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것은 결코 새로운 것을 이길 수 없다
  • 김재태 편집부국장 (purundal@yahoo.co.kr)
  • 승인 2011.09.20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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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연휴가 지나자마자 언론사들이 바빠졌습니다. 이른바 ‘추석 민심’을 알아보겠다며 정치 관련 여론조사를 경쟁적으로 벌였습니다. 그만큼 선거판의 흐름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누가 누구를 몇 %포인트를 앞서느니 하는 식의 이런 여론조사 결과들은 어딘지 현실감이 없어 보입니다. 실제와는 다른 가상 대결인 데다 일반 국민들의 현실적 정서와도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탓입니다. 과문해서인지, 아니면 너무 짧게 머물러서인지는 몰라도 이번 고향 길에서 만났던 사람들 가운데 정치 얘기를 꺼낸 이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유일하고도 가장 큰 관심사는 오로지 ‘경제’뿐이었습니다. 당장 식탁을 위협하는 물가고에 언제 회복될지 모르는 살림 형편을 두고 여기저기서 한숨이 이어졌습니다. 그것이 진짜 ‘추석 민심’입니다. 곤궁한 그들에게 정치는 그저 ‘강 건너 불’일 따름입니다.

 

정치가 이처럼 홀대받고 불신에 싸이는 까닭은 자명합니다. 말할 것도 없이 정부와 정치권의 잇단 실책이 주된 원인입니다. 경제를 살려낼 구원 투수가 되리라는 기대를 업고 등장한 이명박 정부의 경제 성적은 지금 어떻습니까. ‘747 공약’의 화려한 애드벌룬은 줄이 끊긴 채 날아가고, 서민들의 밥상을 짓누르는 물가 압박과 청년 실업의 고통은 무겁습니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 곳에 남은 것은 불신과 허무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불쑥 떠오른 ‘안철수 신드롬’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그동안 정치 무대에 얼굴 한번 내밀지 않았던 그에게 쏟아진 지지는 변화에 대한 거대한 열망의 표현으로밖에 읽힐 수 없습니다. 스스로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그는 이미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표상으로 떠올랐습니다.

신드롬이니 깜짝 돌풍이니 하지만, 사실 안철수 원장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감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는 지난해 <시사저널>이 창간 21주년을 기념해 전문가 1천5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우리 시대 진정한 영웅’ 조사에서 이미 생존 인물 가운데 최상위를 차지한 바 있습니다. 고인이 된 노무현·김대중·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구 선생, 김수환 전 추기경의 뒤를 이은 여섯 번째 순위였습니다. 스위스의 역사가 야코프 부르크하르트가 “위인(또는 영웅)이 만들어지는 결정적 순간은 많은 사람의 환상이 한 사람에게 집중될 때”라고 말한 것처럼, 국민들이 안철수 원장에게서 본 것은 일종의 환상이거나 비전인지 모릅니다. 거기에는 현실 정치에는 없는 어떤 것을, 그가 발현해주리라는 기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편으로 현실 정치와는 궤를 달리하는 새로운 미래에 대한 여망이기도 합니다.

짧은 시간 뜨겁게 달아올랐고, 아직도 긴 여운을 남기고 있는 ‘안철수 현상’에서 새로운 시대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은 확연히 드러났습니다. 앞으로의 선거 국면에서 그 열망의 흐름을 잘 읽고 이끄는 인물이 진정한 영웅이 될 것임도 분명해졌습니다. 장강(長江)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서 큰 물줄기를 만들어내듯 도도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모든 낡은 것들은 새로운 것을 거스를 수도, 이길 수도 없습니다. 이제 모두가 자신 속의 낡은 것들을 돌아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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