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경제의 ‘단독 승리’ 비결은?
  • 쿠마가이 토오루│독일 주재 일본 언론인 ()
  • 승인 2012.06.17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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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니케이 비즈니스 온라인의 칼럼인 ‘독일 경제는 왜 호기(好期)인가’를 재구성했다. 니케이BP 사에서 발행하는 ‘니케이 비즈니스’ 2012년 5월14일, 5월21일자에 재독 일본인 저널리스트 쿠마가이 토오루 씨가 기고한 ‘경영 신(新)조류 매니지먼트 독일이 보여주는 신성장 모델-상·하’를 니케이BP 사와 저자의 허가를 받아 <시사저널>의 책임 아래 번역하고 도표를 제작해 게재한다.

독일 연방의회에서 연설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 EPA연합

경제 규모에서 유럽 내 3, 4위 국가인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재정 위기 탓에 휘청거리고 있다. 2위인 프랑스마저 위기의 파고에서 안전하지 못하다. 오로지 1위인 경제 대국 독일만이 돋보인다. 독일은 제조업 기반이 튼튼하고 재정이 건전하기 때문이다.  

유로 위기를 비웃는 듯 독일 경제는 혼자 승승장구하고 있다. 유럽연합(EU) 가맹국 중에서 ‘단독 승리’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어디에 있는가? 독일 현지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산업 정책과 산업 구조의 양면성을 들여다보았다.

“독일의 수출 산업은 2012년에도 좋은 출발을 보였다. 독일 기업은 세계 경제가 직면하는 곤란한 상황에 대해서 과감히 맞서 싸우고 있다.” 필립 레슬러 독일연방 경제기술청 장관은 3월9일 베를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는 독일 연방통계국에서 발표한 명목 수출액 때문에 나온 말이다. 2012년 1월 수출액은 전년에 비해 9.3% 증가했다. 흥미롭게도 수출뿐만 아니라 내수 경기도 호조를 보이고 있다. 2012년 1월 수입액은 전년 대비 6.3% 신장했다.

지난해 유로존 위기 이후 관련 뉴스가 빈번하게 보도되어 많은 일본인은 ‘유럽은 굉장한 위기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 경제가 의외로 호조세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거침 없는 수출이 경제 성장 이끌어

10년 전 독일의 사회보장 개혁을 추진했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 ⓒ EPA연합
독일은 2009년 리먼브러더스 쇼크 이후 세계 동시 불황의 직격탄을 맞아 마이너스 5.1%라는 전쟁 후 최악의 경기 침체를 맛보았다. 하지만 2010년에는 GDP(국내총생산)를 3.7% 증가시켜 불황의 후유증으로부터 일찌감치 벗어났다. 2011년 성장률은 전년에 비해서 조금 미미하나 유럽연합(EU) 주요국 중에서는 최고 수준을 보이고 있다. 그 속도는 유로존 위기를 코로 비웃는 듯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EU 통계국에 따르면 2011년 독일의 GDP는 2010년에 비해 3% 증가해서 유로권 평균 성장(1.5%)을 크게 웃돌았다. 프랑스, 영국, 스페인, 이태리 등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덧붙여서 말하면 독일의 주요 경제연구소는 2012년 성장률을 0.9%, 2013년 성장률을 2.0%로 예측하고 있다.

독일의 강한 성장력의 원동력은 수출이다. 독일 연방통계국에 따르면 2011년 독일의 수출 금액은 전년에 비해 11.4% 증가했고 과거 최고 기록인 1조6백1억 유로(1백16조6천1백10억 엔, 1유로=1백10엔 환산)에 달했다. 수출액에 크게 공헌한 것은 독일 산업의 주요 뼈대인 기계 제조업체이다. 이 나라에서는 수출액의 85%를 독일 제품이 차지한다. 독일 공작기계공업협회(VDW)에 따르면, 2011년 생산액은 전년에 비해 33%나 증가한 1백31억 유로를 기록했다. 수출액도 중국, 미국을 중심으로 33%나 증가했다. 자동차업계 수출도 크게 늘어났다. 독일 자동차공업협회(VDA)에 따르면, 2011년의 승용차 수출 대수는 전년에 비해 6.6% 증가한 4백52만대였다. 2010년의 전년 대비 23.7%라는 경이적인 수치에는 못 미치지만 큰 신장률이라고 할 수 있다.

EU 외의 지역으로 수출하는 대수가 크게 늘어났다. 아시아로 수출하는 대수는 21.9%나 증가했다. 그 가운데 중국이 22.5%, 타이완이 44.9%, 인도가 60.8% 증가했다. 마티아 위스만 VDA 회장은 2012년 1월 신년 축하 파티에서 이렇게 말했다. “2011년은 우리에게 굉장한 해였다. 서구에서 새롭게 인가받은 승용차 두 대 가운데 한 대는 독일 제품이었다. 중국 내 독일차 시장 점유율은 20%가 되었다. ‘메이드 인 독일(Made in Germany)’은 많은 나라 사이에서 고품질의 대명사가 되었다.”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최대의 자동차 메이커인 폭스바겐은 2011년 당기순이익을 전년보다 두 배나 끌어올려 1백58억 유로를 기록했다. 이것은 독일 주가지수(DAX)를 산출할 때 해당되는 주요 30사가 기록한 이익 가운데 사상 최고 기록이다. 독일 은행 등 금융기관의 업적이 유로 위기의 타격을 받은 것과 상반되게 제조업은 중국 등 신흥국으로부터의 수요가 크게 늘어나면서 계속 전진해가고 있다.

