능숙한 뮤직비디오나 광고 필름 출신 감독을 픽업해 단순하지만 선명한 플롯을 가진 액션 영화를 찍어내고 있다. 단순·화끈·명쾌한 뤽 베송표 영화를 좋아하는 마니아에게는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아울러 여름 시즌에 개봉한 <최종병기 활>도 추석 대목에 유일한 한복 활극이라는 점에서 추석 연휴의 가장 강력한 흥행 카드 후보로 꼽히고 있다. 



<각설탕> <그랑프리> <챔프>.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모두 경주마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동물을 소재로 한 국내 영화가 큰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경주마를 소재로 한 영화들은 꾸준하게 제작되고 있다. 이 배경에는 한국마사회가 있다. 마사회는 적극적으로 촬영을 지원한 것은 물론이고 직접 투자까지 했다. 마사회의 투자가 항상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각설탕>은 흥행에 성공했지만, 20억원이라는 거액의 제작비를 지원한 <그랑프리>는 지난해 32만명 관객 동원이라는 참패를 맛보았다. 마사회가 제작을 지원한 SBS 드라마 <파라다이스 목장> 역시 시청률에서 좋은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챔프>라는 또 한 편의 마사회 지원 작품이 관객을 만나게 되었다.

마사회가 영화에 투자하는 목적은 분명하다. 경마 하면 도박을 먼저 떠올리는 대중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영화와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정부 부처나 공기업이 영화와 드라마에 투자를 하는 것은 이제 낯선 일이 아니다. 이들은 때로 자신들이 투자한 작품의 내용에 관여하기도 한다. 보건복지부가 지원한 SBS <시크릿 가든>의 경우 드라마 내용에 금연과 다자녀 출산을 홍보하는 내용이 등장해 시청자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공공 기관이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것은 추천할 만한 일이지만 이것이 내용에 대한 간섭으로 이어지면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마사회가 지원한 작품이 도식적일 만큼 ‘아름답고 착한 영화’ 일색이라는 점도 이런 우려를 부채질한다. 경마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드는 데 마사회의 지원은 필수적이다. 경마의 어두운 면을 현실적으로 다루는 작품의 엔딩크레딧에서 마사회의 이름을 발견하는 날이 오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3백승의 화려한 전적을 자랑하던 기수 승호(차태현)는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고 혼자 어린 딸 예승(김수정)을 키우며 살아간다. 사고 이후, 승호에게는 제대로 말 위에 올라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사고로 다친 시신경은 악화 일로이다. 결국 빚에 쫓겨 도망치듯 제주도로 내려간 승호와 예승. 두 사람은 그곳에서 야생마처럼 사나운 경주마 우박이를 만난다. 사고로 새끼를 잃고 다리를 절게 된 우박이는 사람을 태우지 않아 팔려갈 위기에 처하고 승호는 그런 우박이와 호흡을 맞추면서 기수 인생에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각설탕>으로 말과 소녀의 우정을 그렸던 이환경 감독이 다시 한번 비슷한 소재를 가지고 돌아왔다. 시력을 잃어가는 기수와 절름발이 경주마의 교감을 그린 영화 <챔프>. 같은 운명에 처한 인간과 동물이 교감을 통해 장애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은 극적이고, 특히나 기수와 말이 서로를 위해 온몸을 던지는 클라이맥스는 근래 어떤 영화보다 착한 울림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절름발이 경주마를 연기한 말 우박이이다. 그 어떤 배우보다 호소력 짙은 우박이의 표정과 연기는 단연 영화 <챔프>의 백미이다. 실제 경마장을 보는 듯 스펙터클한 재미를 주는 경마 장면도 좋다. 좌우를 넓게 쓴 화면 안에 가득 달리는 말들의 박진감은 전작
<각설탕>에서는 제대로 담아 내지 못했던 부분이다. 우박이의 연기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시점 쇼트의 활용이나 제주도의 자연 경관을 담은 영상들도 칭찬할 만한 요소이다. 이환경 감독은 적어도 촬영과 장면 편집에서 만큼은 전작과 같은 실수를 두 번 하지 않았다.

문제는, 이야기 사이에 보이는 징검다리 같은 공간들이다. 인물 간의 갈등은 너무 쉽게 해소되고 후반의 신파는 지나치게 강조되어 있다. 아이·어른 할 것 없이 끊임없이 우는 모습은 “이래도 안 울래?” 하는 강박으로 보인다. 판타지적 요소라고 하기도 민망한 기묘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도 이야기의 흐름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천장골관 인대염’으로 실제 절름발이였던 경주마 루나의 실화를 바탕으로 살과 뼈를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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