실업률도 과거 20년 중 최하 수준으로 

독일의 경기는 2011년에 큰 폭으로 개선되었다. 독일 연방통계국에 따르면, 2011년 독일의 근로자 수는 4천100만명에 달했고, 사상 최고 기록을 갱신했다. 울드라 훤 디어 라이언 장관에 따르면, 2011년에 약 70만명의 고용 창출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2011년의 평균 실업자 수는 2백98만명이다. 실업률은 7.9%로 과거 20년 이래 최하 수준을 기록했다. 프랑스나 스페인 등 다른 EU 회원국에서 실업률이 증가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심각한 불황기를 맞은 2005년에는 4백86만명이 길거리를 헤매고 실업률은 13%라는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 시기를 생각하면 고용 상황은 과거 7년 사이에 굉장한 호조세로 전환되었다고 할 수 있다. 현재는 인재 부족의 길조도 보인다. 기계 제조나 IT(정보기술), 과학 공업 등의 분야에서는 풍부한 노하우를 가진 기술자를 찾는 것이 굉장히 어려워지고 있다고 한다.

독일 경제는 왜 이렇게 호조세를 보이는 것일까. 일본에서는 ‘유로 가치 약세 덕이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확실히 유럽 채무 위기의 영향으로 달러에 대한 유로의 환율은 최근 5년 동안 8.6%, 엔에 대해서는 32.8%나 하락했다. 이것이 유로권 밖 시장에서 독일 수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이것만이 이유였다면 다른 유로권 나라들도 독일처럼 경기 호조세로 전환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2011년 성장률은 독일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같은 해 독일의 무역 흑자는 전년에 비해 2% 증가한 1천5백81억 유로로 확대되었다. 그에 반해 프랑스는 7백억 유로의 무역 적자를 기록했다. 이것은 프랑스 건국 이래 최고의 적자액이다. 독일과 프랑스, 이 차이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노동 비용 줄여서 가격 경쟁력 대폭 강화

독일 경제연구소 중에는 쾰른 독일경제연구소(IW)가 있다. 이 연구소는 친(親)산업계 내지 친재계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IW의 미카엘 휘터 소장은 2012년 1월16일 독일과 다른 EU 국가의 경제 실적 차이를 주제로 한 회의를 베를린에서 개최했다. 휘터 씨가 주목한 것은 유로 가맹국의 단위노동 비용(unit labor cost)의 차이이다. 단위노동 비용이란, 일정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내기 위해 드는 비용으로 노동자의 보수를 GDP로 나누어 산출한다. 경제 경쟁력을 분석하는 데 중요하게 사용되는 지표 가운데 하나이다. 단위노동 비용이 상승한다는 것은 제품 가격이 비싸지고 국제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저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휘터 씨는 “1999년부터 2007년까지 독일 산업계는 단위노동 비용을 16% 줄이는 것에 성공했다. 이것은 서구에서는 핀란드(23% 감소) 다음으로 높은 수치이다. 그에 반해 독일 외의 유로 가맹국에서는 역으로 단위노동 비용이 같은 시기에 약 4%나 증가했다”라고 지적했다. 즉, 유로 탄생 이후 8년 사이 독일은 대폭적으로 가격 경쟁력을 높이고 다른 유로 가맹국과 큰 차이를 둔 것이다.

IW의 분석에 따르면, 채무 위기에 빠진 나라에서는 특히 단위노동 비용의 증가가 심했다. 이 시기에 포르투갈의 단위노동 비용은 약 10%,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각각 20%, 그리스는 40%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즉, 해당 나라에서는 일정한 제품을 탄생시키기 위해 필요한 비용이 상승해 독일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대폭 약해졌다는 것이다. 리먼 쇼크 이후의 불황기에 독일에서도 단위노동 비용이 상승해 현재는 1999년과 거의 같은 수준에 있다. 그에 반해 다른 유로 가맹국들은 단위노동 비용이 1999년보다 12%나 높아졌다. 즉, 현재까지도 독일의 가격 경쟁력은 다른 나라에 비해 우수하다고 할 수 있다.

EU 통계국 데이터도 휘터 씨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EU 주요국 가운데 2000년부터 7년 동안 단위노동 비용을 줄인 나라는 독일뿐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단위노동 비용이 두 자릿수로 증가했다. 독일의 많은 노동자가 보수 삭감에 대해 인내력을 가지고 참은 것에 비해 다른 나라 근로자들은 보수가 해마다 늘어나는 것을 경험했다. 특히 남유럽의 수치는 ‘임금 거품(버블)’으로 보일 정도였다.

이 수치를 보면 독일 경제가 다른 유로 가맹국들에 비해 호조세를 보이는 이유가 드러난다. 즉, 1990년대에 높은 단위노동 비용에 고민한 독일은 이미 노동 비용의 절감이라는 숙제를 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최대 이유는 1998년 취임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에 의한 사회보장 제도의 대혁명을 들을 수 있다. 당시 슈뢰더 총리는 실업률 삭감을 최대의 정책 목표로 삼았다. 독일 사회민주당(SPD) 소속 슈뢰더 총리는 “총리로서 내 업적은 실업자 수가 크게 줄어드는지를 가지고 평가해달라”라고 공언했다. 기업이 고용을 늘릴 수 있도록 사회보험료의 부담을 크게 줄이는 정책을 실행했다. 

독일에서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기업이 사회보험료의 반을 부담하고 있다. 인건비를 줄이는 것으로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지 않는다면 기업은 고용을 늘리지 않으리라는 것이 슈뢰더 총리의 지론이었다. 독일 사회민주당은 원래 노조와 강한 연대감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 슈뢰더 총리는 재계와 강한 연결 고리를 갖는, 사회민주당 출신치고는 이색적인 정치인이었다. 그는 니더작센 주지사를 거친 적이 있다. 이 주는 폭스바겐의 대주주이다. 이 때문에 슈뢰더 총리는 한때 이 회사의 감사를 겸임한 적도 있었다. 이러한 경험들이 그가 기업을 우대하는 정책을 취하는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역대 총리들과는 대조적으로 인권 문제보다는 비즈니스를 중요시했다. 독일 기업의 사장들을 이끌고 몇 번이나 중국에 갔다. 그가 ‘어젠다 2010’이라고 명명한 프로젝트에 의거해 슈뢰더 정권은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실업자에 대한 지급 금액의 대폭 삭감, 공적 건강보험 개혁(환자의 자기 부담 도입), 공적 연금 지급액의 실질적 삭감 등을 차례차례 실행했다.

실업보험의 지급액은 생활 보호 수준으로까지 낮추었다. 지급 기준도 이전에 비해 큰 폭으로 감소시켰다. 이 때문에 ‘사회의 소득 격차를 확대시켰다’고 하여 빈곤층이나 노조, 실업률이 높았던 옛 동독 시민들에게서 많은 비판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프랑스 재무장관을 역임한 크리스틴 라가드 IMF 총재(왼쪽)와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오른쪽). ⓒ AP연합

사회보장비 삭감이 실현된 배경

하지만 슈뢰더 총리는 “실업보험이 너무 많으면 사람들은 일할 의욕을 잃게 된다. 공적 연금이나 건강보험의 자기 부담을 늘리지 않는다면 사회보험 제도 그 자체가 붕괴해버린다”라고 주장해 다양한 개혁안을 법률로 시행시켰다. 어떤 금융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슈뢰더 정권의 사회보장 개혁은 보수 정권에서 하기에는 어려웠을 것이다. SPD와 환경(그린) 정당의 연립 정권이었기 때문에 대담한 개혁이 가능했던 것이다.” 보수 정당이 아젠다 2010과 같은 고통을 수반한 사회보장 비용 삭감을 실시했다면 국민, 특히 노조의 반대가 매우 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노조는 긴 역사에 의거한 SPD와의 관계를 거절할 수는 없었고 거부하지도 않았다. ‘실업률을 줄이기 위해서는 노동 임금을 줄여야 한다’는 슈뢰더 총리의 주장을 받아들여 대폭적인 임금 인상을 요구하지 않았던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보수 정당이 해야 할 사회보장 절감을 SPD가 실행한 것이 이 개혁을 성공시킨 큰 요인이다. 야당이었던 가톨릭민주사회동맹(CDU, CSU)이나 자유민주당(FDP)도 슈뢰더 정권의 사회보장 비용 삭감을 환영해 연방의회나 야당에서도 법안에 찬성했다. 산업계나 경제학자들도 손을 들며 개혁안을 지지했다. 1883년에 비스마르크가 독일에 처음으로 사회보험 제도를 도입한 것은 노동 조건에 불만을 갖는 노동자가 공산당이나 SPD에 빠져 혁명을 일으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노동자 편이어야 할 SPD의 총리인 비스마르크가 사회보험 제도를 도입한 이래 가장 대범한 사회보장 제도 개혁을 실행했다는 것은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슈뢰더 총리의 생각은 들어맞았다. 어젠다 2010라는 이름과 같이 2010년 이후부터 사회보장 비용 삭감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독일 경제만이 유로 가맹국에서 살아남았다. 하지만 슈뢰더 개혁이 결실을 맺어 독일의 ‘단독 승리’ 상황이 되어 있는 것에 대해서 국내외에서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다. 다음에는 이와 관련한 글을 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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